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동물인 인간으로 태어나
다행스럽게도 아픈 기억을 잘 잊고 사는 나는
요즘 '얼마나 힘든 일이 있어야 기억에 오래 남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20대에는 내 몸을 갉아먹어도 좋으니
빨리 실력을 쌓고 싶었다.
하지만, 30대가 되니 몸을 갉고 싶어도 더 이상 갉아지지 않은 체력이 되었고, 내일만 보고 살아왔던 내가
20년 뒤를 내다보며 걱정을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1형 당뇨와 함께 지낸 지 15년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는
그 연차에 진입해 있는 나는 지금 두려움과 불안감이 몰려드는 삼십 대 터널의 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물론 관리만 잘하면 몇십 년은 거뜬하다고 하지만,
그 '관리만 잘하면'이라는 말만 간단한.
간단한 이 말은 때론 나를 압박하고, 좌절감과 죄책감을 가져다주는 녀석이 되어 벼렸다.
만사가 평안하면 좋으련만.
내 안의 호르몬 변화가 없었으면 좋겠다.
삼시세끼 균형 잡힌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면,
매일같이 운동을 하고 근심걱정 없이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쉬운 일일 테지만,
매번 우선순위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평온한 습관을
만드는 일은 또 저편 어딘가로 미뤄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힘들고 지치는 일들이 생각보다 빨리 잊히고
나도 모르게 긍정회로가 어디선가 재가동된다는
사실이다.
'아픔이 있어야 글이 잘 써진다'라고 하는데
서른넷의 나는 아픔을 더 빨리 지우려고 했나 보다.
힘든 기억과 아픈 기억이 당최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를 위해 거두어둔 힘든 일들을 애써 다시 재생산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프고 힘든 기억이 기억에서만 잊힐 뿐이지
세포 안에 녹아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를 지키려 하는 내가 든든하다.
한편으론 너무 나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나는 오늘도
양날의 검과 같은 현실에 타협한다
‘괜찮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