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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진 Oct 15. 2022

앤토니오의 양심 1

정의와 자비의 관점으로 바라본 <베니스의 상인>

 양심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양심이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어떤 사람들은 옳지 않은 행동을 할 때 본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양심의 행동적 측면에 집중하던지 심리적 측면에 집중하던지 간에 양심은 정의와 자비에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와 자비 또한 명쾌한 기준이 세워져 있는 기준이 다르다. 정의관과 자비관, 양심의 형태가 사람마다 제각각인 것은 명확하다.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몇 백 년 전이라면 얼마나 다를까. 약 400년 전에 쓰인 <베니스의 상인>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양심에 따라 움직이지만, 현대적 기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못할 만한 행동이 많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세 개의 장면에 나오는 대사들을 통해서 작품 속 정의와 자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특히 작품의 주인공, 베니스의 상인 앤토니오의 양심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하는지를 당시 시대상과 함께 바라보고자 한다.


<베니스의 상인> 표지



장면 1: 샤일록을 경멸하는 앤토니오

 

앤토니오

이거 보게, 바싸니오.

저 악마가 제멋대로 성경을 잘도 인용하는군.

성경을 내세우는 사악한 영혼은

웃는 얼굴을 한 악당이나 마찬가지야,

속은 썩었는데 겉만 번질한 사과처럼 말이야.

-윌리엄 셰익스피어,『베니스의 상인, 박우수, 기린원, 2009, pg. 38


 제일 처음 살펴볼 부분은 샤일록을 경멸하고 있는 앤토니오의 모습들이다. 앤토니오의 이러한 행동을 그의 친구들과 비교해 보자. 바싸니오, 그라쉬아노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 또한 샤일록을 경멸한다. 이 사람들에게 양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샤일록을 부당하게 싫어하는 것일까?


 앤토니오를 포함한 작중에서 샤일록을 경멸하는 주요 인물들은 선역의 편으로 그려지며, 기독교인이란 표현으로 대표된다. 이러한 편 가르기는 아래 대사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샤일록

아 조상님 아브라함이시여, 이들 기독교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가요.

-같은 책, pg. 41



 물론 주요 인물들이 완전무결한 선역은 아니지만 사악한 면모를 최대한 강조해 표현해도, 악한 사람이 아닌 소시민적 인물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샤일록이 <베니스의 상인> 속 대부분의 인물, 또는 기독교인에게 미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어버려 세계 곳곳, 특히 유럽의 여러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샤일록도 그 일원 중 하나임을 그가 걸치고 있는 유대식 긴 외투나 기독교인을 적대하는 태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유대인을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경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앤토니오의 친구들도 샤일록을 유대인이란 이유로 싫어함을 샤일록을 ‘유대인 놈’이라 수차례 표현하는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앤토니오 또한 샤일록을 이단자라 부른다. 주변 인물과 마찬가지로 샤일록의 민족적 정체성을 비난하는 것을 그는 정의로운 일이라 생각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부도덕적인 일이다.


 그는 다른 이유로도 샤일록을 싫어했는데, 샤일록이 고리대금업으로 사람들을 곤란에 빠트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샤일록의 도움이 필요해 찾아간 상황에서도 앤토니오는 이러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다음 장면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샤일록

...(전략)...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우리 유대인의 특징이니까요.

당신은 나를 이단자니, 도사견이니 하며

내 유대식 긴 외투에다 침을 뱉곤 했소.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쓴다는 이유에서 말이오....(중략)...

앤토니오

난 앞으로도 당신을 그렇게 부를 거고

또 그대에게 침을 뱉을 거고, 그대에게 발길질을 할 것이오.

-같은 책, pg. 39



 앤토니오는 사람들을 어려운 상황에 빠뜨리는 샤일록의 행위를 정의의 잣대를 통해 판단하며, 이에 맞추어 그를 대한다. 하지만 앤토니오의 이러한 평가는 정당한가?


 당시 핍박받던 유대인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고리대금업은 그중 하나였다. 이는 기독교에서 이자를 다루는 일이 부정하다 간주하여 기독교인들은 해당 직종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앤토니오 또한 원래 자신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지도 않’(같은 책, pg. 35)는다 말한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앤토니오는 고리대금업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과 사람을 곤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샤일록의 행동을 비난한다.


 정리하자면, <베니스의 상인> 초반부의 앤토니오는 유대인이라는 점, 부정한 직업을 가졌다는 점,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점을 들어 샤일록을 공격한다. 이는 당시 시대상으로는 당연한 일이며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주변에 편승해 비판하는 앤토니오를 400년 전 기준으로 보아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그는 당시의 정의 기준들을 충실히 따랐으나, 자비의 관점으로는 샤일록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면 2: 샤일록의 주장을 인정하는 앤토니오


영화 <베니스의 상인>(2004)의 한 장면



앤토니오

공작께서 그자의 가혹한 주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애를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집을 피우고, 어떠한 합법적인

방법으로도 그자의 사악한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니 그자의 분노를 참고

견디며, 그의 잔인함과 분노를 침착하게

견뎌낼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책, pg. 144-145


 두 번째로 볼 장면은 법정에서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다. 재산의 대부분을 실은 배가 난파한 앤토니오는 샤일록에게 돈을 갚지 못할 상황에 처한다. 샤일록은 위약금으로 앤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받아내기 위해 재판을 연다. 앤토니오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베니스의 공작도 샤일록의 마음을 바꾸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앤토니오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오히려 어서 법대로 자신을 판결해 달라고 한다. 이때, 앤토니오는 두 개 측에게 자신의 양심적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본 첫 번째 입장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처음에 샤일록과 계약을 맺을 때 위약금으로 가슴살 1파운드를 주는 것은 앤토니오가 동의했던 내용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계약은 합법적일까?


 우리나라의 「민법」 제151조 제1항에 따르면, ‘조건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것인 때에는 그 법률행위는 무효’가 된다. 그러나 당시 베니스에는 그런 법이 없었던 모양이다. 법적 문제가 없는 계약이라는 것이 법정 장면에서 수차례 언급된다.


 따라서 샤일록이 살을 가지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될지 몰라도 법적, 혹은 정의적으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작품의 다른 사람들은 샤일록이 악하다는 이유로 법적 정의까지 무시하려 한다. 반면 앤토니오는 자신의 양심적 기준에 의해 계약을 따라야 함을 인정한다.



앤토니오

공작이라도 법의 집행을 부정할 수는 없는 법이지.

이방인들이 이곳 베니스에서 우리와 함께 누리는

특권을 부정하게 되면, 국법을 위태롭게 하는 셈이네.

-같은 책, pg. 129


 본인의 양심적 기준을 적용한 두 번째 측은 자신을 변호하는 사람들이다. 앤토니오는 자신이 부당하게 살아남으면 베니스의 정의가 손상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을 법대로 판결할 것을 주장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베니스의 정의를 지키고자 했다. 위 대사에서 이러한 앤토니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 두 번째 장면에서도 양심과 정의를 엄격하게 따르려는 앤토니오의 태도는 여전히 유지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대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도, 앤토니오는 양심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할 수 있다.


 두 장면을 통해서 앤토니오의 인간됨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정의관을 관철하지만, 당대의 편견에 따르는 인물이다. 400년 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선한 인물이지만 현대의 독자가 보기에는 고정관념에 물든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 것 같은 고지식한 인물이지만, 이어지는 세 번째 장면에서 그는 변화한다.




출처

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박우수, 기린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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