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재 Apr 25. 2022

김이사의 부동산 월드 2 - 은행원 일수 아저씨

내가 막 중개업을 시작했을 때, 강남에 오피스텔이 들어섰다.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불모지와 같았던 곳에 건물들이 들어니, 제일 이동이 많은 이들- 밤일하는 사람들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피스텔의 1차 손님은 밤일 종사자들이었고, 그 뒤에는 보증금을 대납해주는 일수쟁이들이 포진해 있었다. 딱 보기에도 험한 바닥이었지만 겁이 없고 진취적이며 싸움닭 같은 면이 있었던 나는 제법 잘 헤쳐 나갔다.


일수하는 대부업체 직원들은 당연히 부동산들을 끼고 있었는데, 나는 늘 4-5시 즈음에 오는 그들을 상대로 보증금을 대납받고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계약서는 보증금을 내주는 일수쟁이들이 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일수쟁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5시쯤 일이 끝나니 참 좋겠수.”

 

맨날 5시에 돌아가니 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일수쟁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저흰 밤 1시에 많이 돌아다녀요.”

 

라고 답했다.

참 이상도 하지. 1시에 할 게 뭐 있다고. 내가 궁금해하며 다시 물으니 일수쟁이가 “‘잠복근무’가 많아요.”라고 했다.

아! 이때서야 난 알았다. 일수하시는 분들이 형사 급이구나. 잠복을 매일 해야 하니.

 

“그럼 집에선 좀 불만이겠네.”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내가 넌지시 말을 던지자 일수쟁이는 집사람은 자신을 이해해준다, 하지만 처가에선 제가 은행에 다니는 줄 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한마디 붙였다.

 

“전 길에서 명함 영업도 하는데, 돈이 필요한 사람은 척 보면 다 안다고, 백발백중이라니까요?”

 

나참! 젊은이의 당당한 말본새에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나쁘진 않았다. 무슨 일을 하든 자부심이 있다면 무슨 문제겠는가. 잘만 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사실 저희도 못 알아볼 때도 많아요. 계약서를 카피해서 돈 빌리는 사람도 있어서.”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데.”

 

내가 다시 묻자, 일수쟁이는 복불복 게임을 하듯 계약서 가진 여러 일수 전문인들이 모여 앉아 일제히 자기가 가진 계약서 인장에 침 묻혀 문지른다고 설명하듯 말했다.

 

“진짜 인주는 지워지는데 카피는 아무리 문질러도 번지지 않는다니까요?”

 

...「진품 평품」도 아니고 원.

 

여하튼 그 사이에서 진품을 찾은 일수가 만세를 부르면 게임 끝! 이란다. 진품을 가진 이 만이 보증금 반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참 요지경이다.

서로 속이고 속고, 그러면서 죄의식도 없고.

 

물론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부동산 일을 하며 사람들의 양면성과 독기를 접하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는 게 다 그렇지.

 

2022.04.13.

드레스룸 나의 공간에서

작가의 이전글 김이사의 부동산 월드 1 - 착한 청년 손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