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내 ‘또라이’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서울 도심의 밤, 여자가 회전초밥 집에서 뛰쳐나와 달린다. 곧 바로 남자가 문을 박차고 나왔다. 두리번거리며 여자를 찾는다. 그 사이 여자가 지하철역으로 진입하자 남자는 어쩔 줄 몰라한다.
16년 전, 나는 내 ‘또라이’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09년 6월의 어느 날 저녁.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한껏 멋을 내고 시청 인근 회전초밥 집 앞에 서있다. 노트북 가방 대신 핸드백에 샌들, 네이비 컬러의 몸매가 드러나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민소매를 입기 이른 시기인데, 나는 무슨 ‘작전’을 수행하듯 걸치고 있던 카디건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가 보인다. 유리문을 열고 조용히 걸어가 그의 뒤에 섰다.
‘어쩜, 뒷모습도 늠름해.’
그가 뒤를 돌아봤다.
“지수 씨, 언제 왔어요?”
“안녕하세요.”
“아,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가워요. 오늘 정말 예뻐요. 원피스도 잘 어울려요.”
“…”
그는 신이 났다.
‘응. 나 오늘 예쁜 거 알아. 이 원피스는 너 꼬시려고 산 거야. 3개월 할부로 샀지. 오늘 잘해보자.’
그는 신문사 기자 선배였다. 당시 난 라디오 방송사에서 일했고 우리는 서울시청에 출입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회사 선배에게 나를 소개해달라고 했고 회사 선배는 그와 나를 이어주려 애썼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얼굴조차 몰랐는데… 우연히 그와 마주쳤을 때 선하면서 귀족 같은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쌍꺼풀 없는 큰 눈, 오뚝한 코, 하얀 피부, 까맣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
“지수 씨, 우리 밥 먹어요.”
사슴 한 마리가 말을 한다. 저런 눈으로 같이 밥 먹자는데, 어떻게 안 먹을 수 있나. 거절하면 이건 천벌을 받을 것만 같았다.
‘암~ 먹고 말고. 계속 먹자.’
우리의 첫 만남은 회전초밥 집이었다. 그는 나를 편안하게 대해줬으나 나는 불안했다. 나는 이날 회전초밥 집을 처음으로 갔다. 회전초밥 집이 지금은 대중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레일 위에 초밥 담은 접시들이 한없이 돌아가는 게 어색했고, 레일 안쪽에 셰프들이 서서 초밥을 만드는 걸 보는 것도 불편했다.
나는 그의 왼편에 앉았다. 곁눈질로 그를 봤다. 그가 종지에 간장을 따르다가 흘렸다. 냅킨을 그에게 줬다.
“지수 씨랑 같이 있으니까 제가 긴장했나 봐요.”
나는 미소만 지었다. ‘나도 너 긴장한 거 알아. 오늘 살살하자.’
그는 가득 담긴 간장 종지를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선배랑 저랑 같이 찍어 먹으면 되죠.”
간장 종지를 우리 가운데에 놨다. ‘오! 이 여유로움.’ 그는 나를 보며 웃는다. 난 초반부터 승기를 잡은 거 같아서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잠시 자기소개를 했다. 우리는 이미 아는 사이인데. 아! 오늘은 남자 대 여자로 만나는 거라고 어필하는구나. 너!
“지수 씨, 이렇게 만나니까 뭔가 다르지 않아요?”
“그렇죠. 공적으로 만나는 것과 사적인 만남, 다를 수밖에 없어요.”
“어쩜 이렇게 똑 부러져요? 지수 씨는 되게 지적이고 단아해요”
“…”
‘아차’ 했다. 똑 부러진다는 표현! 남녀 사이 초반에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나는 말을 줄였다. 그가 하는 말에 웃으며 맞장구쳐줬다.
분위기가 좋아질수록 레일 위 초밥들이 불길했다. 초밥들은 왼쪽에서 오른쪽, 내가 있는 쪽을 거쳐 그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우리 먹어요. 그동안 지수 씨가 안 만나줘서 돈만 모았어요. 오늘 많이 먹어야 해요.”
그가 내 앞에 접시를 놓아준다. 나는 슬쩍 가격표를 봤다. 접시마다 가격이 다르다고 했는데, 여긴 보라색 체크 접시가 중간 가격이었다. 이거 위주로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접시에 초밥이 두 개씩 있는데, 이걸 둘이 하나씩 먹는 건가. 헛갈린다.
“지수 씨, 이거 먹고 교보문고 가요. 책 읽는 거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책 사주고 싶어요. 읽고 싶은 거 있어요?”
“음. 선배가 골라주세요. 인문교양 쪽이면 다 좋아요.”
그의 입이 찢어진다. ‘미션’을 던져주면 좋아할 거라는 엄마의 조언이 맞았다. 순간 ‘개 동생’이 떠오르는 건 뭔지. 간식을 던져주면 ‘환장’하는 개 동생.
“지수 씨, 우리 청계천도 걸어요.”
“네.”
‘암~ 걷고 말고. 너랑은 밤새 걸을 수도 있단다.’ 청계천 후미진 곳으로 안내하라는 후배들의 말이 떠올랐다.
