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산업화 시기 대한민국에서 배곯는 소리는 농악이요. 가난은 논에 터를 잡은 잡초 같은 것이었다지만 아버지가 김매기 해낸 가난은 그 뿌리가 칡 같았다.
우연히 보게 된 아버지의 유년기 일기장은 흡사 괴력 난신 같았다.
배가 고파서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경험을 하였다는 대목의 글자는, 시간의 퇴적으로 누렇게 눌은 갱지에 침식당해 한층 여위어 보였다.
든 것이라곤 까맣게 그으른 보리밥과 눈치껏 숨을 죽인 김치가 전부였던 도시락을 챙겼다는 글자는 시간을 그렇게 먹었는데도 배가 고픈지 유독 훌쭉해 보였다.
중학생 걸음으로 두 시간을 꼬박 걸어야 닿는 집을 향해 하교하던 아버지는 속절없이 타오르는 노을 위로 기러기 떼가 스쳐가자 다리를 땅에 우뚝 박았다고 한다.
그 광경을 한참 쳐다보다가 유독 느리게 날며 무리를 겨우 쫓는 기러기를 보고는 ‘저 기러기가 참 나 같다.’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그래서 받은 것 없어 가진 것도 없던 10대의 아버지는 ‘외로울 고’에 ‘기러기 홍’ 자를 이어 스스로에게 ‘고홍’이라는 호를 선물했다고 한다.
시대마저 멸종을 선언한 고된 일들을 해가며 학업의 끈을 이었고 새 세상이 열중하는 일을 찾아가며 생존의 끈을 조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가난은 과속방지턱이다.
노랗고 거뭇한 굶주림이 간살같이 교차하며 부종처럼 부어오른 가난의 과속방지턱.
우둘투둘한 그 길을 도통 우회할 도리가 없었던 아버지는 그것을 조심스레 건너는 선택만을 강요받았다.
일말의 완충도 없이, 과속방지턱을 넘는 충격을 허리와 둔부로 받아내며 언제 보일지 모를 대로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마모되고 부서지며 어느새 길라잡이 기러기가 된 오늘의 아버지는 그저 ‘그땐 다 그랬어’라 말하고 말 뿐, 원망이 없다. 그것은 속상한 아들이 누군가를 미워할 틈을 굳게 막는 말.
본인이 뽑은 가난의 뿌리를 털어 깨끗하게 씻은 후 말려 차로 덖을 수 있는 아버지의 인품 덕분에
나는 가난을 몰랐고 사랑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