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벽을 깨고 나오니, ‘새로운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수 씨, 진짜 저녁 안 먹어요?”
“좀 전에 먹었어요. 드세요!”
“알았어요.”
“네.”
2009년 봄, 첫 직장이었던 라디오 방송사에 다닐 때였다. 아나운서들이 저녁을 배달시켰다. 나는 다이어트 중이었다. 그들의 메뉴가 궁금해지는 순간, OO식당 사장님이 사무실에 들렀던 게 생각났다.
‘그 집 파김치를 매일 담던데…’
식사가 끝난 분위기였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선배, 스튜디오로 빨리 가세요. 이건 제가 치워드릴게요.”
“아니야. 지수 씨.”
“뉴스도 하셔야 하잖아요.”
“고마워.”
난 배려심 깊은 후배가 아니었다.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였을 뿐.
내 눈은 선배들이 남긴 음식으로 향했다. 보도국에 나 혼자라는 것을 확인한 상태였다. 음식에 손을 대려는 순간, 누가 날 불렀다.
“김 기자님, 오늘 야근이시죠?”
욕이 나올뻔했다. 너무 놀라도 화가 나지 않는가. 경비 아저씨였다.
“식사 중이시구나. 제 후임이 이따 들릴 거예요. 인사드리려고요.”
“아. 네.”
“맛있게 드세요.”
“…”
먹는 걸 포기했다. 남은 음식을 쟁반에 올려놓은 뒤 신문지로 덮었다. 보도국 입구에 가져다 놨다.
자리로 돌아왔지만, 집중이 안 된다.
‘파김치 숨이 죽지 않았어’
투박한 입자의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새우젓으로 뒤덮인 쪽파.
결단이 필요했다. 쟁반을 향해 뛰어갔다. 신문지를 내던지며 바닥에 앉았다. 철퍼덕!
나는 가끔씩 식사 시간에 ‘인도 사람’이 됐다. 손을 사용하는 게 능숙했다.
미친 먹방의 본격화다. 대여섯 개의 가닥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씹는다. 쪽파 대가리 속 연한 조직이 터지자 5월 쪽파의 알싸함이 제대로다. 그런데 대가리에서 뭔가 뜨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대가리는 쪽파 대가리가 아닌 나의 머리통이다. 내 뒤통수를 달구는 쪽을 바라봤다.
중년 남자다. 얼음! 정지 상태다. 나도 정지. 새로 온 경비 아저씨였다.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목격한 표정이었다. 경악과 공포의 컬래버레이션! 그분은 이곳이 새 직장인데, 얼마나 충격적일까. 야근하는 기자한테 인사차 들렸을 텐데. 이게 나의 첫인상이 되는구나.
내 첫인사말은 ‘안녕하세요’가 아닌, ‘죄송합니다’였다. 이날 여기자를 처음 봤다는 아저씨는 여기자가 더 무서워졌다고 훗날 전해 들었다.
나는 대식가다. 그렇다고 잡스럽게 먹진 않는다. 고기와 밥, 채소만 먹는다. 햄버거 등 인스턴트식품은 거의 먹지 않는다. 맥도날드 햄버거도 한 달 전쯤 태어나 처음 먹어봤다. 신기한 건 먹는 양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TV 뉴스에 등장할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진행자가 화면에 꽉 차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키 164cm 몸무게 64kg이면,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난 늘 앉아서 진행했다.
“지수 세우지 마. 앉혀. 무조건.”
여자 선배가 PD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나를 아끼는 선배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나의 ‘직립’은 보기 민망한 것이다. 신의 축복으로 머리통이 작아 앉으면 하체 비만을 숨길 수 있었다. 카메라가 내 상반신 옆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으면 요상한 체형이 들통났다. 친한 PD들은 원고에 없는 자막까지 만들어 화면에 집어넣었다. 나의 복부를 가려주는 그들의 센스에도 불구하고 재킷의 단추가 생방송 중에 튕겨 나간 적이 있다. ‘딸랑~’ 그 청아한 소리, 금속 단추가 스튜디오 바닥에 튕기며 내는 소리였다. 단추는 저 멀리 카메라 감독님 발치로 굴러갔다.
후배들은 복대를 차라고 했지만, 싫었다.
“시끄러워, 기자가 진행하는 생방송은 콘텐츠가 ‘갑’이지.”
이렇게 말한 뒤 의상실로 가서 ‘간사하게’ 말했다.
“단추 안 채우고 그냥 입을 거니까 빌려주세요.”
감사하게도 17년 간의 기자 생활에서 거의 매일 생방송을 진행했다. 내 꿈은 전문 방송인이다. 체중 감량을 해야 했다.
2023년 11월, 퇴사한 지 9개월쯤 되었을 때다. 48kg. 퇴사 때보다 16kg를 뺐다.
돈을 들인 것도 아니었다. 하루 2끼 식사인데, 1끼는 밥 반 공기에 채소 반찬 왕창이었고 나머지 1끼는 삶은 계란 4~5개였다. 간식은 사과‧바나나‧양배추‧당근‧무‧두부‧치즈‧고구마‧견과류‧김 같은 칼로리가 낮으면서 몸에 좋은 식품 중에서 골라서 먹었다. 핵심은 삶은 계란을 하루에 무조건 4~5개 먹는다는 것.
대식가가 아이돌급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유, 그 이유는 간절함이다.
2023년 가을, 조금만 있으면 꿈이 펼쳐지려 한다. 감정에 취한 채 기다릴 수 없어 간절함을 시험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의지를 다지고 싶었다. 고통을 뛰어넘는다면 앞으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체중 감량에 도전한 것이다. 예뻐지고 싶은 욕심도 컸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를 시험하고 싶었다.
나는 곤두박질쳤다. 2023년 11월의 일이었다. 과거 가장 어두웠다고 느꼈던 시절이 어두운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 준 시련이 찾아왔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되면서 절망이라는 벽에 갇혔다. 이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답할 수 없었다. 어떤 장애물에도 거침없던 나였기에, 작아진 내가 낯설었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나를 대면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곧 깨달았다. 여기서 무너지면 살아온 날들을 부정하는 것이며, 작아져 버린 ‘낯선 내’가 진짜 내 모습이 된다는 것을.
다시 상황을 점검하고 모든 노력을 다 쏟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다이어트를 더 독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이어트는 내 정신력의 ‘바로미터’였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더 간절해야 한다는 믿음은 있었지만, 그 간절함이 어느 정도인지 나 자신에게 입증해야 했다. 이건 자학이 절대 아니었다. 의지를 확인함으로써 자신감을 다시 찾을 수 있었으니.
다이어트는 지금까지 성공적이다.
꿈이 있다면 간절함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게 얼마나 간절한지, 삶에서 어떻게 증명해 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만이 안다.
궁금하면서도 답을 알기 두려웠던 게 있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은 어디까지일까?’
조직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나는 답할 수 없었다.
최근에야 답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다 견딜 것이다.’
오롯이 홀로 서며, 완전한 야인(野人)이 돼서야 알게 된 것이다.
절망의 벽을 깨고 나오니, ‘새로운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나. 어떤 고통도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나.
꿈은 시련을 통해 나의 간절함을 테스트했다. 이 꿈을 꿀 자격이 되는지 확인이 필요했겠지… 그래야만 꿈도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해 줄 대상에게 갈 수 있으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