소개팅할 거 같다고만 했더니 후배들이 나를 교육시켰다. 말 많이 하지 말고 성직자 같은 말 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고 환장한듯 웃지말고 뭐든 시식하듯 먹으라고 했다. 남자들이 잘 먹는 여자 좋아한다는 말 다 ‘개 뻥’이라고.
“지수 씨, 우리 맥주 한 잔씩 해요.”
“어, 저기 오네요.”
레일 위에 있는 병맥주가 다가오고 있다. 불길하다. 병맥주가 내 앞으로 오자 나는 병을 잡았다.
우두둑! 쩌어억! 두둑!
내 왼손은 병의 주둥이 쪽을 잡았다. 그런데 접착돼 있는 무언가를 잡아떼면서 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병이 생각보다 가벼워 놀라는 순간, 그때 일어난 일이었다! 레일 위 병맥주를 잡기만 했는데, 병에 무언가가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플라스틱과 나무 판지가 뜯긴 채 병 밑바닥에 달려있다. 달랑달랑.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럴 수가! 이건 모형이었다. 실물과 똑같이 생긴 모형!
병이 작아 보였으나 사이즈가 작은 걸 판매한다고 생각했다. 저 모형을 보고 손님들은 셰프에게 맥주를 주문했을 것이다. 아, 이 개 쪽팔림! 너무 당황해서 병을 계속 손에 쥐고 있었다. 아니, 병맥주 모형을!
“하하하. 우리 지수 씨, 유머 본능 있다고 들었는데 맞네요. 하하하. 이거 사진 찍고 싶다. 재미있고 귀여워요.”
그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셰프에게 건넸다. 팁을 주는 거 같았다.
“셰프님, 귀여운 아가씨가 기물을 파손했어요. 이렇게라도 마음을 표합니다. 오늘의 요리, 그거 2인분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는 이것저것 먹을 거를 챙겨주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거 같았는데 그 뒤로 잘 기억이 안 난다.
여기부터 기억이 생생해진다. 그가 말하고 있는 도중에, 나는 말도 없이 뛰쳐나갔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자 미친 듯이 뛰었다.
그날 이후 내근을 지원하며 시청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계속 연락해 왔지만,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멀어졌다.
나는 열등감 덩어리였다. 기자로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지만, 그건 기자일 때만 그랬다. ‘지수 씨’가 되면 작아졌다.
언론사 입사 시험 때 면접관이 “김지수 씨는 어학연수 경험이 없네요? 해외 체류한 적 없어요?” 이렇게 물었을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해외에서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접할 때, 저는 나이 많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상대했습니다. 이런 경험도 해외 체류 못지않게 배울 점들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답변했다. 거침없었다.
‘지수 씨’로 돌아오면 열등감은 이해할 수 없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날도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었으나 나는 매우 심각해졌다. 물건을 훔치다가 들킨 사람처럼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당혹스럽고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냥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다고 어린아이처럼 도망간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한동안 그날 일이 떠올라도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내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지만 왜 그랬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우울을 겪고 회복하면서 모든 의문이 다 풀렸다. 김 기자가 아닌 ‘지수 씨’였을 때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던 것들은 마음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나는 책임감이 징그러울 정도로 강하다. 김 기자일 때 조직에 피해 주는 것을 용납을 못했기에, 웬만하면 양보하고 궂은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맡아서 할 때가 많았다.
‘지수 씨’가 되면 참아왔던 것들이 이상한 형태로 나타났다. 참 ‘괜찮은’ 어른은 사라지고, 고집불통에 성질 더러운 어린아이가 됐다. 무엇보다 열등감 덩어리.
스무 살이 되기 전 가세가 기울고 불운이 시작되면서 모든 걸 감당해야 했다. 여린 성향인데, 모든 걸 억누르고 빨리 어른이 돼야 했다. 그런 경험이 지금의 강인한 나를 있게 한 건 맞다. 마음이 병들고 이를 방치한 것 또한 사실이다.
김 기자였을 때는 가면을 쓰기도 했다. ‘지수 씨’로 돌아오면 가면을 벗었고. 그렇다고 김 기자였을 때 모든 게 가짜는 아니었다. 두 개 모두 내 모습이 맞았다. ‘괜찮은 어른’과 ‘미성숙한 아이’ 모두.
우울을 회복하는 시간 내내 보건의료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기자였다. 다 알게 됐다. 그동안 내 인생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그러면서 타인들의 그런 돌발행동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돌발 행동에서 같은 패턴을 보이는 사람들은 마음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속에는 열등감에 절어 있는 아이가 살았다. 그 옆에는 늘 억울한 아이도 살았다. 인정받고 싶어 환장하는 아이,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아이도 있었다. 여러 ‘문제아’가 살았다. 이 아이들의 말을 다 들어주고 달래주고 성장시키기까지 힘들었다. 지금은 ‘문제아’가 없다. 다만, 가끔 무기력해지는 아이 한 명만 데리고 있다. 이 아이도 나아질 거라 믿는다.
자신의 돌발 행동에서 같은 패턴을 보인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또라이’가 될 수 있지만, 같은 패턴의 또라이짓을 계속한다면 이건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자신을 탓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마음속 아이가 하는 말을 들어줘야 한다. 오해가 있으면 풀어줘야 하고 달래줘야 한다. 그 아이와 화해해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
나의 독자들은 마음속 ‘문제아’들로 인해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는 일이 없길 진심으로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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