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는 술을 끊으라고 하지 않았다…그건 나의 ‘과한 경계심’
“지수 씨, 주량이 어떻게 돼요?”
질문이 거슬린다. ‘소주 반 병요.’ 대충 말하면 되는데, 그게 잘되지 않는다. 주량은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에, 멈칫한다.
‘소맥 다섯 잔요. 이렇게 말해도 안 되지. 완전 구라잖아. 이건 사기야.’
주량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가 싸해진 분위기에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주량, 이런 거 없어요.”
“에이~ 지수 씨, 내숭 떨지 말고 말해봐요. 주량이 어떻게 돼요?”
“모르는데요.”
“자기 주량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저는 몰라요.”
“왜 모르죠?”
“음… 주량이란 게 없으니까요. 그냥 눈에 보이는 술 다 먹어요.”
이렇게 말했더니 ‘갑분싸’. 그들은 내가 술을 마시기 싫어서 이런 대답으로 자신들을 ‘먹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난 너희들이 집요하게 물어서 답한 거야.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왜 묻니?’
2012년 9월, 술을 끊었다. 그전까지는 ‘말술’이었다. 술을 많이 마셨지만, 사고를 친 적은 없다. 알코올을 잘 분해하는 체질인 데다 기자 초년기 강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주량을 늘려가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다.
지극히 쾌활한 성격이지만 경계심이 강했던 나. 다정하면서도 마음을 열지는 않았다. 그래서 술을 좋아했던 것 같다. 술기운을 빌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 술이 들어가면 영혼에서 ‘나사’ 하나를 풀어 던진 것 같았다.
너그러워졌다. 평소 서운함을 느꼈던 이들과도 술을 같이 마시면 그들이 왜 그랬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친구가 됐다. 과한 경계심이 부른 오해는 경계를 푼 술자리에서 풀렸다.
나의 진면모가 드러났다. 자타공인 웬만한 개그우먼보다 더 웃긴다는 나의 유머는 빛이 났다.
술은 고단했던 언론사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지수야, 이따 술 먹자.”
이 말은 나를 춤추게 했다. 단독이든 특종이든 뭐든 다 물어오게 했다.
“김 기자님, 이따 한잔하셔야죠.”
저녁에 한잔 마실 생각에 취재 현장을 지치지 않고 누볐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름이 끊긴다는, ‘블랙아웃(Blackout)’을 경험했다.
3차를 하러 가자며 이동하는 과정에서 내가 급한 일이 있다며 먼저 갔다고 한다. 일행들은 택시를 잡아줬다. 문제는 택시에서 내린 뒤부터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가방을 뒤지다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감했다. ‘이상한’ 물건이 나왔다. 손바닥만 한 카페 진동벨. 카페 이름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건 우리 회사 건물에 있는 카페들 중 하나였다. 기억을 더듬어봤다. 안국역에서 출입처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택시에 올라탔고 어디선가 내렸다. 거기까지다. 왜 회사 카페로 갔을까. 누군가를 불러냈다면 통신 기록이 있을 텐데, 없다. 가방에서 신용카드 영수증이 나왔고 음료 두 잔 값을 지불했다는 것 외에는 정보가 없었다.
무서웠다.
‘기억이 끊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실수했으면 어떡하지.’
출근하자마자 그 카페로 갔다. 어젯밤 나를 봤다는 직원이 있었다. 내가 음료 두 잔을 들고 돌아다니는 걸 봤다고 했다. 이건 배회 수준이었다. 직원은 내가 누군가와 있는 건 보질 못했다고 했다.
‘술에 취한 여자가 홀을 계속 왔다 갔다 했다니.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은 거 같아. 그랬다면 직원은 저렇게 차분하게 말을 못 하지.’
섬뜩했다. 기억이 멈춘 시간 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격해져서 욕을 하거나 시비가 붙었으면 제3자가 개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일과 관련된 사람들한테 연락이 왔을 것이고. 사람들 눈치를 살폈지만 특별한 게 감지되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 이게 피를 말릴 줄은 몰랐다. 수면 위 내시경 검사를 받고 잠에서 깨었을 때 의료진들이 해 준 말이 떠올랐다.
“무슨 욕을 그렇게 많이 하세요. 깜짝 놀랐어요.”
나도 놀랐다. 내 안에 잠재된 과격한 나.
술을 자제해야겠다고 결심할 무렵,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주치의는 술을 끊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적당히 마시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끊어버렸다. 병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다. 상태가 나빠질까 봐.
술자리는 빠지지 않았다. 기자들의 술자리 대부분은 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다들 취해 있을 때 나 혼자 맨 정신이면 민망했다. 취하면 이상해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다른 자아’가 그들에게 빙의되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 변하는 또라이들을 온전한 정신으로 지켜본다는 것, 점차 흥미로워졌다. ‘빅쇼’를 관람하는 것 같았다. ‘나 홀로’ 맨 정신 술자리는 외롭지 않았다.
일상에서 술이 사라지면서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다가 책에 꽂혔다. 나라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경계를 풀 수 있는 대상은 가족과 책뿐이었다. 그리고 써 내려갔다. 읽고 쓰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금주가 건네준 선물이었다.
술을 끊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
후회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100% 금주가 아닌, 적정량을 마시며 여유를 즐겼으면 고단함을 덜지 않았을까.
경계를 푼다는 건 열린 마음으로 본다는 것이다. 대상은 사람일 수도 사물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무엇일 수 있다. 마음을 열면 ‘관계 맺음’의 가능성이 커진다. 가까워지고 어떤 형태로든 소통하게 된다.
친화력이 강한데 경계심이 많다는 게 모순 같지만, 나의 경우 두 가지가 공존했다. 세상을 향해 다정하면서도 방어 태세를 유지했다. 그든 그녀든 무엇이든 적으로 변한다고 해도 타격받지 않도록 말이다. 방어 태세를 갖춘다는 건 누군가가 언제든 날 공격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어쩌다 경계심을 이토록 많이 키웠을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강한 게 아닌데. 과도한 긴장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나의 내면이 유약해 경계하는 마음이 컸음을 인정한다. 그런 마음이 누그러지긴 했으나 아직 멀었다. ‘망고의 씨’처럼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내면을 갖추도록 노력 중이다. 세상에는 경계를 풀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꽤 많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