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에 밀가루가 묻을 경우 부침 옷을 만드는 과정일 때가 많을 것이다.
그녀에게 미안하다. 자꾸 떠오른다. 이 광경이.
크고 동그란 눈, 밑으로 향한 입꼬리, 얼굴은 앞으로 쏠린 돌출형.
이런 그녀가 웃는다면, 어류에서 귀여운 얼굴로 변신이다. 인간으로 종(種)이 바뀌는 것이다.
그녀가 내 레이다 망에 들어왔다. 끌리면 관찰한다. 이번 끌림은 호기심 ‘플러스’ 도와주고 싶은 마음.
2012년이 저물어갈 무렵, 회사에서 알게 된 내 또래 여자, 사무직 직원이었다. 그녀는 진한 화장으로 유명했다. 나는 그녀가 얼굴에 연고를 과하게 바른 줄 알았다.
얼굴이 어류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게 돌출형이었던 것도 있지만, 피부가 고르지 않아서 그랬다. 그녀는 틈만 나면 화장을 덧칠했다. 귀여운 얼굴인데, 안타까웠다.
‘무슨 사연일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그 당시 나는 일에 빠져있어 퇴근하지 않고 회사에서 잘 때가 많았다. 오전 6시 메이크업 가방을 가지고 화장실로 갔다. 아무도 없다. 세수하고 있는데, 인기척이 났다.
‘이런, 그녀다! 이른 시간에 왜 여길? 벌써 출근한 건가?’
내가 세수하는 사이 그녀는 얼굴에 뭔가를 잔뜩 발랐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화장했다. 그녀는 안경을 벗었기 때문에, 내가 본인을 훔쳐보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내가 화장을 마쳤는데도 그녀는 파운데이션과 파우더 바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저거였다! 얼굴이 하얗게 떴던 이유! 파운데이션은 소량으로 얇게 펴 발라 흡수시키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많은 양으로 바르다 보니 흡수되지 않았던 것이다. 들뜬 상태에서 파우더를 바르니까 더 심각해졌다. 게다가 파운데이션과 파우더 모두 그녀의 얼굴색보다 밝아 피부에서 겉돌았다.
참견 모드 가동!
얼굴 라인 윤곽을 잡아주는 쉐딩용 왕 브러시를 들었다. 이 브러시로 쉐딩 제품을 얼굴 라인에 발라주면 얼굴이 갸름해 보이고 얼굴과 목이 단절된 느낌을 없애줄 수 있다.
“이거 이렇게 하면 얼굴 작아 보여요.”
난 그녀에게 들이댔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왕 브러시로 그녀 얼굴 라인을 따라 발라줬다. 살살. 조심조심.
“이건 볼터치! 언니는 핑크색이 어울려요.”
볼터치 브러시로 광대 주변을 콕콕 찍어줬다.
“근데, 아시죠? 볼터치는 코 밑으로 내려오면 망하는 거예요. 얼굴이 길어 보여서 말상이 되지요. 늙어 보여요. 브러시로 톡톡 쳐주면서 약하게 살살 굴려주면 그러데이션이 되어요.”
그녀 얼굴이 본연의 색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먼저 갑니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거 같아서 자리를 피했다. 화장을 해주면서 알게 됐다. 그녀 얼굴에 화상 흉터, 수술 흔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걸 가리기 위해 화장에 신경 썼던 것이다. 화장이 제대로 되질 않아 계속 들떴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고치고 또 고치고.
며칠 뒤 회사에서 잤다. 다음 날 새벽 그곳으로 갔다. 그녀가 있었다. 우리는 각자 화장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뭔가를 보여줬다. 쉐딩과 블러셔 제품이었다.
“샀네요! 잘했어요.”
“…”
“저도 얼굴이 어두운 편이라 제품들 색상이 밝지 않아요. 언니도 나랑 피부색이 비슷하다. 다음에 어두운 색상으로 써 봐요.”
“…”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도 살짝만 발라야 해요! 안 그럼 펭귄 입술 되어요!”
“…”
그녀가 웃었다.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보고 어류를 떠올리다니.
일주일 휴가를 다녀왔다.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계약 기간이 종료돼 회사를 떠났다고 했다. 아쉬웠다.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녀에게 줄 왕 브러시도 샀는데.
그녀가 화장하는 모습이 생각날 때가 있다.
진지하게 느껴졌던 건 태도 때문이었다. 화장 솜씨는 영 아니었으나 삶을 대하는 태도는 훌륭했다. 다행히 나는 서툰 화장 흔적의 이면, 그 너머를 볼 수 있었다. 그건 자칫 불운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던 아픔과 싸워 이겨낸 투쟁의 결과물, 강인함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공들여 화장하는 건 그녀에게 ‘의식(儀式, ceremony)’이었다. 삶을 대하는, 과거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의식.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나 강하고 현명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얼굴에 남은 흉터는 상당 기간 고통과 싸워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흉터란 상처가 아물고 난 자국이니.
흉터를 가리기 위해 화장품을 바르려면 가리려는 곳을 바라봐야 한다. 가리려면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흉터는 단순히 색소 침착 부위가 아니다. 기억을 부르고, 그날의 고통을 복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녀는 그런 차원을 이미 뛰어넘었다.
화장품을 덧바를수록 들뜨긴 했지만, 정성을 다했다. 그녀는 그렇게 남들보다 일찍 최선을 다해 하루를 시작했다.
나에게도 흉터가 있다. 과거 술 처먹고 자빠져 무릎 깨져서 치료받은 자국 외에, 마음에 울퉁불퉁한 흉터가 있다. 흉터의 뜻을 들여다보면 좋다. 흉터란 상처가 아물고 난 자국! 아물었다는 건 나은 것이니까. 새살이 돋았다는 거. 새살에는 더 건강한 세포들이 존재한다.
내가 그녀에게 자연스러운 화장을 알려줬듯 내 마음에도 가이드해주고 있다. 화장품을 소량으로 잘 펴 발라 흡수시켜야 자연스럽고 예쁜 얼굴이 되듯, 마음에도 과하지 않게 영양분을 주려고 한다. 살살. 조심조심.
그녀가 공들여 화장하는 게 과거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의식(儀式, ceremony)’이었다면, 나에게는 <삶을 지켜줄 ‘마음의 품격’>이라는 브런치북을 완성해 가는 게 삶을 대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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