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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대만여행 3탄

에세이

by 청시 Ja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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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내 허당끼를 완전히 간파한 모양이다. 아직 일일 투어 약속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큰딸이 나를 재촉했다.

"엄마, 또 길 헤맬 수도 있으니까 빨리 출발하는 게 좋겠어요."

중국어는 잘하지만 길찾기에는 영 자신 없는 엄마가 못미더웠던 큰딸은 직접 구글 맵을 켜고 야무지게 길 찾기에 나섰다.

오늘은 '예스진지' 1일 투어를 예약해둔 날이었다. 10년 전 여름, 연수차 대만에서 2주간 머물 때 동료 중국어 선생님들과 함께 택시 투어로 다녀왔던 곳이었다. 그때의 날씨는 무척 화창했고, 모두 활짝 웃으며 대만 관광을 즐겼던 추억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아이들과 다시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미리 투어를 예약해두었다.

이번 여행은 버스 투어였다. 큰딸의 인도로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약속 장소. 그런데 출발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한 시간가량 북쪽으로 이동하자 빗물이 점차 거세졌다.

한여름의 파란빛을 자랑하던 예류 해변을 다시 보고 싶었던 나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우비를 살까, 우산을 살까 고민하다가 우산을 샀지만, 비와 함께 불어오는 바람에 우산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도 기대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비바람에 얼굴빛이 어두워졌고, 불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대만에서 꼭 가봐야 한다는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포함한 투어 코스였지만, 가는 곳마다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붐비지 않았던 기억인데, 그 사이 대만도 꽤나 상업화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예류에서 다소 실망했던 아이들은 스펀에서 소원 등불을 날릴 때만큼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한 해의 소망을 정성스레 적어 등불에 담고, 그것을 하늘로 날리며 올해도 무탈하기를 기원했다. 둘째 딸이 “아빠의 승진”을 소망으로 적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가게 직원들도 간단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능숙하게 우리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 주었다.

어스름하게 해가 질 무렵,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지우펀으로 향했다.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는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모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둘째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곳이라며 지우펀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더군다나 야경 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몰려드는 인파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걸려 있는 홍등은 지우펀만의 이국적인 매력을 더해주었고, 아이들은 이를 놓치지 않으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비좁은 골목길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올라가면서, 순간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스쳤다. 좁은 길목에 빼곡히 들어선 인파를 보니, 혹시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이곳에서 일어날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우펀 특유의 분위기와 풍경은 정말 특별했다.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다가 문득 엽서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겁낼 거 없어. 너는 다른 이와 다를 뿐이야.” 이 문구가 큰딸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처럼 느껴져 엽서를 손에 들고는 딸에게 건넸다.

"엄마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숙소에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 8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원래는 야시장까지 들를 계획이었지만, 10시간이 넘는 긴 투어 일정에 아이들도 나도 완전히 지쳐 있었다. 결국 모두 씻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비록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함께여서 마냥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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