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넘게 걸렸다. 외로움을 안아주기까지…
밤 11시, 시내버스에서 내려 주택가로 진입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시커먼 나만 한 녀석. 내가 뛰면 그놈도 뛴다. 멈추면 그놈도 멈춘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늦은 밤 자취 집으로 향할 때 나는 가면을 벗었다. 강남 학부모를 휘어잡았던 여대생은 없다. 신설동 정류장에 내리는 순간 ‘무장해제’다. 배고프고 피곤하고 외로운 여대생으로 바뀐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자정을 기해 풀리는 것처럼.
골목길 인적이 드물다. 전봇대만이 휑하니 서 있다. 세워진 지 20년은 넘은 것 같다. 전봇대가 내 시야로 들어오는 순간 그놈이 모습을 드러낸다. 뒤에 숨어 음흉하게 웃었을 그놈.
그놈이 내게 말을 건넸다.
“야, 오늘도 씩씩한 척하느라 고생했다. 이제 하던 대로 해.”
나를 긁기 시작했다. 나도 그놈을 세게 먹이고 싶은데, 피곤하다. 집에 가서 할 게 많다. 밤을 새운다고 해도 다 못할 거 같다. 감정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한다.
그놈은 내가 집으로 들어오면 멈칫한다. 스탠드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으면 내 곁으로 온다. 그리고 말을 건넨다.
“많이 외롭지?”
…
그놈은 그림자다. 나의 그림자. 엄밀히 말하면, 그놈은 그림자의 몸을 빌린 외로움이다. 외롭다는 감정.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내 가면은 두꺼웠는데도 나는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았다. 또래들보다 빨리 어른이 돼야 했던 20대, 깊은 밤 혼자 있을 때 고개를 드는 외로움이 싫었다. 날 약하게 만드는 쓸모없는 감정이라고 여겼다.
돌이켜보면 그때 외로움을 마주하고 돌봐줬으면 훗날 우울이 삶에 침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들을 무시했다. 특히 외로움에 가혹했다. 외로운 마음은 자신을 봐달라고 소리 내고 손짓하고 화냈다.
외로움을 모른척하고 밀어낸 이유는 ‘비극’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가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에너지 넘치고 유머러스한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비극’을 공유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가까워지면서 동시에 방어막을 쳤다. ‘너희들은 여기까지야. 나를 더 알려고 하지 말아 줘.’
외로웠다.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운명은 가혹하다. 두 얼굴을 하고 살아야 하니까. 어느 순간 하나가 됐다. 가면에 맞춰 얼굴 근육이 바뀐 걸까. 가면에 새겨진 눈가 주름들, 입꼬리가 올라가 뾰족해진 턱. 웃는 표정의 가면이 얼굴에 붙어 ‘일체형’이 됐다. 벗겨지지 않는다. 울어야 하는 상황인데, 내 얼굴은 ‘웃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어떤 게 진짜 감정인지 모르는 지경이다.
외로움을 마주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약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무너질까 두려웠다. 외로움을 인정하는 순간 혼란에 빠질 거라고 믿었다. 정신적 ‘아노미(anomie)’ 상태, 예측할 수 없는 혼란 속에 ‘내면의 질서’가 붕괴할 거라고.
30대와 40대, 원 없이 일했고 기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았다. 기자라는 ‘뜻밖의’ 직업을 가지게 됐을 뿐 스무 살 때부터 계획했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변함없었다. 감정들을 무시한 채 살아가는 것도 같았다.
삶은 흘러갔는데…
감정들은 뒤죽박죽이다. 숨죽여있던 외로움이 폭발하려 한다. 자신을 무시해 온 나를 공격해 흔들고 싶어 한다. 그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울이라는 ‘센’ 놈으로.
협공에 가담하기로 한 우울이 외로움에게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얘는 웬만해서는 안 쓰러져. 한 방에 보내야 해. 얘는 철저히 본인 계획대로 움직여. 이런 애들한테 ‘쥐약’이 뭔지 알아? 무기력이야. 무기력하게 만들면 얘는 자책하게 돼. 본인 의지대로 살지 못한다고 느낄 때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야. 죄책감 느끼다 죽는 거지.”
우울이 간사하게 웃는다.
외로움이 눈치를 보며 말한다.
