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다..’
모더나 1차를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던 생리가 다시 시작됐다.
인터넷에서 백신 후유증을 검색하니 셀 수 없이 많은 ‘생리불순’ 후기가 나왔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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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면역을 위해 나도 맞아야겠지, 한참을 고민하던 중 외래진료일이 다가왔다.
“선생님, 저 백신 맞아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필요하죠, 맞으세요.”
걱정하던 남편도 한시름 걱정을 덜어낸 표정이다.
그리고 1차 백신 접종 후 3일이 지났을까, 분명 시작할 때가 아닌데,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출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을 무렵, 2차 백신 접종을 하고 또 이틀 뒤 시작된 부정출혈, 이건 생리가 아니다, 부정출혈이다.
다행히도 양이 많지는 않았고, 비슷한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 8월에 했던 자궁경부암 결과도 정상이었잖아.’
몇 개월 전 혹시나 걱정했던 검진 결과도 정상이었다.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한 달 뒤, 피는 멈췄다.
‘심상치 않다...’
22년, 코로나가 우리 일상이 되었고, 오미크론이라는 녀석이 우리나라를 지배해 갈 때쯤, 나에게도 무시무시한 녀석이 찾아왔다.
설을 쇠고 얼마 지나지 않은 토요일 아침, 출혈이 심상치 않았다. 분명 1월 말까지 열흘은 했었는데.. 양이 적었나, 아니면 진짜 생리를 시작한 걸까,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가장 큰 대형 패드 하나를 갈아치웠다.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글쎄..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며칠 계속 그러면 가볼게.”
27살 겨울쯤, 그 이후에 이런 양은 처음이다. 5년 만에 느끼는 도돌이표.
여자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지만, 누구나 비슷한 증상을 겪는 건 아니었다. 평소 생리주기보다 하루만 벗어나도 이상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일 년 내내 생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 편차가 심한 이 숙명은,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가.
앉아있는 게 불안하고, 자다가도 중간중간 일어나 오버나이트를 갈았다.
선지 같은 굵직한 덩어리들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떨어졌고, 덕분에 주말 약속을 전부 취소한 채,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월요일 아침, 오늘도 같은 증상이다.
‘그래, 오늘도 그대로라면 내일은 병원에 가야겠다.’
병원에 간다는 것. 나의 경험 데이터로 계산하자면 증상이 나타나고 일주일이 지나야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상치 않은 증상과 컨디션에 3일로 줄여 확정 지었다. 출혈 양이 많아서 인지 종일 무기력했지만, 집안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고, 평소와 같은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오빠... 119 좀 불러... 줘..”
피가 부족하겠다며 소고기를 사 온 남편과 함께 거한 저녁을 먹고, 남편이 설거지를 마칠 때쯤 나는 사과를 깎아 식탁에 앉았다. 그 순간이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고, 순간 그대로 쓰러져 넘어질 듯 아찔한 느낌이 들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소파로 향해 철퍼덕 쓰러져버렸다. 그래, 누웠더니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일어나지 못했고, 놀란 남편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꺼내어 차분히 전했다.
“혈압 80, 저혈압입니다.”
머지않아 구급차가 왔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도착할 때쯤, 조금 잦아들었나 싶었던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코로나 탓에 응급실에 들어가기까지 한참이 걸렸다.응급실에 들어간 후에는 의례적으로 거쳐야 하는 검사들을 받았고, 그날 밤 나는 격리병동에 입원했다.
멈추지 않는 하혈로 이미 시트는 핏빛으로 물들어갔고, 늦은 저녁이라 이미 진료시간이 끝난 병실에서 난, 지혈제와 영양제를 공급받는 게 전부였다.
갑작스러운 병원 행, 내색은 안 하지만 마음 졸였을 남편은, 잔심부름을 하며 든든히 내 옆을 지켜주었고,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차가움 속에 그나마 내게 한 줄기 따뜻함이 되어주었다.
“아무래도 자궁내막 증식증으로 보입니다.”
다음날 오후, 지혈제 덕분에 멈춘 하혈은 나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주었지만, 갑작스러운 조직검사와 진료 결과에 나는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14년 전과 비슷한 증상이었다. 그런데, 처음 듣는 병명이다.
그때는 미성년자였고, 지금은 결혼까지 한 성인이라는 것만 빼면 같은데, 물론 의사마다 다를 수 있는 진료 소견이겠지만. 왜 그때는 몰랐을까. 단순히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생리불순으로 10년을 넘게 살아왔는데.
