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롼 프라이가 왜 없쬬? 제 비빔빱에 겨롼 프라이가 빠졌어요. 이거 어떻게 하실 건가요? 사좡님! 여뽀세요? 여뽀세요?”
2009년 라디오 방송사에 다닐 때였다. 야근 근무자였던 교포 출신 영어 방송 진행자 써니(가명)가 식당에 항의했다. 비빔밥을 배달시켰는데, 계란 프라이가 빠졌다는 것이다.
“쫘증나. 아까 겨롼 프라이가 있었는데, 왜 방송하고 오니까 없는 거야? 내 겨롼 프라이가 어디로 간 거야?”
그녀는 다시 전화했다.
“아니, 전화가 끊겼으면 다시 전화를 하셔야쬬. 내 겨롼 프라이가 사라졌어요. 내 겨롼 프라이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사좡님!”
나와 여자 후배는 죽은 듯이 메신저로 대화했다.
“선배, 어떡해요? 써니가 눈치채면…”
“걔가 어떻게 알아. 내가 먹은 거를.”
“써니가 모르겠죠?”
“나 이빨도 닦았어. 계란 냄새 안 나.”
써니가 후배를 불렀다.
“내 겨롼 프라이 어디 갔는지 알아요?”
“저는 잘 몰라요.”
써니는 바나나가 없어졌다고 난리 친 적이 있다. 바나나 다발을 들고 출근한 날, 내가 하나를 훔쳐먹었다. 주인에게 허락받지 않고 먹은 건 잘못한 일이다. 도둑질이다. 써니가 바나나 몇 개를 먹더니 옆 사람한테 먹으라고 하길래 내가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써니는 만만하지 않았다. 바나나 개수를 세었던 써니, 하나가 없어진 걸 알고 옆 사람에게 물었다. 먹었냐고.
‘망할! 지가 먹으라고 하고 왜 묻냐!’
써니는 사무실 쓰레기통들을 뒤졌다. 나도 만만치 않은 게 훔쳐먹은 거라 껍질을 가방에 넣었다.
겨롼 프라이 사건 당일, 써니가 방송하러 간 사이 나는 배달된 비빔밥의 계란 프라이를 훔쳐먹었다. 구차하지만 변명할 게 있다. 여태까지 써니는 전화로 주문하면서 ‘겨롼 프라이는 빼세요. 고추장도 빼세요.’ 이랬다. 어쩌다 실수로 프라이가 비빔밥에 들어 있으면 전화해서 뭐라 했다. ‘겨롼 프라이 빼라고 했는데 왜 넣었어요? 왜 넣었냐고요.’
사건 당일, 써니의 비빔밥에 프라이가 있는 걸 발견한 나! 내가 먹어도 괜찮을 거라고 여겼다. 게다가 써니가 계란 프라이를 발견하면 식당에 전화해서 뭐라고 할 게 뻔해 보였다. 어차피 버릴 거면 내가 먹자 이거였다.
예상은 빗나갔다. 배달온 비밤밥을 본 써니는 식당에 전화해 계란 프라이가 없다고 따졌다. 이날은 프라이를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사무실 문이 열렸다. 식당 사장님이었다. 사장님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아르바이트생도 없었다. 사장님은 일부러 오신 거다. 쟁반에는 계란 프라이 두 개를 담은 접시밖에 없었다. 이제야 내가 큰 사고를 쳤다는 걸 깨달았다. 사장님 부부의 생업을 방해했다. 얼마나 급했으면 맨발에 슬리퍼다. 식당에서 본 그 슬리퍼다.
‘내 겨롼 프라이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사좡님!’
써니가 했던 말이 맴돈다. 아무 잘못 없는 사장님이 나 때문에 봉변을 당하셨다. 잘못하지 않으셨는데 써니에게 사과하셨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장난 삼아한 일로, 누군가는 생업에 방해받았고 잘못하지 않았는데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한심한 나였다.
써니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했다. 일하고 와서 맛있게 먹으려고 했는데, 이날은 ‘겨롼 프라이’가 핵심인데. 그걸 내가 먹어버린 것이다.
사장님한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렸으면 사장님도 이해해 주셨을 텐데. 몇 달 뒤 경제지로 이직할 때까지 식당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사과는 결심했을 때 빨리 해야 한다. 잘못을 뉘우치면 미안함을 전하고 싶어진다. 간절함 때문에 용기 내는 게 어렵지 않다. 이때 빨리 사과해야 한다. 나는 타이밍을 놓쳤고 계속 미루다가 하지 못했다. 미룰수록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사과 같다.
써니에게도 사과하지 못했다. 편지를 써서라도 마음을 전했어야 했다.
왜 이 둘에게 즉시 사과하지 못했을까. 써니가 직속 선배였다면, 식당 사장님이 회사와 관련된 분이었다면 나는 즉시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불편한 이야기지만, 그 두 사람이 내 일상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진짜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타이밍을 놓침으로써 그런 마음이 식었고 나중엔 굳이 이걸 말해야 하나 이렇게 생각했다. 이기적인 마음.
잊히는 듯했다.
2년 후쯤인가, 충무로역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 날 불렀다.
“김 기자님 맞으시죠? 저희 이쪽까지 배달하고 있어요.”
식당 사장님이다. 오토바이로 배달 가시다가 나를 보신 거다. 반가우면서 그 사건이 떠올랐다.
“언제 식당 오세요. 서비스 잘해드릴게요.”
“갈게요. 사장님. 건강하시고요.”
식당에 갔다면 말할 수 있었을까. 말하면 사장님은 뭐 그런 일 가지고 그러냐며 웃고 넘기실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도 사과드리지 못했다.
2015년, 한 대학병원 기자실이 시끄럽다.
누군가 홍보팀 직원에게 항의하는 소리 같았다. 기자실을 기자만 이용하는 법이 어디 있냐고 따진다. 홍보팀 직원이 말한다. 그러니까 기자실이라고. (기자실인데, 왜 기자만 이용하는 거냐고 따지면.. 이때 진짜 웃겼음.ㅋㅋ 웬 또라이가 왔나 했더니 써니였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써니였다. 프라이 사건 발생 이후 6년이 흐른 때였다. 써니는 그대로였다. 이날은 바나나 다발이 아닌, 1.5리터 콜라를 들고 있었다. 써니는 나를 보자마자 기자실을 왜 기자만 이용할 수 있는 거냐고 뭐라 했다. 근처에서 외근하고 원고를 쓸 게 있어서 여기 들른 거다. 화가 안 풀린 써니는 홍보팀으로 갔다.
기자실 탁자에 써니의 1.5리터짜리 콜라가 놓였다. 한 후배가 그걸 먹으려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제지시켰다.
“먹지 마. 그거 먹으면 안 돼.”
“이거 공용 아니에요?”
“그거 개인 거야. 먹지 마. 안 돼.”
“네? 1.5리터짜리가 개인 거라고요?”
“응. 그거 먹으면 큰일 나.”
이 사건 이후 삶에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절대 음식을 훔쳐 먹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바로 실행한다는 것.
한 가지 사실과 마주했다. 내가 장난 삼아한 일로,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다는 것. 무겁게 또 아프게 다가왔다.
살아 숨 쉬는 한 우리는 모든 게 연결돼 있다. 나의 부주의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불편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드는 불씨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겼다. 훔쳐먹은 ‘겨롼 프라이’가 쏘아 올린 공이었다.
-(끝)-
무거운 소재들을 다룰 때가 많지만, 사람은 심하게 밝습니다. 좋은 봄날 되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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