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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Oct 11. 2023

니 일이냐, 내 일이냐

업무 갈등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부서 간에 업무 경계가 불분명할 때가 많다. 새로운 일이 생겼을 때 이게 너희 부서 일이냐, 우리 부서 일이냐로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다. 업무 덩어리가 너무 커서 한번 가지고 오면 엄청나게 지장이 가는 것부터 소소하지만 괜히 기분 상하는 일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때로는 격렬하게 대립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 간의 사이가 멀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 부서는 옆부서와 대체로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그런 소소한 갈등은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일 때 한정이었다. 끝나고 나면 보통 회사 앞에서 맥주 마시면서 서로 재밌게 잘 지냈다. 


니일이냐 내일이냐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는데, 내가 신입 때의 일이었다. 신입 사원일 때는 동기들끼리 서로 모르는 걸 도와주고 의지도 많이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 부서로 계속 업무를 넘기는 동기가 있었다. 우리 부서에는 나 포함 총 2명의 신입이 있었고, 옆 부서에도 신입 동기가 한 명 있었다. 옆부서 동기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조금씩 우리에게 넘겼는데, 우리가 일을 끝내고 나면 본인이 가지고 가서 부장님께 보고하는 식이었다. 우리가 도움을 줬다는 얘기는 당연히 보고에서 빠져있었고, 부장님의 칭찬도 본인이 자랑스럽게 챙겼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도움을 주기 싫어졌다. 우리도 우리 부서의 일이 있는데, 옆부서 동기의 업무를 왜 우리가 외주 받아 해줘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그 다음번에 업무가 넘어오자 우리 일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러자 그 친구도 서운하다, 왜 도와주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이런저런 말이 오고가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와 같은 부서에 있던 동기가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다. 


그냥 내가 할게, 줘봐


당시 신입사원들이 받아서 하는 일들은 대부분 단순 반복 업무였다. 옆부서 동기가 우리에게 넘기려고 했던 것들도 대부분 대량의 워드 작업이었다. 일의 난도는 높지 않으나 하기 귀찮은 그런 종류의 일 말이다. 몇 분간 실랑이가 발생하자 우리 부서 동기는 그냥 그 일을 본인이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파일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몇 분 간의 반복되는 마우스&키보드 작업 끝에 일이 끝났다. 


옆부서 동기는 끝난 업무를 본인이 챙겨 가지고 갔다. 나는 우리 부서 동기에게 '기분이 나쁘지 않으냐'라고 물어봤다. 옆부서 동기는 그걸 가지고 가서 본인 부서 부장에게 보고를 할 테고, 본인이 한 것처럼 행동할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우리 부서 동기는 문서 작성 능력도 좋아서, 이 친구가 끝낸 일이라면 분명 결과물도 깔끔하고 훌륭했을 것이다. 내가 다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부서 동기는 크게 상관없다고 했다.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시간에 일을 시작해서 빨리 끝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했다. 실제로 돌이켜보면 "왜 그러냐"고 내가 반문하는 시간부터 생각해 보면, 부지런히 하기 시작했다면 그러는 동안에도 상당 부분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근무시간이기 때문에 본인의 업무량이 이를 초과할 정도로 막대하지 않은 한 그 시간 안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충분히 처리해 줄 수 있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이 친구는 깔끔한 업무 처리 능력과 묵묵히 일하는 성실성 그리고 차분한 성격으로 직장 내 동료, 선후배 그리고 상사에게 호감을 사는 직원이 되었다. 인사 발령 시즌에 같은 부서에 배치되면 반겨할 만한 직원이다. 



나는 직장생활 돌이켜보면 감정적이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감정 이입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신입시절의 저 일이 두고두고 생각났다. 나한테는 부족한 역량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자주 떠올렸던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그냥 봐주면 안 돼', '가만히 있으면 호구인 줄 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근데 너무 작은 것들까지 세세하게 니 것, 내 것 따지기 시작하면 조직이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게 힘들어진다. 어느 정도는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야 무난하게 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또 사람은 본인이 손해 본 것을 더 크고 중요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엔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피해를 준 것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상쇄되면서, 어느 정도 무던히 참아가는 게 조직생활이지 않을까.


오늘도 옆에서 '니일이냐, 내일이냐'로 싸우는 사람들을 보니까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주워듣다 보니 내가 지금 엑셀을 열면 함수 몇 개 설정해서 10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가져와서 해버릴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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