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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자유를 갈취하는 와이프

엄마들 클릭금지.

by 울랄라샙숑 Jul 25. 2024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리던 와중 유부남 선배들이 말했다.

"기본적으로 와이프는 안돼로 시작해서 안돼로 끝나"

"대체.... 뭐가 안된다는거죠?"

"겪어, 그냥 겪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반 푸념, 반 조언이 끝도 없이 이어갔지만,

이미 신혼의 꿈에 젖은 내 귀에 그 어떤 부정적인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8년차 유부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결혼을 앞둔 회사 후배에게 과거 선배님들이 그랬듯 조언(?)을 쏟아내는 내 모습을 보고있자니 참

세상남편 사는게 다 똑같다 싶다.



왜?

왜 안된다고하는거지?

내 이야기를 귀 담아 듣기는 한 것일까?


남편의 입장에서 와이프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은 내년도 사업기획안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난이도와 긴장감과 같다. 반려가 예상되면서도 일단 질러보자는 식이다. 왜? 내가 6살 딸과 같은 위치에 있어야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소심한 타입인지라 한번 반려를 당하고 나면 한번더 트라이 해보겠지만 두번의 거절은 [불가]를 말하는 것임을 알기에 속으로 찡찡거리며 괜히 반항한답시고 와이프가 열심히 차려놓은 저녁상에서 굳이 김치랑 밥만 먹는다. 남자는 80살이 되어도 고딩과 같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보다.



큰 요구도 아니다.

이번 주말에 친구들 모인다는데 딱 3시간만 스크린골프 다녀오면 안되는지? 혹은 애들 운동 끝나고 저녁 간단히 먹는다는데 밥만 먹고 들어오면 안되냐는지. 아니 더 작은 이유로 애들 자고 집 정리 끝나면 방에서 플스 좀 하면 안된다던지 뭐 그런 사소한 것들이다. 대체 왜?! 뭐가 못마땅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내적 갈등이 목 끝까지 차올랐을 때 큰 맘먹고 와이프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내가 큰 거 바란거야? 몇 시간만 다녀오겠다는데 그게 허락받을 일인가? 게임은 집에서하는 것인데 왜 그건 못하게 하는거야?"


이에 와이프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

"내가 선생님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데 앵무새처럼 무조건 안된다고 말하며 여보 단속시키는 것처럼 보였던 거야? 전혀 아닌데...."


이유는 간단했다. 요구가 TPO에 맞지 않았다는 것. 


와이프는 모든 우선순위가 가족이라 했다.

최소 한달간 머리속에 가족 스케쥴을 체크하고 아이 어린이집 행사가 있다거나 주말에 아이와 키즈카페를 가야한다거나 혹은 병원 진료가 예정되었거나 다음달 집안 행사가 있으니 그 전에 선물을 보러 간다거나.

다양한 이슈들이 있으니 본인도 약속을 잡을 때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남편에게 동의를 구한다고 했다.


남편들 한번쯤 이런 생각했을 것이다. 

와이프가 친구를 만난다고 하거나 머리를 하러 간다거나 처제와 쇼핑을 간다거나 혹은 1박 2일 친정에 다녀온다고 했을 때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무조건 YES!!!해주는데 왜 나만 Always NO야!!!


따지고 보면 나도 마찬가지지만 선심을 가장한 자유가 내포되어 있으니 와이프가 어딜 다녀온다고해도 딱히 거절을 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와이프의 말을 듣고보면 개인 약속은 한달치의 가족스케쥴 모두를 고려하면서 최대한 남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그런 날을 고르고 또 고른뒤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고 또 남편이 어딜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하는 빈도보다 반의 반도 안되는 특수한 경우이기도 했다. 그러니 남편입장에서 와이프의 외출은 유래없는 특별한 이벤트로 느껴졌을 것.



와이프의 입장.


상황 1.

오후에 산책을 다녀와 땀을 뻘뻘 흘린 아이들 샤워 시키고 새 밥차려 먹이고 겨우겨우 달래고 남편이랑 치킨에 맥주한잔 마시며 스트레스 풀 생각으로 꾹~~참고 있었는데!

이 남자... 갑자기 들뜬 얼굴로 나타나 이 밤에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한다.. 


상황 2.

다음주에 어린이집에서 수영장을 간다고 하는데 작년에 산 수영복이 작아서 울 애기에게 딱 어울리는 새로운 수영복을 찾아보려고 남편이랑 같이 골라보려고 하는데 이 남자... 저녁에 먹은 설거지를 말도 없이 후다닥 해버리더니 몸의 반은 이미 방에 들어가면서 게임을 하겠다고 한다. 아까 분명히 밥먹고 수영복 좀 같이 보자고 했는데...


와이프의 안돼!엔 왜 지금이냐는 수만가지 이유가 함축된 나름의 항의를 담은 저항이었고.

이를 알리 없었던 남편의 귀에는 그저 제지로 들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남편이 철이 없었네~~~라고 생각하는 것엔 동의할 수 없다.

와이프의 안되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하나 그것 역시 본인의 생각 속의 일정이었을 뿐,

화법을 바꾸어 "여보 오늘 너무 힘든데 이따가 육퇴하고 치맥 먹자"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주거나

"오늘은 우리 이런 일정이 있었는데 다른 날 다녀오면 안될까?"라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우리 남편들도 밑도 끝도 없이 약속부터 잡지 말고 미리 말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도 있겠다. 

"여보 오늘 저녁에 애들 골프치러 간다는데 나도 다녀온다!!" 보다

"여보 이번 주말에 친구들 골프 모임이 있다고 하는데 애들 저녁 먹이고 잠깐 다녀와도 될까?"라며 와이프 입장에서 충분히 인지가 되어 다른 계획을 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니까 여보..

오빠 이번주 토요일 저녁에 친구들하고 맥주한잔 하고 들어와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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