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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궤짝을 바다에 버린 지 10년, 나는 괜찮다

그날 두 놈들을 해치우지 못했지만, 두렵지 않다


여자는 나무궤짝을 못질한다. 옆에 남자는 안절부절이다.


“이봐. 빨리 좀 해. 곧 밀물이 들어올 거야. 그전에 여길 떠나야 한단 말이야.”

“…”


여자는 못질이 다 됐는데도 여기저기 살핀다.


“놈들이 온단 말이야. 빨리 배를 타야 해.”

남자는 궤짝을 들어 배에 올린다. 여자는 연장 가방을 들고 배에 오른다. 두 사람이 탄 작은 배는 바다로 나간다. 배가 해안으로부터 멀어지자 사내 두 명이 뛰어온다. 허탈해한다. 배를 향해 소리 지르는데, 언어가 아니었다. 그건 저주였다.

여자는 사내들 소리를 들은 걸까. 당황한 빛이 감돈다. 그러다 웃는다. 웃음소리가 커진다. 노를 젓던 남자가 흠칫 놀란다.

“미친 거야? 왜 웃어?”

“…”

“이봐. 왜 웃냐고. 무서워.”

“…”


여자는 웃음을 멈추고 남자에게 묻는다.


“이쯤이 가장 깊을까요?”

“그런 게 어디 있어? 거기가 거기지.”

“아저씨는 알 거 아니에요?”

“여기에 버리자.”

여자는 궤짝을 들어 던진다.


“아! 속이 다 시원해요.”

왜 이리 빨리 던져. 돌 던지듯 던지네.”

“어차피 바다에 묻을 거였잖아요.”

“다른 해안으로 가자고.”

“네. 돈은 거기 내려서 드릴게요.”

남자는 노 젓는 방향을 바꾼다. 돈 받을 생각에 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봐. 이제 다 해결된 건가? 당신 괴롭힌다는 것들 바다에 수장했고.”

“…”

“아까 따라오던 놈들도 당신이 해치울 거 같던데.”

“한 놈을 더 해치워야 해요.”

“누구? 이번엔 어떤 놈이야?

“…”


여자는 아무 말이 없고, 남자는 불길하다.


“그 한 놈이 누구냐고.”

“아저씨, 아저씨가 이번에 죽어줘야겠어요.”


남자가 여자 쪽을 보는 순간, 여자는 배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도끼로 위협한다.


“아저씨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내가 궤짝에 넣는 것들 다 봤잖아. 어디에 묻는지도.”
“이봐. 진정해. 난 그쪽이 궤짝에 뭘 넣었는지 관심 없어. 그놈의 궤짝이 어디로 가라앉았는지 이걸 어떻게 알아? 말이 안 된다고. 이러지 마.”


남자는 애원하지만 여자의 눈은 돌아있다.


“고통 없이 가게 해줄게.

“이러지 마. 제발.”

“아저씨만 죽어주면 돼.”

“넌 날 못 죽여. 그럴 위인이 못 돼.”

“닥쳐. 이 개새끼야. 죽어!”


여자는 도끼로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이 비명 소리는 도끼를 맞은 남자가 낸 게 아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악몽을 꾸는 내가 낸 소리다. 자다가 비명을 지를 때가 가끔 있다.


바다는 구원의 공간이 되어줬다. 궤짝에 두 번 다시 마주하지 않을 기억을 넣어 못질했다. 바다의 깊은 곳에 던져버린 지 10년이 흘렀고, 나는 괜찮다.

떠올리기조차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기억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기억을 부르는 물건을 치우거나 관련된 장소를 가지 않는다고 기억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방법이, 해괴했다. 어차피 괴로워할 거 시간을 정해놓고 괴로워하자는 것이었다. 일에 방해되지 않는 시간을 정해 그때 한꺼번에 괴로워하자는 것. 황당했으나 당시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아침과 밤 시간대 하루 두 번 정해놨다. 낮에 일하다가 기억으로 힘들어지면 이따 집에 가서 힘들어하자면서 스스로 다독였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다. 감정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었으니. 괴로운 기억과 감정으로 일상이 파괴되지 않기 위해 신께 기도하며 그 방법에 매달렸다. 고통받기를 자발적으로 허용한 시간에는 생각나는 것들을 기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록은 체계가 잡혔다.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이 고통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써 내려갔다. 기자라는 직업의 영향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육하원칙에 맞춰 쓰기 시작했다. 글이 기사처럼 바뀌니 괴로움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괴로움’은 격한 감정에 휩싸여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적을 알아야 제대로 싸워 이길 수 있는데,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피하기만 했다. 무엇이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 두렵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팩트’를 볼 수 있다는 것, ‘팩트’가 무엇인지 알면 대응하는 법도 찾을 수 있다.


괴로움의 실체는 죄책감이었다. 사죄하는 길은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사는 것, 어떤 고난도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기억들은 모두 밀봉했다. 한데 모아 나무궤짝에 넣어 못질했다. 궤짝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묻었다. 그곳은 바다의 심해(深海)와 같다.

전문가들은 힘든 일을 털고 가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도 공감한다. 나의 경우 그렇게 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았다. 우선 내 방법이라도 써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문제없이 지내고 있다. 가끔 악몽을 꾸긴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나약함을 느끼면서도 악착같이 살아내려는 의지에 놀랄 때가 있다. 과거의 나는 고통스러운 기억들로 생존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약했던 게 맞다. 그러면서도 해괴한 전략까지 써가며 버텨낸 질긴 생존력을 가졌다.

힘들 땐,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이때를 생각한다. 바다에 그것들을 내다 버리기까지 겪었던 고통을. 고통에서 벗어나면서 한층 강해진 나를.


그때 내가 해치우지 못한 두 놈들, 우울과 무기력이 내 삶을 엿보고 있어도 두렵지 않다. 그들이 해안가에서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을 때 웃을 수 있었던 것처럼 여유가 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마음의 주인으로서 일상을 충실히 임하련다.


나의 사죄는 오늘도 이어진다. 열심히 살아야 하고 어떤 고난도 이겨내야 하는, 나의 사죄.

-(끝)-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xIlTEE0wts9WQkNA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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