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연구에 특히 강한 문예지라는 supil 문학캠프에 일찌감치 합류 의사를 밝혔다. 햇살도 강하고 청명하고 높은 하늘이 가을을 앞서 반기는 듯하다. 날이 좋은 걸까. 가고 싶은 행사가 쏠려 있다. 북 페스티벌과 시인축제 그리고 문학 캠프가. 삶이 보면 쏠림과 한가로움이 병치되는 것 같다.
적절하게 퐁당퐁당 있으면 좋을 텐데 퐁퐁퐁 한다. 아마도 귀한 게 뭔지 깨닫게 하려는 섭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아직 까마득하다.
문예지 행사를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대부분 그들만이 참여했다. 이번 행사는 대문을 활짝 열고 수필문학이라면 어디든 들어오라고 개방하였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수필가들이 100여 명이 한데 모였다는 것부터 의미가 있었다. 깨어있는 의식으로 글로만 뵈었던 수필가를 만나기 위해 겉돌지 못하고 깊이 스며드는 카페인을 흡입했다. 그 에너지로 차 안에서 밝다 못해 이어폰이 필요할 만큼의 수다를 떨었다. 나중엔 내가 왜 이럴까 살짝 민망했다. 카페인의 힘이란 상모를 돌리던 목덜미를 꼿꼿하게 세우고 쉬지 않는 레퍼토리를 끌어낸다.
일찍 서두른 근면함과 한 번도 다른 길로 새지 않은 네비와 그를 잘 이용한 운전자의 힘으로 예상 시간보다 일찍 목적지인 청도 신화랑풍류마을에 당도했다. 차를 주차하고 단출한 가방 하나 메고 세상밖으로 나왔다. 주차선 한 곳까지 발끝을 점령한 반가운 초록이 눈을 사로잡는다. 호박인가 싶어 들어보았다. 보기보다 무겁다. 살갗이 호박보다 매끈하다. 주위를 둘러보다 다른 큰 열매를 보았다. 조선무처럼 두리뭉실하게 생겼고 체중이 보통이 넘었다. 호박처럼 사방으로 줄기를 뻗쳐 번식하고 있다. 동과라고 한다. 박과 호박의 혼혈처럼 느껴진다. 마치 오늘의 캠프처럼 전국으로 뻗쳐나간 수필가들이 동과처럼 서로에게 스며들라는 의미가 심장하다.
명찰을 걸고 짬 나는 시간을 알차게 근처 둘레길을 산책해 본다. 밤이면 이곳을 화살촉 모양 등의 조명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지만 낮에는 고즈넉한 풍경을 보여준다. 가까이가 아닌 멀리서 봐야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은 나에게 한 발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라는 듯하다.
식순이 시작됐다. 그 흔한 축사 및 격려사가 없어 호감이 막 샘솟는다. 시원시원하고 콜라맛이 나는 진행 솜씨가 개인 취향을 저격한다. 완전 내 스타일이다. 오늘의 순서 중에서 가장 기대가 컸던 재야의 철학자라고 소개한 김영민 교수의 강의가 시작된다. 나는 작은 귀를 쫑긋 세웠다. 45분 강의하고 45분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다. 주고받는 열기가 과열되면 시간은 초과되지 않을 수 없다. 질문도 답변도 수준이 높아 나의 질문을 꿀꺽 삼켰다. 반전이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길에 교수님께 개인적으로 질문을 드릴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우습고 황당한 질문을 진지하게 차근차근 말씀해 주셔서 두 손을 모으고 경청했다.
글로만 보던 대단한 수필가 선생님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수필에 대한 깊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게다가 뒤풀이에서 소수 인원으로 만나 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선배님들의 의견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날짜가 겹친 시상식을 대리 수상하게 하고 이 캠프를 선택한 것은 옳았다.
늘 평온한 표정과 힘듦을 표시하지 않는 선생님이 특별히 일정 마지막에 넣은 청도읍성을 포기하셨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편치 않은 듯한데 겉으로는 잘 모르겠다. 명일이 수필 창작교실 이학기 개강날인데 괜찮을까. 카페인 두 잔을 과음한 나는 상행길에서 에너지가 막 뿜어져 나왔다. 일정이 일찍 끝난 아쉬움을 달래려 도서관엘 갔다. 카프카의 시골 의사를 읽었지만 눈따로 마음 따로 겨우 읽다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쟁쟁한 선배님들을 만나고 나니 독서와 글쓰기에 게으름을 피운 올여름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무더위가 나의 의욕을 꺾어버렸다고 핑계를 댔다. 나만 집중공격한 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