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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둥 May 11. 2022

3. 내적 성장

헤르만 헤세 <데미안>

예전에는 몰랐다. 사춘기를 겪고, 신체적 성숙을 이루고, 20대가 되면 다 자란 것인 줄 착각하고 있었는데 사람은 어떤 잠재태로서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였다. 인생은 절대로 완성이라는 것이 없다. 공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이들은 완성된 사람이었을까? 추측하자면 타인 보다 월등히 많이 성장한 사람일 뿐 완성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완성된 형태가 없다면 그것이 구원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구원을 향한 몸부림일 수 있지 않을까? 성장을 통해서 인생과 세상을 이해하고 그 지혜로 타인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구원의 한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완성은 없으나 지향점과 방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저자는 데미안을 통해서 성장이라는 구원의 지향점을 설명하고 있다.


데미안은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법한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성장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에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가 공존하며 이 사실을 인정하고 이것에 충실해지는 것이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싱클레어는 성숙한 인간의 이상향으로 제시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을 만남으로 고통과 방황(알깨기)을 그치고 완성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책에서 에바부인의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인데 작가는 그 실마리를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인용한다.


프롬은 자신의 저명한 저술인 《사랑의 기술》에서 “성숙한 인간은 밖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해방되어 내면에 그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아버지를 ‘부성적 양심’, 어머니를 ‘모성적 양심’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서, 부성적 양심은 끊임없이 “네가 잘못하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피할 수 없고, 내 마음에 들고 싶으면 너는 너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모성적 양심은 “어떠한 악행이나 범죄에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 못한다.”라고 말한다는 거지요.
인간은 이러한 두 가지의 양심을 내면에 간직함으로써, 부성적 양심을 통해 복종, 성실성, 절제, 인내, 책임 등을 배우고, 모성적 양심을 통해서 자위, 자존심, 자유 등을 배운다는 거지요. 즉,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 모성적 양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부성적 양심을 간직함으로써, 서로 균형을 이루어 성숙해진다는 겁니다.

- 김용규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이 내용을 짧게 정리한다면 모성과 부성을 두루 겸비하여 너무 엄격하지도, 그렇다고 나태하지도 않은 균형 있는 자의식을 소지한 사람쯤 될 것 같다. 정말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을 알맞은 비율로 내적 형상화 한 사람을 뜻한다. 이런 인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현실의 자아를 깨뜨려야한다. 즉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인생을 통해서 어떤 방식이 되었든 고난을 경험하게 된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그런데 그 고난에 대한 현실 인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성장을 이루고 누군가는 염세적 가치관을 형성한다. 알이 깨어져야 성장을 이루고 알을 깨지 못한 성장은 좁은 알 속에서 커져가는 몸을 감당해야하는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아프더라도 용감하게 깨야한다. 고난의 시간은 인생에서 쌓아온 경험들을 소화해서 생각의 근육을 형성하고 삶의 노폐물을 배설하는 시간이다. 힘들고, 어렵고, 두려운 구원이지만 가치있는 구원이기에 용기있게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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