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뜻밖의 응원
비가 올 때 나는 각별하게 표정을 챙긴다. 웃음을 흘리지는 않았는지, 눈에 총기가 빠지지는 않았는지. 머리도 살펴본다. 꽃잎이라도 붙어있지는 않는지.
심하게 잘 웃는 나로서는 비 오는 날 조심해야 한다. 미친 여자로 오해받기 쉽기 때문이다.
2021년 4월, 꽃비가 내리던 날 새벽이었다. 나는 대놓고 미친 여자가 됐다. 서울 조계사 후문 골목길에 주저앉아 울었다.
평일 아침 생방송 때문에 새벽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회사 인근 조계사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수증기처럼 고운 입자의 부슬비와 함께 벚꽃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가로등 불빛을 조명 삼아 꽃잎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하나의 몸통에 붙어있던 꽃잎들은 제각각 빙글빙글 돌며 떨어졌다. 회오리바람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니 온통 꽃잎들이었다. 나도 벚꽃 잎이 아닐까, 그런 착각이 들 정도였다.
벚꽃의 절정은 만개가 아닌, 다섯 개의 꽃잎이 제각각 떨어지는 시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벚꽃잎들을 움켜잡으려 해도 잘되지 않았다. 낙화는 빨랐다.
물아일체(物我一體)란 이런 것일까. 너와 나의 구분이 의미 없다. 꽃잎들의 절정기가 맞나 보다. 난 황홀했고 가슴 벅찼으니까.
무언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쾌한 목소리였다. 이건 세상과 작별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다. 슬픔도 미련도 묻어있지 않았다.
이들은 앞다퉈 말했다.
“어떻게든 꼭 살아야 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가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살아야 해.”
“삶이란 이런 거야. 이렇게 살다 가야 해.”
“우리도 살다 가니까 너도 그러면 돼. 절대 포기하지 마.”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아니? 원 없이 살았기 때문이야. 살아야 해. 어떻게든.”
꽃잎들은 장렬하게 산화(散花)했고, 그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버팀목이 되어 준 신앙도 누군가의 글도 위로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연히 마주한 광경이 삶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아주 찬란하게.
그 광경은 말했다.
“이 정도면 위로가 되지? 그러니까 살아야 해.”
“응.”
땅에 떨어지자마자 빨리 사라져 버린다는 이유로 벚꽃을 동정한 적이 있다.
‘함부로 오해해서 미안해. 그건 내가 널 몰라서 그랬던 거야.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워냈고 떠나는 순간마저 빛나는 널 알지 못했어. 넌 삶의 어느 한순간도 빛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죽는 순간마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그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안녕을 빌어주며 세상과 이별한다는 것도 잘 살아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날 새벽, 나는 빗물에 젖은 수많은 벚꽃 잎으로 떡이 됐다. 머리부터 어깨, 등짝까지 온통 벚꽃 잎들이 붙어있다. 나는 살아있는 벚꽃 잎 압화(押花)가 됐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무서웠을 것이다. 꽃단장한 또라이였을 테니.
떨어지는 벚꽃잎들에게서 위로받고 힘을 얻을 줄이야.
인생은 생각하지 못한 대상에게서 받는 응원, ‘뜻밖의 응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열심히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난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분명한 건 예상하지 못하는 대상에게서 우리는 위로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올해도 벚꽃은 경쾌하게 세상과 작별할 것이다. 벚꽃은 다섯 개의 꽃잎이 되어 떨어지면서 말하겠지. ‘이런 게 삶이란다. 잘 살아야 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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