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리즈의 ‘로키’를 통해 보는 영화의상
*<토르: 천둥의 신>과 <어벤져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 중의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사용된다. 스토리, 연출, 조명 등의 요소는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캐릭터를 창조해낸다. 의상 역시 캐릭터를 표현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의상은 등장인물에 개성을 불어넣어 등장인물을 독특한 개성과 이미지를 가진 하나의 캐릭터로 만든다. 의상의 재질, 색깔, 상태 등은 캐릭터의 내면과 외면적 요소들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내고 배경과 인물을 조화시킨다.
만약 캐릭터의 외형이, 특히 캐릭터의 대표적인 디자인이 바뀐다면 어떨까. 많은 경우 관객들은 이질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캐릭터의 동질성을 강조하려 하는 상황이라면, 그 외형을 바꾸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악수이다.
필자는 마블의 드라마 <로키>를 보며 이를 느꼈다. 본래 흑발이었던 로키의 여자 버전이 금발로 나오는 것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의상 변경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며, 드라마를 보며 그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로키의 금발에는 필요 이상으로 반감이 든다.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이번 시리즈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반감의 원인을 제시하기에 앞서, 로키의 과거 의상에 대해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마블 시리즈의 초반부 영화를 통해 캐릭터 ‘로키’의 디자인 변천사와 캐릭터성의 변화를 분석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영화의상의 특성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다.
<토르>는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히어로 토르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다. 로키의 디자인은 영화의 주연인 토르의 디자인에 맞춰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모든 캐릭터는 영화의 스토리와 작중 배경에 알맞은 형태의 차림을 할 필요가 있었으며 의상을 통해 특정한 감각을 관객으로부터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노르드 문양(Norse symbols)에서 따온 토르의 의상 속 얽힌 문양은 로키를 비롯한 영화 속 다른 캐릭터의 의상에도 사용되어 캐릭터 간의 연관성을 나타낸다. 문양은 이와 동시에 <토르> 속 다양한 요소의 기원이 된 북유럽 문화와 영화의 세계관을 연결시키는 역할도 한다. 환상의 세계를 주요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실제 문화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여 현실감을 높인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 방식은 이후의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사실성이 떨어지는 디자인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부각한 디자인도 있다. 갑옷은 싸울 때 입는 옷인 만큼 활동성이나 방어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옳다. 그러나 로키의 갑옷은 실용성보다는 예식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호전적인 토르와 달리, 로키의 재능과 관심은 오딘의 왕좌를 차지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갑옷 아래 위치한 주름진 녹색 옷감은 의례적인 느낌을 더욱 돋운다.
로키의 갑옷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뿔이 달린 투구 또한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는 머리 위에서부터 수직적으로 나오는 뿔을 아스가르드의 수직적 이미지와 연결하려 했다고 말한다.
<토르>에서 로키는 자신이 본래 속한 종족인 서리거인의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나 그것은 더 큰 목적을 위한 함정이었으며 로키는 자신을 아스가르드인으로 정체화하고 있다는 것이 영화가 진행되며 드러난다. 이러한 로키의 입장이 의상을 통해 암시된 것이다.
평상복의 로키 디자인에는 개성을 드러내는 요소가 갑옷 디자인보다 더 들어가 있다. 평상복에도 사용된 주름진 녹색 옷감은 갑옷과의 일관성을 살린다. 의상에서 금속은 최소한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금속은 아스가르드의 왕권 문화의 요소들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가슴에 있는 황금색 상징은 오딘을, 은색의 사각형 모형은 내부 궁정을 상징한다.
목깃은 칼라꽃의 형태에서 따왔는데, 이 꽃은 부활의 모티브로 사용되고는 한다. 이는 주변 환경에 의해 억압받으며 성장한 로키의 내적 희생을 표현한다.
