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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Oct 08. 2023

꼰대 소리 하고 싶다.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하나

상사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상사의 지시라도 따르지 않았다. 조직 내 특정 개인의 이익만을 따르거나, 조직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지시라 하면 따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지시들은 대부분 스스로도 떳떳하지가 않아서, 근거를 남기지 않고 나에게 떠넘기듯 시키려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것들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당한 지시가 아니라면 '못하겠다'라는 말을 회사에서 할 이유는 딱히 없다. 일단은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을 해봐야 한다. 상사가 시키는 모든 일에 다 '못한다'로 대답할 것 같으면 그 조직에서 본인이 뭘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일을 안 하고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이해를 한다(나도 돈 많은 백수이고 싶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일을 하고 있다. 월급 루팡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일은 어찌 되었건 '루팡'이다. 그리고 이런 월급 루팡은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저는 그런 거 못하는데요.


그동안은 주로 나 혼자 외부 회의에 참석했었는데, 이제 슬슬 후배 직원에게 경험도 시켜줄 겸 외부 미팅 때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을 했다. 그런데 직원은 미팅 시간 내내 고개만 숙이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 거래처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는 정부 과제로 진행하는 거라 우리 회사가 한번 나가서 발표를 해야 했다. 발표자료는 거래처에서 모두 작성해 줄 예정이기 때문에 5분 내외의 발표만 우리가 하면 되었다. 비교적 난도가 낮은 발표고, 발표를 못한다고 해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경험 삼아 후배가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안을 하자마자 "저는 그런 거 못하는데요."라는 대답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발표를 해보지 않아서 두려운 마음이 들 수는 있다. 하지만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못한다'라고 스스로를 규정짓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을 무서워서 다 피해버리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5년 뒤, 10년 뒤에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연차가 쌓일수록 남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해야 하는 일은 더 많아진다. 지금은 실수해도 되고, 못해도 된다. 배우는 과정이니까 알려줄 선배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중에 리더로서의 자격이 요구되는 순간에는 실수도 무능도 그 무게가 가볍지 않게 된다. 


일을 못한다고 피해버리면 순간은 편할 수 있다. 일단은 일을 더 적게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들의 대부분은 어느 정도 하기 싫은 일이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쓴 것들을 해나가다 보면 그것이 나에게 능력치로 쌓여있다. 단기적으로 편한 선택만 하다보면 장기적으로 발전이 있을리가 없다. 





나는 4년 차가 되었을 때 새 부서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 부서의 업무는 완전히 처음이라 내 처지는 신입과 다름없었다. 부서 선배들이 보기에 내가 많이 부족해 보였는지 나에게 미션을 주었는데, 매일 아침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출근 시간 전에 와서 자료를 준비해야 했고, 부장과 차장 앞에서 5~10분 내외의 발표를 했다. 굴욕적인 순간도 많았고, 너무나 고단했던 시간이지만 이때가 아니었으면 남들 앞에서 발표를 이만큼 연습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다양한 사람들과 미팅을 하고, 원만하게 발표를 할 수 있는 데에는 그때의 훈련이 분명 큰 도움이 되었다. 


해보지도 않고 '그런 거 못하는데요'라고 말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꼰대 같은 줄 알면서도 이렇게 글을 적어봤다. 차마 직원들 앞에서 말하지는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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