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쓴이 Apr 19. 2022

아내가 잠이 늘었다

평범한 날을 유지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들



둘째가 들어선 지 11주 2일 차


아내는 입덧이 심하다. 첫째 때 입덧이 저녁에 몰려서 힘들었다면 둘째 입덧은 하루 종일 은은하게 울렁인다고 한다.


아내가 표현하기를, 입덧은 숙취가 있는 상태에서 파도가 높은 날 배에 탄 기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겨우 음식을 먹고 아슬아슬하게 구역질을 참으며 간신히 잠에 든다.


후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쉬이 안아주기도 어렵다.

짠한 마음으로 쳐다보는 것이 해줄 수 있는 전부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유치원에서 하원한 아이가 떼를 쓰지 않고 잘 놀다가 오후 8시 전후로 잔다는 것이다.


늘 고맙고 미안한 우리 아들..


아내는 아이를 재우면서 함께 잠들곤 한다.


청소, 설거지, 빨래 정리는 오롯이 내 몫이다.


평고 깔끔하게 집을 관리하던 아내인데..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힘이 달려서 못하는 그녀의 마음은 오죽하려나.


피곤한 일상의 부스러기를 정리하기 전 심호흡을 한다.


‘이건 별 일이 아니다. 나는 그다지 힘들지 않다. 아이를 품고 있는 고생이 비하면 이건 곁가지에 불과한 일이다.’


두어 번의 심호흡과 함께 집안일을 시작한다.


청소를 하며 하루를 정산한다.


‘등원 전 우리 아들은 이렇게 놀았구나. 아! 내가 이쪽은 닦지 않은지 오래되었구나.’


청소는 30평 남짓의 우리 공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활동이다.


설거지를 하며 평소 좋아하는 콘텐츠들을 본다.


‘집안일을 하면서 유희도 챙길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아들이 유치원에서 오늘은 소시지 야채볶음을 먹었구나!’


평일에는 아이와 긴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그래서 아이가 남긴 하루의 흔적을 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잘 건조된 빨래를 개키면서 요즘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다.


‘나의 해방 일지’에 나온 김지원의 담담한 내레이션, 서툴고 거칠지만 속이 따뜻한 이민기의 연기를 보며 수건의 바삭한 감촉을 느끼면 노곤함이 찾아온다.


어느덧 11시, 잠들기에는 아쉽고 영상은 그만 보고 싶은 시간


요즘 국기에 빠져 있는 아이의 질문은 매섭다.


명색이 사회 선생님이라 국기를 외는 것은 자신 있었는데.. 이따금씩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중미의 섬나라 국기를 물어보면 말문이 막히곤 한다.


덕분에 국기의 유래와 의미를 다시금 공부할 이유가 생겼다.


자정은 넘기지 않고 잠을 청해 보고자 애써본다.


이불을 다 차고 자는 아들에게 다시금 이불을 덮어 준다.


새근거리며 자는 아내를 잠시 바라보다 잠이 든다.


성심껏 사랑하기로 약속했던 지난날의 내가 보기에 지금의 나는 잘 살고 있으려나?


사랑의 양태가 늘 같기란 어렵다.


요즘 내가 빚는 사랑은 일상이다.


아침에 눈 뜬 아내가 어제 아침과 같은 모양의 집을 보도록 해주는 것


출근을 완료하기 전 아내에게서 온


‘어제 일찍 잠들어서 미안하다. 오늘도 정말 고맙다’는 문자를 보며 힘을 내본다.

이전 01화 ‘그럴 리가 없다’ 대화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