“좀 잔인하지 않아? 얘 죽으면 어떡해? 진짜 열심히 살아온 애야. 불쌍하잖아.”
“넌 열받지도 않냐? 얘가 너를 무시해 왔잖아. 그것도 수십 년.”
“그래.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우울은 자신의 ‘꼬봉이’ 무기력을 동원해 내 삶을, 내가 만들고 지켜온 ‘내면의 질서’를 짓밟았다.
혹시 바퀴벌레를 밟아 죽여본 적이 있는가. 몸속에 있는 알까지 죽이려면 발뒤꿈치로 땅을 파듯 밟으면서 으깨야한다. 바퀴벌레 사체는 ‘짓이겨진 무언가’로만 설명할 수 있다. 우울이 파괴한 내 삶도 그랬다.
나는 번아웃을 겪으며 나가떨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외로움과 우울의 계략대로 되는 것 같았지만, 이들은 내 마음속 ‘불씨’를 건들지는 못했다. 절대 꺼지지 않는 불씨. 평소 불씨는 활활 타올라 불덩이가 된다. 우울이 삶을 덮쳤을 때 불덩이는 사라지는 듯했지만, 불씨로 남았다. 타오를 ‘때’를 기다렸다. 불씨는 꿈을 향한 생존 의지다.
‘내가 죽긴 왜 죽어. 꿈을 이룰 거야. 다른 사람들도 꿈을 꿀 수 있게 해 줄 거야. 간절하면 이룰 수 있다는 걸 내가 증명할 거야.’
꿈을 향한 의지는 우울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줬다.
우울을 겪으면서 마음을,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관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이를 위해서는 감정들이 내게 하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만 삶에서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을 잠시 불러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상태 점검!
처음에는 나의 마음을 관찰하는 일이 겁났다. 원칙을 세웠다. 내가 힘들지 않은 선까지 기준선을 정했다. 감정을 다루는 일은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 시간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나는 이런 때 예민해지는구나. 이건 보통 사람들과 다르네.’
‘이런 때 빡치는구나. 나의 끓는점은 이랬어. 그래서 화가 났던 거야.’
‘그때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거야.’
…
‘많이 외로웠어. 항상… 왜 느끼지 못했을까. 모른척한 거겠지. 나 스스로 가스라이팅 한 걸까. 외롭지 않다고. 외로움도 사치라고.’
‘그때 많이 외로웠어. 과외 마치고 늦은 밤 강남역으로 향하는 길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마다 사람들로 가득했어. 그런 시간적 ‧ 경제적 여유가 부러웠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다고 느꼈지.’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공책에 썼다. 들여다보고 또 기록했다. 한 개의 기억을 소환해 글로 남기면 생각하지 못했던 기억들도 줄줄이 소환된다. 글로 쓰면서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작별해도 되는 ‘불순물’ 같은 일들은 기억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 중에 다시 평가되는 ‘보석’ 같은 일들은 기억 창고에 보관했다. 기록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외로움에게 사과했다. 외로움은 겁먹은 상태였다. 자신으로 인해 일상이 마비됐던 나를 많이 걱정했다. 내가 이 정도로 힘들어할 줄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나는 외로움을 안아주며 말했다.
“내가 미안해. 얼마나 힘들었니. 이제부터는 너랑 마주할 거야. 네가 얼굴을 들이밀면 할 말이 있는 거라고 생각할게.”
외로움이 내게 답했다.
“고마워. 이렇게 나를 상대해 줘서 고마워.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해. 우리도 들여다보면 좋은 점이 있어. 외로움도 사람들에게 좋게 작용할 때가 있다는 말이야.”
“나 이제 그거 알아. 깨달았어. 이번에 아프면서 말이지. 외로움을 잘 관리하면 삶을 보는 눈이 달라져. 나의 외로움을 마주하고 달래주면 다른 사람의 외로움도 보이더라. 그러면서 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게 돼.”
우리 둘은 꼭 끌어안았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내가 외로움을 안아주기까지. 외로움은 내 창작활동의 원천이자 든든한 후원자다.
…
그날 우리의 포옹을 지켜보는 놈들이 있었다. 우울과 무기력, 이 두 놈들.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놈들 이야기는 다음 편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