“말 그대로 자궁내막이 자꾸 증식되어 두꺼워지는 병인데, 요즘엔 30-40대에 흔히 발병하는 질병이에요.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어서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 보기엔 simple 정도의 수준인 것 같습니다. 소파술을 통해 자궁내막을 긁어내고, 루프를 넣어 6개월 정도 치료한 후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임신 계획이 있었는데, 그럼 안 되겠네요..”
“루프를 삽입하는 게 원래는 피임을 위해 하시는 분들도 많아, 자연적으로 피임효과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결혼 3년 차, 유난히 아기를 예뻐하는 나는 올해는 꼭 임신을 해야겠다 마음먹었지만, 정초가 되자마자 찾아온 이 불행한 소식에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내 걱정이 먼저인 남편은 치료 후에 준비해도 늦지 않는다고 위로해주었지만, 나의 상실감은 치유가 되지 않았다.
‘참.. 이유도 가지가지다..’
혈당관리를 해야 하고, 호르몬이 불규칙해서, 생리불순이라서 참 가지가지한 이유로 방해받는 일이 많아져서 일까, 이번에도 잘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왜 매번 이렇게 고비를 넘어야 하는 일이 자꾸만 나에게 일어날까 참담한 마음이었다.
일주일 뒤 조직검사 결과는 의사 선생님의 예상대로였고, 다시 일주일 뒤 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당일 오전 9시, 입원하자마자 수술장에 들어가 수술을 기다리던 시간, 갑자기 나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다시, 다시는 수술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생각보다 간단했던 수술은 30분도 안되어 끝이 났다.
“수술실에서 나오면 추우니까, 수면양말이랑 핫팩 좀 챙기고.”
간호사인 언니가 전해준 꿀팁으로 나는 조금 덜 추웠지만, 회복실에서 평소에 느껴 본 적 없는 수술 후 복통에 시달려야 했다.
“진.. 통제.. 진통제 없을까요...”
병실로 돌아와 겨우 진통제를 맞고 살아났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데, 6개월 뒤 다시 겪어야 할 수도 있다니,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내 몸을 이제 한 바퀴 돌았을 진통제 덕분인지, 통증이 덜 해졌고, 그렇게 당일 퇴원을 했다.
비록, 약 없이는 생활할 수 없을 고통과 함께였지만.
14년 동안 나를 괴롭힌 호르몬 불균형, 자궁내막 증식증이 이제 찾아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 병은 재발할 수 있으며, 완치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다만 자연치유의 방법이 있다면,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자궁이 깨끗해져야지만 재발률이 그나마 덜 하다는 것이었다.
인슐린을 맞는 일처럼 매 순간을 힘써야 하는 병은 아니지만, 새삼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질병들이 있고, 그중 현대 의학기술로 완치가 불가능한 것 또한 많으며, 또 매 순간 병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
‘그래 그래도 나는 살만한 거지.’
이렇게 나에게 또 한 번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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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이 지나고 루프를 빼내었다. 한 달 전 있던 자궁의 혹도 사라졌다.
"이제 임신 준비하실 거죠? 안 하시면 내년 하반기에 루프를 다시 넣어야 해요."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아이를 갖고 싶었던 건, 오로지 나의 마음이 시키는 일이었는데,
다시 또 그 끔찍한 호르몬의 노예생활을 겪지 않으려면 임신밖에는 방법이 없단다.
갑작스레 강제성을 띠게 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의무감은 나를 되려 주춤하게 했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은 아직 남아있었다.
<2022년 10월 혈당 성적표 : 당화혈색소 6.4% >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 몇 가지 더 늘었다.
임신을 위해서는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당화혈 5.8% 이하로 유지하는 것.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을 해두는 것.
지속성 인슐린을 바꾸어야 할 수도 있다는 것.
출산 시 자연분만은 위험성이 있어 제왕절개로 해야 한다는 것.
임신을 하는 것도, 임신 중에도, 출산 후에도 쉬이 가는 길까지는 바라지 않는 것...
아무래도 이번엔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험난한 길이 될 것 같아.
요즘엔 건강한 사람들도 아이를 갖는 게 쉽지 않은 일 이래.
그러니, 혹시나 아주 혹시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너무 낙심하고 너를 비관하지 않으면 좋겠어.
너는 분명 열심히 할 거야, 하지만 너도 알잖아. 열심히 한다고 늘 좋은 결과가 있을 수는 없단 걸 말이야.
아이라는 선물은 욕심낸다고 오진 않을 거야. 그저 기다리고 준비하며 네가 그 시간을 행복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지나면 좋겠어. 머지않아 13년 전 5.8%였던 그 성적표도 다시 받아내길 응원해.
아. 그렇다고 너무 겁내지는 말고, 너는 생각보다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