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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건물로 출근하는 기자

◆일러두기

이 글은 2023년 6월 출간한 『3,923일의 생존 기록』(김지수 지음, 도서출판 담다)일부를 수정‧보완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회사 근처 대학병원의 기자실이 리모델링했다는 얘기를 듣고 가 보기로 맘먹었다. 기자실은 본관과 떨어져 있는 건물에 있었다.

2016년 여름, 이른 아침 기자실이 마련된 건물에 들어섰다. 1층 로비에 대형 LED 화면이 설치돼 있었다. 화면은 로비 벽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화면에는 인물 사진들이 파노라마 방식으로 띄어져 있다.

‘와, 정말 예쁘다. 아이돌 같아. 요즘 애들은 셀카도 잘 찍어.’

몇 초 후 사진이 바뀌었다.

‘얘도 셀카네. 요즘에는 교복에 조끼가 있구나.’

다른 사진으로 바뀌려는 순간, 주저앉을 뻔했다. 이럴 수가!

내가 보고 있는 사진은 모두 영정 사진이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그제나 어제, 오늘 새벽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었다. 그때 나는 장례식장 건물에 들어선 것이었다. 기자실이 이 건물에 있었던 것이고.


LED 화면 속 사진은 해상도가 얼마나 높은지 얼굴의 주름이나 점까지 선명했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 같았다. 살아 움직이며 내 앞을 지나는 사람들보다 생생해 보였다.

사진 속 얼굴이 연세가 많아 보이는 어르신이면 세상 순리대로 떠났다는 생각과 함께 죽음이 그나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면 불운한 죽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셀카 사진이 LED 화면에 올라오면 예상하지 못한 고인의 죽음 앞에 황망해했을 유족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유족들은 영정 사진으로 쓸 고인의 증명사진 한 장 찾지 못해 고인의 휴대전화를 살피거나, 어쩌면 고인의 휴대전화 메신저 프로필 사진 파일을 다운로드했을 것이다.


넋 나간 듯 화면을 바라보던 나는, 내 휴대전화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봤다. 기쁜 일이 있는 듯 웃고 있다. 이 사진이 영정 사진으로 쓰일 수도 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고민이 생겼다. 이곳은 회사와 거리가 가까워 이용하면 좋겠는데, 문제는 영정 사진들을 봐야 하는 로비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눈을 내리깔고 걸어도 LED 화면 속 얼굴들이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가능한 한 그쪽을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시선이 갔다.

고인이 미성년자일 경우 심란한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사고였나? 병이었을까? 병이라면 어린이 병원에서 투병했을 거야.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당시 나는 죽음에 민감한 나 자신이 불편했다.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의 죽음인데도 오래 생각하고 감정이 이입되는 게 언짢았다. 노화로 인한 죽음이 아닌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들에 민감했던 것이다. 젊거나 나이 어린 사람들의 영정 사진을 보고 심란해한 이유다.

뭐든 순리대로 알고 접하고 배우면 문제가 없다. 순리에 어긋나면 언젠가 탈이 난다. 어렸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거대한 고통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죽음에 민감했던 건 그런 지난날의 ‘후유증’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후유증은 나 자신도 죽음을 탈출구로서 오래,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중증’의 후유증을 ‘경증’으로 만들기까지 겪어야 할 고통은 그 후유증을 부른 삶을 다시 한번 산 것처럼 컸다.

그때도 지금도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삶의 마지막에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한다. 그런 죽음은 삶에 충실한 일상들이 축적된 ‘결정체’라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단번에 죽음의 질은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에 놓고 바라보지만, 죽음이라는 건 무겁다. 죽음을 시험이라고 가정하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충실히 삶을 살아왔다면 언제 치르더라도 두렵지 않은 시험이라고 본다. 얼마나 준비된 죽음을 맞을 수 있느냐가 고득점의 관건이다.


삶에서 우리는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종착역은 죽음이다.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나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같다. 자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종착역을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에서 또한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종착역 인근에 와 있을 수 있다. 그 시점을 알 수 없기에, 오늘을 잘 보내야만 한다.

-(끝)-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xIlTEE0wts9WQkNA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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