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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Sep 27. 2023

65세, 정년은 지났지만 계속 일해주실 수 있나요?

회사는 아무나 붙잡지 않는다

58년생인 이사님은 올해로 65세다. 올 초쯤엔가 이번 8월까지만 일을 하고 그만두겠다고 하셨다. 정년을 훌쩍 넘긴 나이라 사실 언제 일을 쉬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기는 했다. 게다가 시골에 집을 한채 사서 주말이면 그곳에서 지냈는데, 이제 도시 집을 완전히 정리하고 내려가신다고 했다. 지금까진 주말은 시골에서, 평일에는 도시에서 지내면서 일을 해오셨다. 


회사는 이사님께 일을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제안을 했는데, 선택된 건 아래 세가지다. 


1. 주 4일 근무

2. 기본급 월 50만원 인상

3. 유류비 지원(법인카드)


시골에서 출퇴근 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주4일만 근무하도록 스케줄을 조정했다. 그리고 기본급을 월 50만원 정도 더 인상했다. 장거리 출퇴근이다보니 기름값이 부담되지 않도록 유류비 지원 명목으로 법인카드를 발급해드렸다. 

 



아무나 그만둔다고 해서 이렇게 붙잡지 않는다. 이사님은 기술적으로 회사에 필요한 분이다.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쉽게 대체될 수 있다. 그들도 쉽게 회사를 버릴 수 있겠으나, 회사 또한 대안을 찾기 쉽다. 하지만 오랜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기술력을 갖춘 인력은 대체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긴 시간동안 꾸준히 실력을 키운 사람들은 (확률적으로) 인품도 훌륭한 경우가 많다. 회사로서는 이런 분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60세 정년이 되었을 때도 함께 더 일 할것을 제안했고, 65세가 된 지금까지도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65세의 나이이지만 젊은 직원들보다 훨씬 더 제 몫을 잘 해내는 분이시다. 2007~8년쯤 원래 다니던 회사가 망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잃었고, 그 이후에 우리회사에 들어오시게 되었다. 여기 들어올 때 이미 50세가량 되었으니, 실직을 한 이후에 새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나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16년 가깝게 한 직장에서 일을 한 것이다. 지난 16년동안 이사님이 보여준 모습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원하는 편의를 최대한 맞춰드리면서 더 오래 함께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제안을 하며 더 오래 근무해줄 것을 부탁하면서도, 혹시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 근무가 될 수도 있기에 '공로패'도 준비하고 있었다. 장기근속자에게 드리는 감사의 말을 담아 공로패를 만들고, 선물로 금목걸이를 드리려고 했다. 


이사님은 좀 더 남아 계시면서 후배들에게 기술을 알려주는 일을 하시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시다보니 언제까지나 일을 계속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전까지는 다른 후배 직원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인수인계를 해주면서 일을 함께 하실 것 같다. 




직장생활을 거의 40년 넘게 하셨기 때문에 노후대비는 당연히 잘 되어있으시다. 그 긴 세월 착실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국민연금도 납부했으며, 퇴직금도 제법 쌓여있을테다. 그렇다보니 주요 가족 대소사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현금을 몇 억원가량 저축해뒀고, 시골에 주택 한 채 그리고 매달 150만원이 넘는 국민연금이 준비되어있다.


사람마다 삶의 기준이 다르고, 지역마다 필요한 돈의 규모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이걸 보면서 별거 아니라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사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두 자식을 키워내면서, 은퇴 후 전원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을 마련했고, 거기다 더 나아가 자식들 결혼 할 때 신혼집 마련에 보탬이 되는 종자돈까지 준비해뒀다. 그리고 개인 노후 생활에 필요한 현금흐름까지. 이 정도면 경제적으로 정말 여유있는 삶이 아닌가. 


어느순간부터 묵묵한 노동이 경시받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주식, 부동산, 코인, 일확천금의 뉴스가 도처에 널렸다. 몇백만원 월급 받아서 집을 살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으로 되면서, 근로소득자의 사기가 저하된 것도 사실이다. 월급만 모아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퍼졌고, 나 역시도 그런 위기감에 사로잡힌 사람 중에 한명이다. 


이러한 위기감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자극, 동기부여 쯤으로 쓰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 해서 뭐해', '열심히 살아서 뭐해', '저축해서 뭐해' 등의 허무주의로 빠지는건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근무하다보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바보취급하고, 월급루팡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여기곤 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순간 놀면서 돈을 받는 루팡이 더 좋아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회사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가 있는 분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분이다. 주식도 부동산도 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일하며 직장에서 인정받은 덕분에 60대 중반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묵묵히 기술을 배우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륻 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몇억이라는 집값앞에 몇백이라는 월급은 한없이 작게 느껴지지만, 연차와 더불어 상승하는 연봉, 회사와 함께 반씩 부담하고 있는 나의 국민연금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저축인 퇴직연금까지. 이 세가지가 함께 자라나면 나중에는 무시못할 정도가 되어있다. 일확천금의 유혹만큼 달콤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직한 삶을 우습게 여겨서도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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