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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Oct 03. 2023

애들 학원 보내게, 월급 좀 올려주세요.

체계가 없는 중소기업의 단점과 장점

사직서 한장이 사장실로 올라갔다. 


직원이 사표쓰는 일이 어디 처음 있는 일일까. 회사에서 입퇴사는 흔한 일이지만 제법 오래 다닌 직원이 사표를 쓰면 모두의 마음이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그 직원이 평소에 어떻게 근무했고, 동료들의 호감을 샀는지, 상사의 촉망을 받는 직원이었는지에 따라 경중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직서'는 일단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번에 퇴사를 하겠다는 직원은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다. 싸움이 자주 있었고, 업무지시에 불복종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직원들에게 자주 화를 내는 통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불편해했고, 고객사에 출장을 보내면 고객과도 언쟁을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럼에도 업무면에서는 실력이 있는 편이었기에 그런 행동이 어느정도 묵인이 되었다. 세상에는 실력도 없으면서 성격까지 안좋은 사람이 많다. 그렇기에 중소기업에서는 이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제법 붙잡고 싶은 직원이 되곤 한다. 



과거에도 한번 자의로 퇴사를 했다가 다시 돌아온적이 있다. 이 회사가 싫다고 나갔으나, 막상 밖에서 더 나은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다시 돌아온 이후에도 딱히 더 나아진건 없었다. 이후에도 사직서를 올렸다가 반려된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이번이 세번째 사직서인 셈이다. 마음대로 행동해도, 받아준다는 믿음이 생겨서일까. 급여를 더 올려주고, 자주 타일러보기도 했지만 태도는 더 좋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진짜 퇴사를 원하는 것일까? 


내용을 들어보니 급여를 더 올려달라는 말이었다. 애들 학원을 보내야하니 월급을 더 올려달라는 말이다. 전년도 급여를 찾아보니 세전 6,300만원 정도였다. 6,300만원이면 적은 연봉은 아니다. 대기업과 비교하면 그것밖에 안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졸 현장직에게 6,300만원이라는 연봉을 줄 수 있는 지방 소기업은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 않다. 대기업으로 간다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테지만, 40 후반이라는 나이에 갑자기 대기업 취업이 쉬울까.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이 직원도 이전에 퇴사를 했다가 다시 돌아온게 아니겠는가. 





우리회사는 애들 학원비에 보태라며 어느 직원의 급여를 올려준 적이 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성실한 직원이었고, 근무태도가 정말 좋았다. 주변 동료들의 분위기까지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직원이었다. 다만,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병간호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경제적, 심리적으로 약간 더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 사장님은 면담을 통해 개인 사정을 좀 더 알게 되었고, 아이들 학원비 정도에 해당하는 월급을 더 주기로 했다. 


어쩌면 이 사례가 회사내에 소문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정말 애들 학원비를 준 것일까? 타의 모범이 되는 직원에게 급여를 더 준 것이다. 학원비를 대신 납부해준 것이 아니라 기본급을 올려준 것이다. 너도나도 '우리 애 학원비 만큼 더 올려주세요' 라고 한다고해서, 들어줄 수는 없다. 왜 사장님 마음대로 누구 급여만 올려주고 누구는 안주냐 불평할수도 있다. 


하지만 체계가 없는 중소기업의 단점이자 장점이 이런것 아니겠는가. 대기업에서라면 이렇게 개인이 사정에 따라 급여를 올려주기는 어렵다.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정성적인 평가에 따라 급여를 더 올려줄 수 있다. 회사는 이 직원이 지금처럼 긍정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계속 근무해주기를 바란다. 회사의 바람대로 해당 직원은 지금까지 더욱 좋은 모습으로 착실하게 근무하고 있다. 




세번 째 사직서는 결국 수리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급여를 더 올려줄 수 없다는 답을 하자마자 그 직원은 현장에서 하던 일을 버리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관계부처에 회사를 신고했다. 동료 직원들에게는 '몇 달동안 일 쉬게 해주겠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마 본인의 신고로 인해 회사가 영업정지 등의 조치를 받았으면 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그리 큰 일이 아니었기에 회사는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었고, 다른 직원들의 급여를 밀리지 않고 줄 수가 있었다. 



경영지원팀 소속으로서 이번일을 통해 느낀것이 있다면,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최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역시 '인성'이라는 점이다. 언제나 다른 직원들을 괴롭히고, 자주 싸웠고, 고객사에게 언성을 높이는 행동을 보였는데, 약간의 실력 우위가 있다고해서 회사가 그동안 그런 행태를 받아줬던것을 돌아보게 됐다. 사실 직원들간의 실력차이라는 것은 보통의 회사에서 그리 감동적인 정도는 아니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대부분은 '일'로 힘들기보다 '사람' 때문에 힘들다. 직원이 퇴사했으니, 경영지원팀의 임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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