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술에, 사랑에 취할 수 있어… 하지만 여기엔 안 돼

모든 걸 쏟아부었지만, 미워하고 원망하고 냉대했다

“너 자신에게 취(醉)했다는 것, 그게 네가 저지른 죄야.”

취한다는 것. 술에 취하거나 사랑에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취하면 안 되는 게 있다. 그건 자기 자신이다.

이 글은 나에게 아프다. 아물어가는 상처를 내보이며 긁어대는 것처럼 쓰라리고 부끄럽지만, 한 번은 짚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오를 다신 저지르지 않기 위한 결의의 표현이다. 내 소중한 독자들은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2년 동안 서점을 가질 못했다(중고 서점에 책 팔러 갔던 것만 빼고). 서점을 떠올리면 메스꺼움과 현기증으로 힘들다.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과호흡까지 겪는다.

이유는 망해서 그렇다. 내 인생 첫 실패였고 일상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힘들게 만들고 지켜온 삶의 질서가 파괴됐다.


날 망하게 한 그걸 미워하고 원망하고 냉대했다. 집 어딘가에 쑤셔 박아놓았다. 마음에서도 밀쳐놨다.

책이다. 내 책. 내 첫 에세이.

새벽 3시 글을 쓰고 출근했다.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오늘을 사는 이유는 진실한 한 문장을 쓰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기는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팠던 때였으나 시련조차 글을 쓰기 위한 경험이라 여겼다. 희로애락, 삶의 모든 부분이 책에 맞춰졌다.

좋았다. 딱 거기까지만.

경험이란 게 양날의 칼과 같다. 어떤 일을 겪었다는 것은 팩트(fact)로서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지만, 이걸 바라보고 기억하는 데는 해석이 들어가니까. 주관적인 해석. 경험이란 걸 신중하게 다뤄야 함을 깨달았다.


자타공인 미친 노력파인 나는, 유명 대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기자 생활도 라디오 방송사에서 시작했다. 이런 스펙으로 국내에서 규모가 제일 큰 언론사까지 들어와서 보건의료 전문기자 자리까지 꿰찼다. 남들의 몇 배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서 해냈다.(일에 빠지면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난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회사 이익과 공익을 조화시켜 사업화해 성공시켰고 이 과정에서 단독 보도를 꽤 했다. 사업화 과정에는 정부 역할이 있으니 취재 명분만 확실하면 정부에 사업의 가이드라인을 잡아 방향성까지 제시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었다. 내 생각들이 정책으로 구현될 때마다 심장은 터지려 했다.) 보건의료 분야, 국제 분야에서 모두 내 이름을 건 생방송을 진행했다. 10년 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기자로서 이례적인 일이자 감사한 일이다.

독이 될 줄이야! 내가 시도하고 도전했던 것들이 모두 성공했다. 여기까지 팩트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기에 당연한 결과로만 생각했다. 이건 주관적 해석이다. 노력한 것도 맞고 운이 따른 것도 맞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나는 ‘운(運)의 영역’을 무시했다. 운이라는 건 어디든 따라붙는 것인데 말이다. 모든 일에는 운의 영역을 생각해야 한다. 다음에는 운이 따라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최선을 다했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도할 때 운을 바라지만, 결과가 좋을 때 운이라는 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운이 따랐음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앞으로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면 지금처럼 성공할 거라고 100% 믿었다. 취한 것이었다. 나 자신에게. 만취 수준이다. 이성이 마비된 것이다.

진실한 글을 쓰려 노력한 것까지 좋았다. 인생을 건 글쓰기였다면 그 이후 선택들에 신중을 기하고 주변 사람들 말에 귀 기울였어야 했다. 신중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나는 폭주한 기관차였다. 퇴사라는 카드를 꺼낸 건 후회하지 않는다. 책이든 뭐든 승부수를 던질 만한 게 있었다면 퇴사는 예정됐던 일이다. 그래도 다수의 사람이 하는 ‘공통’된 말에는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책 3쇄 찍게 되면 퇴사하는 게 어때?”

“출판 전문기자를 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서 꿈에 도전하자.”

“우리 회사에도 출판부가 있으니, 여기서 책을 내 보고 정하자.”

이런 조언을 해주는 선배들, 임원들 앞에서 나는 성직자처럼 설교했고 강연자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인생에 관해. 이들은 나한테 설득당했다.

절체절명의 시기, 나는 자신에게 취했다. 그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기 확신이 넘쳤다. 내 판단만이 맞다는 거였다. 누가 말하면 닥치라는 거였다. 난 내 인생 잘 살 테니 넌 네 인생이나 챙기라는 것. 이건 교만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취하는 것. 교만은 파국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실패의 원인이 교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하늘이 노랬다. 참담할 땐 하늘이 항상 노랗다. 최근 들어 깨달았다는 대목도 슬프다. 책이 나온 지 곧 2년인데.

시도하고 도전한 것들이 모두 성공했더라도 의심했어야 했다. 어떻게 한 번도 결과가 나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상하지 않나. 당연히 운이라는 게 따른 것이지.

‘난 바보였나 봐.’


드라마 대사를 바꾸고 싶다.

‘난 교만했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생존형 긍정이 발휘됐다. 만약에 책이 잘 되고 계획했던 일들도 잘 됐으면 나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을 것이고 머지않아 추락했을 것이다. 높이 날아올랐을 때 추락한다면 타격은… 소름 끼친다.

2년 동안 하루하루 피를 쏟는 마음이었다. 교만이 화근이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지만, 날마다 내 인생에 속죄했다. 내가 모자라서 내 인생을 고생시킨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모자란 주인을 만나 고생한다고. 인생에게 나는 죄인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삶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일상을 살고 있으니 인생도 혼란스럽고 서글펐을 것이다. 이제부터 매 순간 마음을 살피련다. 교만이라는 놈이 싹트지 않는지. 그동안 우울과 무기력만 살폈는데 한 놈 추가! 교만은 교활함의 끝판왕이라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꿈을 향한 프로젝트들도 다 까였다. 줄줄이 까일 때마다 아팠다.

202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새로운 사계절! 그리고 올봄.

계절이 여덟 번 옷을 갈아입었다. 2년 전 우체국 가는 길, ‘다음 계절에는 웃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제안서를 동봉한 봉투를 든 손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낙엽이 떨어졌고 눈이 쌓였는데도 그 길을 걸었다. 그래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위로했다. 해가 바뀌고 벚꽃이 날리는데도 우체국 가는 길을 걸으면서 여름을 조심스럽게 상상했다. 가을을 지나 더럽게 추운 겨울에도 그 길을 걸었다.

어느새 2025년 봄, 찬바람이 가시실 않았는데도 벚꽃은 피었다. 우체국으로 가는 길은 예뻤다. 이젠 제안서 같은 건 필요 없다.

‘깨달았으니 된 거야. 반복하지 않으면 돼.’

이날은 고마운 선배님에게 보낼 소포를 손에 들었다. 오랜만에 우체국이 날 반기고 있었다.

-(끝)-


이건 서비스요!! 유튜브 숏츠!!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xIlTEE0wts9WQkNA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


keyword
이전 15화나만 보면 밥 먹자던 선배… 난 왜 먹어주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