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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Sep 01. 2022

매미 찬가

계절의 압박


우리집은 소위 말하는 숲세권이다. 뒷베란다 쪽으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늦은 여름밤이면 서늘한 바람에 딸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양껏 들을 수가 있다.


미세먼지가 창궐하지 않는 안전한 계절, 창문을 모두 열어두고 가만히 앉아 있다보면 살금살금 변하는 계절의 내음과 소리를 지켜볼 수 있다.


자연이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 조용하고 커다란 움직임을 관조하는 것은 오묘한 차향을 음미하고 한지에 난을 치는 것처럼 내공이 필요한 일이나 그것이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한밤중에 거실에 몸을 누이고 쉬다보면 뒷산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꽤나 정겹다. 그러다 문득문득 그 차분한 협주를 방해하는 무례한 파열음이 들린다.


미련한 매미의 꽹과리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아무래도 이 온도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다. 궁합이 맞지 않는 음식을 먹는 어색함이다. 그 철 모르는 소리에 심술이난다. 그러다가 다시, 풀벌레 군중의 아우성이 어둠을 지배한다. 그렇게 가을의 향미에 젖어들만하면 매미의 절규가 또 들린다.


여름날 매미가 목놓아 부르던 구애의 세레나레가 인간인 내게는 참 곤혹스러운 소리였다. 그것을 상기하며 미간이 찌뿌려지는 것도 잠시, 녀석의 목소리에 힘이 달리는 것을 느낀다.


3~7년을 땅속에 박혀살며 지네와 두더지의 위협을 넘어 가까스로 성충이된 그것이 생의 목적인 번식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여름철 화차같던 매미의 울음통을 자연의 수레바퀴가 손쉽게 와자작 짓이기는것 같아서 괜시리 숙연하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가 문득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던 그 시구. ‘나는 한 번이라도 저렇게 처절하게 목놓아 울듯이 살아봤나’ 싶어서 순간 마음이 울렁인다.


물론 내년에도 여름철 불쾌지수에 부채질을 하는 매미 소리에 성질이 날 것은 뻔하지만 오늘은 매미답지 않은, 파르르 떨리는 그 소리가 귓가에 남는다.


몇 분 뒤 재활용 분리배출을 하기전까지 매미에 대한 이 비루한 레퀴엠이 끝날 것은 뻔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일생을 노력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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