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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본 ‘노란색’ 슬픈 눈

“태국만 갔다 와서 죽는 인생이 어디 있어?”…호스피스 병동을 울린 말

‘노란색이 이렇게 슬플 줄이야.’

병원에서 진료비 내역서를 보고 있던 나는,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노년의 여자가 앞에 있다. 내가 의자에 앉아 있기에, 우리는 눈높이가 같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나.


환자는 ‘노랗다.’ 개나리 같은 활기 띤 노랑이 아니다. 얼굴은 노랑의 침전(沈澱)이 다 이뤄지고 난 후의 누르스름함이다. 눈 몸에 쌓인 노랑의 농도를 가늠할 수 있는 건 눈의 흰자다. 진한 노란색이다.

‘어디서 봤었는데…’

환자의 딸이 나타났다. 딸이 휠체어를 돌릴 때까지 환자와 나는 서로를 바라봤다. 환자의 눈에서 체념한 듯한 슬픔이 느껴졌다.

모녀는 멀어져 갔지만, ‘또 다른 모녀’가 나타났다. 이 모녀는 내 기억 속에서 살아난 것이다.


“내가 너무 억울해. 해외여행도 못 가 보고 억울해서 어떻게 죽냐고!

“엄마, 엄마가 해외여행을 왜 안 갔어? 작년에 태국 갔잖아.”

“뭐라고? 이년아, 너 뭐라고 했어? 동남아가 해외냐? 돈 아끼려고 제일 싼 곳에 보내 주고서 뭐라고? 내가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미국이든 유럽이든 이런 데 갔어. 내가 너무 억울해.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해. 돈 한 푼 못 쓰고 악착같이 모아서 자식들을 키웠어.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 작년에 태국 갔다고 지금 지껄이는겨? 이년의 주둥이를 다 찢어 놓을까 보다. 다시 말해 봐. 이년아. 이 나쁜 년!”

“엄마, 진정해.”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병실로 몰려들었다.


“뭘 진정하냐고. 이년아, 너는 이 애미가 불쌍하지도 않냐? 내 나이 일흔도 안 됐어. 태국만 갔다 와서 죽는 인생이 어디 있어? 이 나쁜 년! 네가 대신 죽어라, 이년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여기가 죽을 날만 기다리는 곳이라며. 이런 곳에 처박을 때 알아봤어야 했어. 살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죽기만 기다리는 거 아니냐? 치료비가 아까워서 그러냐? 여기 수녀들만 돌아다니고 뭔가 이상했어. 여기! 산송장들 장례 치를 날만 기다리는 곳이잖아. 퇴원이 없다며? 여기 다음은 관 속이라며?”

“엄마, 그만 울어. 진정해야 해.”

“너도 내 꼴로 죽을 거야. 딸년 팔자 애미년 닮는다고 하잖아. 천벌 받을 년. 뭐 해외여행? 태국 하나 꼴랑 보내 주고서 하는 말이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봐, 이년아!”

2017년 8월, 인천의 한 대학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취재하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맞은편 병상 환자가 소리를 질렀고 환자가 딸의 머리채를 잡았다. 평안해야 할 호스피스 병동이 뒤집혔다. 간호사들이 뛰어와서 한 덩어리가 된 모녀를 뜯어말렸다. 부지깽이처럼 마른 환자에게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까 놀라웠다. 환자의 통곡 소리를 뒤로하고 딸이 병실에서 뛰쳐나갔다.


환자의 울부짖는 소리 중간중간 태국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병동을 집어삼킬 것 같은 그 소리가 마치 야생동물을 포획했을 때 내는 소리 같았다.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직감했을 때 내는 소리.

환자는 간암 말기였다. 딸의 머리채를 잡았던 두 손, 주저앉아 발버둥 치는 발도 노란색이었다. 발바닥까지 노랗게 변한 그녀의 몸은 우리에게 ‘노란색 카드’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똑바로 봐. 너희들도 나처럼 이렇게 갑자기 죽음을 맞을 수 있어. 그러니까 제대로 삶을 살아.’

그녀는 울음을 멈췄다. 간호사들이 그녀를 부축했다.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노랗게 변한 흰자에 핏발이 선 슬픈 눈.

그때 나는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한스러운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여기 있는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감정이 고조될 때 나도 그랬고, 깊게 한숨 쉴 때 그랬다. 곁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그녀와 어떤 연결점이 없는 사람들 모두. 그녀는 온몸으로 우리를 가르치는 것 같았다. 제대로 삶을 살라고.


자리를 떠야 하는데, 그냥 돌아선다는 게 예의에 맞지 않는다고 할까, 양심에 걸렸다. 그녀가 평안을 찾으면 지금 이 상황을 신경 쓸 것만 같았다. 간호사들이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도망치듯 뛰쳐나간 딸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당시 나는, 많은 환자들을 취재했기에 먼저 다가가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어머니, 한숨 주무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푹 주무세요.”

그녀는 알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천장을 응시하는 눈에 체념한 듯한 마음이 읽혔다.


‘오늘 같은 소동은 몇 차례 더 있을 거야. 그러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곳 호스피스 대부분의 환자들처럼 평온하게 마지막을 준비하게 되겠지. 죽음을 평온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건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을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이야. 그땐 그녀의 눈빛에서 체념이 아닌 초월한 자의 여유가 느껴질 거야.’

그녀가 딸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속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녀에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래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온 나날 중 한스러운 것들만 골라 랩으로 만들어 부른 래퍼.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면, 좋았던 날들보다 원통한 날들이 먼저 떠오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갑작스럽게 떠나야 하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니까. 평소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더 그럴 것이다.

“태국만 갔다 와서 죽는 인생이 어디 있어?”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유추가 된다. 자식들만 보고 살아왔는데, 먹을 거 입을 거 놀러 다닐 거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곧 죽는 것이다. 태국이 유일한 해외여행이 됐다. 1년 전 태국에 갈 때는 기뻤을 것이고 몇 달 전만 해도 여행을 추억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여명 앞에, 그녀가 태국 대신 미국을 다녀오고 우주선을 타고 달에 다녀왔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 정기 진료로 찾은 병원에서 마주친 환자에게서 8년 전 온몸으로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 환자가 떠올랐다. 하늘에서 평안하시길 빈다. 며칠 전 마주친 환자 분의 안녕도 기원한다.

-(끝)-

☆☆☆ 1년 전 제작한 유튜브 영상이지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어요! 클릭! 죽음에 대한 모든 것 | 당신도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다 [전 보건의료 전문기자 pick]

◆일러두기

이 글의 일부는 2023년 6월 출간한 『3,923일의 생존 기록』(김지수 지음, 도서출판 담다)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끝)-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xIlTEE0wts9WQkNA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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