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큼은 노스트라은후무스
폭염과 폭우라는 말은 어쩌면 과격한 표현 같지만, 요즘 날씨 현상에 딱 들어맞는 말이긴 해요. 사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어요. 폭격하듯 퍼붓던 장맛비가 좀 주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요.
엊그제 밤 열 시경 스마트폰이 어깨춤을 추었지요. 얼마나 열심인지 책상에서 떨어진 채 아픈 줄도 모르지요. 진동 모드이기에 부재 전화가 몇 통 온 줄도 모르고 받았지요. 발신자는 대뜸 왜 이리 전활 안 받냐고 하시네요. 숨이 차셔요.
오전에 시간 되면 볼링 데이트하자네요. 볼링이라, 언제 쳐 보았는지요. 횟수로 강산이 한 번 바뀌지 않았을까. 게임당 단돈 구백 원이라네요. 오, 착한데요? 한때는 거래처 사람들과 지그재그로 내기 게임을 한 적이 있었어요.
레일이 열여덟 개나 되네요. 게다가 위층엔 락볼링장이 따로 있네요. 아차, 양말을 깜박 잊었네요. 단돈 이천 원, 저렴하네요. 공을 골라야 해요. 8이냐 9냐가 문제인데요. 너무 오랜만이라 못 먹어도 9를 선택해요.
일행은 14킬로짜리가 두 개나 올려져 있네요. 신발이며 가방, 아대까지 구비 한 걸 보니 준선수가 아닐까요. 게다가 공을 리시브하는 자세를 보니 이보다 부드러울 수가 없어요. 스핀을 주는데도 이렇게나 부드럽게 굴릴 수가 있다니요.
거의 초보나 다름없는 저는 무조건 직진이지요. 되지도 않는 스핀을 줬다가는 가터로 빠지기나 할 터, 귀를 스치게 일직선으로 던져요. 허 고것 참, 스텝이 어떻게 됐더라? 하나, 둘, 셋, 넷에 공을 던지는 거죠. 굴러가라, 개떡 같이 던져도 찰떡 같이 핀을 쓰러뜨려라. 미션이다.
주문을 잘 받들어 예전에도 획득하지 못한 141점을 얻었어요. 일행은 최고 197점을 얻고, 나머지 네 게임도 거의 180점대였어요. 내리 다섯 게임을 쳤다지요.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해서 내일은 멀쩡할지 모르겠네요.
운동 후에는 맛난 음식을 먹어줘야죠. 핫 플레이스인 막국수집으로 달려라 애마여. 일행이 앞서가면서 주차하란 자리에 후진을 섹시한 자세로 하려는데, 뒤따라오던 펠리세이드가 앞을 가로막네요. 나, ARMY인데? 난 세상을 보라 한다구요. 저 사람 소낙비로 때려줘야겠어요.
대기시간은 보통 반 시간이기에 번호표 52번 정도는 나쁘지 않아요. 넓고 초록한 정원에는 벤치도 곳곳에 있다지요. 옆에는 카페의 붉은 차양이 가려주고, 인공 석상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어요. 일행은 양산을 들고 있네요. 문득 카페의 붉은 차양 그늘로 뛰어가야 할 것만 같은 충동이 마구 솟아요.
차양 밑에 의자에 앉자마자 억수 같은 소낙비인지 장마인지 쏟아지네요. 하, 펠리세이드는 분수 옆에서 비 맞은 생쥐 꼴이에요. 헙, 내 마음을 엿들었나요?
좀 있으려니 나가고 싶어요. 슬슬 순서도 됐을 것 같고 햇살이 빼꼼하네요. 여우비였군요. 무지개도 뜨겠네요, 그것도 한 쌍으로. 왕만두와 비빔막국수를 맛나게 먹어줬지요. 기꺼이 기다려 줄 만큼 입이 즐겁고 몸이 건강해지는 이 맛, 이게 진짜배기 막국수지요. 엄청난 세숫대야 양이지만 먹다 보면 조용해지고 젓가락질만 연신 하기 바쁘지요. 어느새 벌건 국물만 남아 다 어디 갔는지. 어디긴 다 내 뱃속에 모셔 놓았지요.
이젠 직장 복귀 시간이에요. 일행도 각자 흩어집니다. 신호등에 걸려버렸네요.
‘쌍무지개가 떠야 되는데...’
어머나, 또 혼잣말을 들었나요. 쌍무지개가 빼꼼해요. 이건 찍어줘야죠. 인간 날씨 슈퍼 컴퓨터란 빼도 박도 못할 증거니까요.
거의 다 왔어요. 애마야, 힘내자 또 비가 올 것 같다. 우하하, 이거 뭐죠? 왜 제 말을 자꾸 따라 하는 거죠. 로또 번호도 해 줄 텐가요. 그래 줄 건가요. 오늘 하루 전 뉴스보다 더 정확한 일기예보 촉이 돋아난, 노스트라다은수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