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통해 살펴보는 팀 버튼의 작품 세계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비틀쥬스(유령수업)>, <빅 피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급되는 작품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The Melancholy Death of Oyster Boy & Other Stories>(1997)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1993)
<코렐라인: 비밀의 문/Coraline>(2009)
<비틀쥬스/Beetlejuice>(배급명 유령수업)(1988)
<빅 피쉬/Big Fish>(2003)
팀 버튼이 자주 사용하는 소재로는 죽음, 비현실적·환상적 요소가 있다. 그에 따라 사후 세계, 혹은 현실과는 다른 세계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배경, 색, 빛이 큰 역할을 한다.
앞선 글에서 다룬 그림책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에서는 이 활용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삽화가 단순하게 그려져 배경과 빛 묘사가 생략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많은 작품에서 배경, 색채, 빛의 독특한 활용을 찾아볼 수 있다. 팀 버튼이 감독을 맡지 않은 영화에서도 이들은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맹활약한다. 다음 영화를 통해 이러한 팀 버튼 작품의 특징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여 부문: 제작, 원안
이 영화는 팀 버튼이 쓴 시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후에 <코렐라인: 비밀의 문>을 제작하는 헨리 셀릭이 영화의 감독을 맡았다.
영화는 할로윈만을 위해 살아가는 할로윈 마을 주민 중 한 명인 주인공 ‘잭 스켈링턴’이 우연히 크리스마스 마을에 간 이후, 할로윈 마을에서 크리스마스를 맡고자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해골, 헝겊 인형, 유령 개 등이 사는 할로윈 마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는 개성 있는 캐릭터 디자인 또한 큰 영향을 끼쳤으나 배경과 빛의 역할이 무척 컸다.
해당 영화 전반에서 등장하는 배경은 기괴하게 비틀려 있다. 할로윈 마을의 건물, 공동묘지의 묘비와 울타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기울어져 있다. 주인공이 올라간 언덕은 그 끝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감겨 있다, 주인공이 내려올 때 풀려서 땅까지 다리를 놓는다.
자연물 또한 영화의 그로테스크한 배경을 조성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마을 곳곳에서 보이는 앙상한 나무는 마을의 황폐한 느낌을 배가한다.
이러한 기묘한 배경은 팀 버튼의 작품 속에서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비틀쥬스>에 등장하는 사후 세계의 복도는 기울어지고 뒤틀린 문으로 가득하며 복도의 구조는 원근을 혼란스럽게 한다. <빅 피쉬>에는 대각선으로 기울어진 집이 나오며, 그 집의 주인은 마녀가 되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초현실적 배경이나 사건을 설정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배경을 통해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하는 팀 버튼의 특징을 위 예시들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우뚝 솟은 첨탑, 두꺼운 돌담, 좁은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대표되는 고딕 양식은 팀 버튼의 영화에서 지속해서 나타나는 배경이다.
빛과 색의 사용 또한 팀 버튼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현실과 유사한 조명과 그 아래 색채를 묘사하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과 달리 팀 버튼은 다소 극단적인 방식으로 빛을 활용한다.
다시 <크리스마스 악몽>의 예시를 보자. 할로윈 마을을 묘사하는 데에는 무채색과 어두운 갈색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하늘색, 주황색 등의 다른 색들도 그 채도와 명암이 낮다. 장면 대부분에서 이러한 색들은 어슴푸레한 빛 속에 잠겨 있어 할로윈 마을은 어둡고 황량해 보이는 동시에 신비로워 보인다.
팀 버튼의 <빅 피쉬>에서도 이와 유사한 빛의 사용을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은 차를 타고 가던 중 뜻밖의 폭우를 만나게 되고, 이내 자동차는 물에 잠기게 된다. 바닷속에 잠긴 듯 묘사되는 해당 장면은 희미한 빛을 사용해 주인공의 시야를 제한한다. 이는 관객에게 저 너머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일으키며, 직후의 장면에서 헤엄쳐 오는 여성의 신비로움을 부각한다. 상황 종료 이후 나타나는 밝은 자연광은 희미한 빛과 대조를 이루어 조금 전까지의 비현실성을 더욱 강조한다.
<크리스마스 악몽>의 주요 장면들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색채와 빛이 사용된다. 이러한 장면 중 하나는 위에서도 언급한 주인공이 언덕 위에 서 있는 장면이다. 강한 하얀색 조명은 그 앞에 있는 언덕과 주인공의 실루엣을 강조한다. 이는 무대 조명 아래 캐릭터가 위치한 듯한 인상을 주어 관객이 해당 장면을 보다 극적으로 느끼게 하며, 작중 상황과 어우러져 애상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조성한다.
빛의 사용이 돋보이는 <크리스마스 악몽>의 다른 장면은 영화의 악역 ‘우기부기’의 뮤지컬 부분이다. 이 장면에는 녹색과 파란색 등의 형광색 조명들이 사용되었다. 강한 조명 아래서 물체들은 실제와는 다른 색으로 보이게 된다.
평소의 상아색이 아닌 녹색으로 보이는 악역의 모습과 형광 룰렛, 박쥐, 해골과 같은 소품들은 할로윈 분위기를 물씬 끌어올린다. 장면의 한가운데 위치한 산타클로스에게는 초록색이 아닌 푸른 빛이 반사되는데 이는 캐릭터의 이질성을 강조한다.
녹색 빛의 활용은 팀 버튼의 타 작품들에도 나타나는 요소이다. 일례로 <비틀쥬스>에서 사후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릴 때, 문 너머에서 녹색 빛이 쏟아져 나온다. 배경의 극적 변화와 현실과의 괴리감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악몽>에서 빛과 색은 동화적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주인공이 크리스마스 마을에 떨어지는 장면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 마을은 할로윈 마을과 달리 다채로운 색과 따스한 빛으로 가득 차 있다. 작중 배경은 밤이지만, 집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주황색 빛은 마을을 밝힌다. 크리스마스 마을의 주민들이 입은 생기 넘치는 붉은 옷은 마을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과 조화를 이룬다. 주인공이 놀라워하며 바라보는 꼬마전구는 할로윈 마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알록달록한 색이다.
이상으로 팀 버튼의 작품상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소재, 캐릭터 디자인부터 스토리, 배경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구성 요소들은 과장되고 변형되어 표현된다. 팀 버튼은 이를 통해 본인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으며, 결과적으로 작품 세계를 공고히 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의 독특한 표현법은 대부분 그로테스크함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되었지만, 따뜻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그 특유의 음울하면서도 동화적인 분위기의 원천이 된 것이다.
참고 문헌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연구. 장연이, 김재웅. 디지털디자인학연구. 2008-01 8(1):219-230.
팀 버튼 애니메이션에서 기묘한 표현의 의미. WANG RAN / 王姌.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