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을 읽다가
‘젊다’는 형용사이고 ‘늙다’는 동사라고 한다.
‘젊다’는 그 자체로 풍요로운 것, 부족함과 과함 모두를 너털웃음으로 포용하는 침착하고 온정적인 형용
‘늙다’는 늙어감을 포함하는 것, 쇠퇴의 진행과정을 육신과 영혼, 겉과 속으로 나누어 설명하기에 바쁜 말
퇴근길 전철에서 읽던 소설은 늙은 존재들이 더 늙고 쇠락해가는 과정을 눈이 시릴만치 또렷하게 시각화시키고 있었다. 높은 수준이기에 더 잔인한 필력
영 읽기가 괴로워 책을 덮고 잠시 주변을 응시하였다.
그날은 운이 나빴는지 연식이 오래된 전철에 탑승하였다.
유독 덜컹거려서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전철에서는, 오래도록 뿌리박아 억세진 까닭에 청소하는 노동자의 고된 노력을 무산시키는 세월의 냄새가 났다.
다시금 늙음, 아니 늙어감을 묵상한다.
생은 어쩌면 탄생과 동시에 소멸의 영광을 위해 달리는 기괴한 경주
전철에서 내가 앉을자리가 건너편의 세 자리로 옮겨지기까지는 아직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타자와의 비교 위에 기생하는 저질스러운 안도감이 역겨워 잠시 눈을 감는다.
그러나 꽃스러운 젊음의 압박이라고 마냥 입꼬리에 미소를 선사하지도 않는다.
비염을 심히 앓으며 여름과 가을을 희구하는, 환절기의 본인 모습에 청춘의 괴로움을 투사한다. 한파로 인해 앓을 감기를 걱정하며 노년의 쓸쓸함을 지레짐작하고 같잖은 한숨을 내쉰다.
이 과하고 천박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통을 흔든다.
또 생각한다. 생은 그 자체로 견디는 것의 연속, 아직 내게 허용된 형용을 즐기며 마침내 오고야 말 은빛 내일을 대비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소외된 오늘을 보듬는 것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