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충돌에서 살아남는 법
결혼은 오래도록 서로 다른 인생을 영위하던 주체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며 자신의 자아를 일정 부분 덜어내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고행과 궤를 같이한다.
결혼 후 아내와 크게 싸운 적은 없다. 다만 여느 부부처럼 신혼 초에 언쟁과 갈등을 겪는 것이 다반사였다.
몇 차례 갈등이 있은 후 혼자 앉아서 나와 아내의 특성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대화에 있어서 언어의 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내는 말에 얹힌 핵심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내가 ‘왜 말을 그렇게 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아’라고 하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본인은 필요한 이야기를 건조하게 했을 뿐인데 나는 거기에 서운함을 느꼈으니까.
결국 속앓이를 하다가 아내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나의 화법 역시 아내로 하여금 ‘나 너 때문에 기분이 나빠’로 읽히기 십상이라 갈등의 평행선을 좁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 기준에서 마음이 상할 법한 대화가 오가고 몇 분 뒤 아내에게 물었다.
- 여보, 아까 이야기한 것이 나를 타박하듯이 말한 건 아니죠?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 응? 내가 아까 당신에게 뭐라고 했어요?
- 아니야~ 아닌 것을 알았으니 됐어. 여보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자꾸 내 주관대로 서운하고 그게 쌓이다 보니 결국 당신에게 날카롭게 이야기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더라고요. 당신 입장에서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불만을 토로하니 당황하고 결국 당신도 화가 나게 되고.. 그래서 앞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 대화법으로 이야기해보는 게 어떤가 싶어.
처음 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아내가 웃으며 반문했다.
- 그럴 리가 없다? 그게 어떤 의미인데요?
- 음.. 우리가 서로 다르게 살다가 만났으니 각자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상대의 열심이 내게는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잖아. 나는 진짜 죽도록 내 자아를 깎아가고 있는데도 말이야. 그래서 그냥 화가 나거나 서운 할 때에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 과연 나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서 아프게 하려고 할까? 그럴 리가 없다.’라고 한 번 생각해보는 거야.
- 오호~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그렇게 먹으면 괜찮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해소할 수 없는 상황도 생길 텐데?
- 맞아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도 한 번 그렇게 마음을 눌러주고 나서 조곤조곤 대화하고 당시에 본인이 속상했던 부분을 감정을 덜어내고 말하면 듣는 이로하여금 기습적으로 공격을 받는다는 느낌은 덜하게 될 것 같아. 음식물 쓰레기의 냄새는 지독하지만 잘 건조하면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감정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 그래. 노력해볼게요. 좋은 제안 고마워.
- 응 나도 노력할게. 돌이켜보니 당신의 최선을 내가 인정하지 못했던 게 미안하더라고. 1+1을 1로 만드는 게 결혼이라는데 나는 맨날 나만 0.6 이상 희생하고 있다고 착각했어. 미안해. 나도 잘해볼게.
결혼 1년 차에 나누었던 대화이다. 결혼 6년 차가 된 지금은 그때에 비해 현저하게 다툼이 없다.
물론 불가지의 영역들이 줄어들고 서로의 역린을 알기에 갈등이 감소한 것도 있을 테지만, 화를 한 박자 눌러주는 ‘그럴 리가 없다’ 대화법으로 인해 서로 다른 자아, 서로 다른 우주의 대충돌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살다 보니 갈등 관리보다 중요한 역량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