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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진 Aug 15. 2022

팀 버튼 (감독 아님) 1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통해 살펴보는 팀 버튼의 작품 세계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유령 신부>, <비틀쥬스(유령수업)>, <빅 피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급되는 작품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The Melancholy Death of Oyster Boy & Other Stories>(1997)

<The World of Stainboy>(2000)

<유령 신부/Corpse Bride>(2005)

<노틀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1996)

<슈렉/Shrek>(2001)

<프랑켄위니/Frankenweenie>(2012)

<팀 버튼의 화성침공/Mars Attacks>(1996)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2010)

<비틀쥬스/Beetlejuice>(배급명 유령수업)(1988)

<빅 피쉬/Big Fish>(2003)



 팀 버튼은 1982년 첫 작품을 만든 이후 오늘날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가이다. 주로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감독 외에도 다양한 예술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팀 버튼 특유의 음울하면서도 동화적인 분위기는 그가 감독으로 참여하지 않은 작품들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팀 버튼이 감독으로 참여하지 않은 두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이 글에서 다룰 첫 번째 작품은 팀 버튼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그림책이다.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The Melancholy Death of Oyster Boy & Other Stories)

참여 부문: 글, 그림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속 제임스


 영화감독을 제외한 팀 버튼의 제일 유명한 예술 활동은 그림 그리기이다. 팀 버튼은 본인이 생각하는 영화의 이미지를 제작진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취미로 대량의 그림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린다. 글 대신 그림을 이용해 일기를 작성할 만큼 팀 버튼은 그림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담아내는 것이 익숙하다.


 그림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보다 팀 버튼의 온전한 정신세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은 팀 버튼 작품 세계의 총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 그림책은 머리가 굴로 된 ‘굴 소년’, 맑은 공기 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유독 소년’ 등의 별난 캐릭터를 묘사하는 동화 23편과 팀 버튼이 직접 그린 삽화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 나온 캐릭터 중 일부는 팀 버튼의 후속작에 등장했으며 특히 ‘검댕 소년’을 비롯한 몇몇은 <The World of Stainboy>라는 TV 애니메이션을 통해 영상화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캐릭터의 지속적 활용은 팀 버튼의 작품 세계에 이 책이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일차적으로 느낄 수 있는 팀 버튼의 영화와 책 간의 유사성은 그림체이다. <유령 신부>와 같은 그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에 흔히 나타나는 커다란 눈과 작은 동공, 가느다란 팔다리와 같은 특징은 더욱 과장된 형태로 그림 속에 나타난다. 수척하고 생기 없는 캐릭터의 이러한 외모는 현실의 인간들과 몹시 동떨어져 있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비현실적 설정을 효과적으로 상기시킨다. 결과적으로 삽화 속 캐릭터를 볼 때 사람들은 귀신이나 해골과 같은 비인간적 존재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며, 유혈 난무한 잔인한 장면 없이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한 가지 특이사항은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기괴한 외모는 인물의 선악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등의 할리우드의 메이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대다수의 경우 외모를 통해 캐릭터의 도덕성을 암시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물론 <노틀담의 꼽추>, <슈렉> 등의 소위 ‘못생긴’ 주인공을 선하게 묘사하는 작품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미추와 선악의 관계를 뒤집고자 하는 기획을 기반으로 성립된 영화기에, 위 전제를 반증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팀 버튼의 작품을 살펴보자. 위 책의 등장인물들, <프랑켄위니>의 기운 자국이 가득한 개 스파키, <유령 신부>의 유령 에밀리와 같은 캐릭터들은 평범하지 않은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팀 버튼의 화성침공>의 외계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붉은 여왕은 이상한 외모를 가진 악역으로 표현된다. 이를 통해 선악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외모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은 팀 버튼의 고유한 특색임을 알 수 있다.


왼쪽부터 <프랑켄위니> 속 스파키, <유령 신부> 속 에밀리, <팀 버튼의 화성침공> 속 외계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붉은 여왕


 그림 외에도 스토리 속에서 팀 버튼의 타 작품과 책 사이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림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기에 죽음과 같은 다소 무거운 소재는 금기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여럿 죽으며 작가는 일련의 죽음을 무거운 사건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경우, 주인공이 죽으면 그냥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에 언급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한두 마디 유감만을 표하는 팀 버튼의 이러한 태도는 도리어 독자에게 불쾌함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일반적인 관점과 괴리되는 죽음에 대한 태도는 팀 버튼의 <비틀쥬스(유령수업)>, <유령 신부>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영화들에서 팀 버튼은 죽음을 삶으로부터의 영원한 단절이 아닌 인생의 연장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틀쥬스> 속 주인공 부부는 영화 초반 죽어서 귀신이 되지만 자신들이 살던 집에서 기존의 삶을 이어 나가고자 하며, 귀신을 볼 수 있는 소녀 ‘리디아’와의 교류를 통해 결국 이에 성공한다. <유령 신부>의 주인공 ‘빅터’는 영화 후반부 죽음을 결심하지만, 이는 사후 세계에서 유령 신부 ‘에밀리’와의 삶을 이어가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작품관 속에서 죽음은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하게 되기에 심각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에 나타나는 죽음에 대한 서술자의 코멘트는 인물에 대한 애도가 아닌 유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팀 버튼이 삶과 죽음을 완전히 동질의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이 책과 팀 버튼의 <빅 피쉬>에서 주인공의 죽음은 작품의 결말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형식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비틀쥬스>에서 사후 세계의 인물 대다수는 푸른 피부, 쪼그라든 머리 등의 과장된 신체 변형과 함께 표현된다.


 이는 죽음에 관한 팀 버튼의 유쾌한 관점이 표출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과 죽음의 이질성을 시각적으로 표출하기 위한 시도로도 바라볼 수 있다.


 <비틀쥬스>의 주인공 부부는 작품에서 현실적 면모가 제일 강조되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영화 중후반부에서 기괴하게 변형되는 두 사람의 얼굴은 이들이 인간과 다른 별난 존재임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팀 버튼의 작품에서 죽음은 형식적, 시각적 형태를 통해 그 이질성이 표출된다.


<비틀쥬스> 속 얼굴이 기괴하게 변형된 주인공 부부


 위의 예시들을 통해 팀 버튼은 다양하고 기괴한 외모의 캐릭터를 선악에 얽매이지 않고 그려내고, 죽음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죽음은 팀 버튼이 즐겨 사용하는 소재로, 다양한 방식을 사용해 이를 표현한다.


 배경, 색채, 빛은 죽음과 이질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쓰는 다른 수단이다. 다음 글에서는 팀 버튼이 감독을 맡지 않은 다른 작품을 중심으로 이들의 사용법을 살펴볼 것이다.



참고 문헌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연구. 장연이, 김재웅. 디지털디자인학연구. 2008-01 8(1):219-230.

팀 버튼 애니메이션에서 기묘한 표현의 의미. WANG RAN / 王姌.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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