색깔을 통해서는 주연 토르와 로키 사이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로키의 평상복과 갑옷에는 모두 초록색이 사용된다. 이에는 원작 코믹스의 디자인을 고려해야 하는 영화의 특성과 초록색이 가진 사악한 이미지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토르의 붉은색 망토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기 위함이기도 하다.
토르는 아스가르드의 후계자이자 호전적인 전사로 많은 영화에서 전투적, 지배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붉은색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캐릭터이다. 영화에서 로키는 토르가 받는 인정을 부러워하며 양아버지 오딘을 비롯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왕좌를 차지하길 원한다. 이를 위해 토르의 방식, 즉 전투와 정복을 폭력적으로 모방한다. 이러한 로키의 심리는 이후 영화인 <토르: 다크월드>의 삭제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보색 관계의 두 색처럼 두 사람은 너무나 달랐고 토르를 비뚤어진 방식으로 따라 하고자 했던 로키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초록색과 붉은색은 로키와 토르 각각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색이 되어 이후의 영화에서도 지속해서 사용된다.
로키의 흑발과 토르의 금발 또한 두 캐릭터 간의 대비를 표현한다. 특히 로키의 흑발은 금색 일색인 아스가르드의 풍경과 의상, 로키의 다른 가족인 오딘과 프리가와도 대조를 이루어 이질적인 느낌을 조성한다. 이를 통해 부외자의 입장에 놓인 로키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
<토르> 속 로키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서리거인과 토르를 무찌르는 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왕좌를 차지하는 것은 로키의 진정한 목표라기보단 인정받았다는 증표에 가깝다. 그러나 <토르>의 결말에서 목적 달성을 위한 일련의 행동은 부정되었다.
이후 로키는 악당 ‘타노스’를 만나게 되었고, <어벤져스>에서 로키는 자신의 절망감과 인정 욕구, 갈 곳 없는 야망을 지구 정복에 사용하게 된다. 오딘이 다소의 원인을 제공하기는 했으나 이 영화 속 로키의 행적은 오딘과 독립되어 있으며 로키는 정복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캐릭터의 행적과 변화는 의상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토르>의 결말 부분에서 사라진 이후 로키는 <어벤져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사이의 행적은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대사와 의상을 통해 묘사된다. 의상의 금속은 더 닳고 긁힌 것으로 변했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로키가 자신들이 알 수 없는 곳을 여행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머리카락 또한 길어지고 끝이 더욱 뻗쳐 전작보다 지저분하다. 이러한 디테일은 캐릭터에 현실성을 더해준다.
평상복과 갑옷은 모두 <토르>에서의 디자인에 가깝게 유지됐으나, 로키의 캐릭터 변화를 묘사하기 위해 몇몇 부분이 변했다. 전작에서 로키의 평상복은 갑옷보다 로키의 내면을 더 잘 드러내는 방향으로 디자인되었으며 로키의 갑옷 디자인은 양아버지 오딘의 예식적인 모습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어벤져스>의 갑옷은 로키의 평상복 속 요소들을 더 많이 갖추게 됐다. 이는 로키가 이제 자신을 더 드러내고 오딘의 모습을 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헬멧의 뿔 또한 디자인 변화를 겪는다. 뿔은 더 얇고 길어졌는데 이는 로키의 짓궂은 면모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디자이너는 밝힌다.
또한 머리 위에서 뿔이 나온 전작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뿔은 이마에서부터 시작되어 앞으로 뻗어나가는, 덜 수직적이며 더 공격적인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아스가르드, 혹은 가족과의 결속감이 약해지고 <토르>에서보다 더 전투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 로키를 묘사하는 듯하다.
이와 같이 로키는 토르의 극단에 선, 고풍스러운 콘셉트의 악역 캐릭터이다. 의상 및 머리카락의 색과 예식적이고 클래식한 디자인은 이를 부각한다. 그러나 시리즈가 진행되며 로키는 내면과 외면 모두 변한다. 이는 다음 글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