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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살(煞)풀이’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그 ‘일’이 있기 전까진

by 전직 기자 김지수 Apr 01. 2025

더디었던 인생행로가 예기치 못한 ‘사건’ 때문에 일사천리로 흘러갈 때가 있다.

    

나는, 기자라는 직업을 택할 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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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졸업 후 지상파 방송사 보도국에서 1년간 기자의 업무를 보조해 주는 리서처로 일할 수 있었다. 기획 뉴스 아이템을 발굴하고 취재 대상을 섭외해 기자들이 취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었다. 나는 리서처로 일하면서 기자라는 직업이 나한테 맞을지 시험하기로 했다. 몇 달이 지났어도 기자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단번에 마음을 돌리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20년이 넘도록 발설하지 않은 걸 보면 내 인생에 엄중했던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내 딴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위로하고 ‘가스라이팅’ 했지만, 가슴에 묻어뒀다는 건 상처가 깊은 일이라는 방증(傍證)이다. 상처받았던 내 마음, 내 영혼을 위한 ‘살(煞) 풀이’가 이렇게라도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2003년 가을, 부서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1차 삼겹살집에 이어 2차 생맥주집에서도 여느 때처럼 분위기가 좋았다. 옆 테이블에 다른 부서 사람들이 있었고 합석이 이뤄졌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옆자리로 왔다. 그는 다른 부서 남자 선임 기자로 내 오른쪽에 앉았다. 내 왼쪽과 맞은편에는 우리 부서 사람들이었다.

  

나는 술에 취하지 않는 체질이어서 취한 자들의 행동을 다 기억한다. 그날도 역시.     


술을 마시면 팔다리가 저리는 증상이 있는 나는, 그날 내 오른쪽 다리가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덥고 피곤해서 증상이 심한 줄 알았다. 그런데 벌레가 기어가는 듯 불쾌감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했다. 이럴 수가! 옆에 앉은 남자 기자가 내 다리를 잡고 있는 것 아닌가.


‘이거 성추행 맞지?’


‘내 다리 만졌어? 너 이 새끼!’     


그때 내 오른손은 포크를 쥐고 있었다. 예전 호프집 포크를 기억하는가. 네 개의 날이 길고 예리한 포크. 나는 닭의 다리를 찍었던 포크를 들어 내 다리를 만진 새끼의 손등을 내리찍었다. 망설임 없이 실행했다. 그때 내 머리의 ‘뚜껑’은 열린 상태였다. 케첩 같은 게 튀었다. 그게 핏덩이인지 양념치킨의 부산물인지 모르겠다. 그 새끼는 비명을 질렀다. 아파서 내는 신음 소리에 가까웠다. 내 귀에는 징그럽고 역겨운 짐승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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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멋진 ‘또라이’가 나섰다. 맞은편 젊은 남자 기자는 갑자기 소주병을 들어 소주를 그 새끼 손등에 부었다.


“야, 이 개새끼야. 뒤질래? 소주를 여기에 왜 부어?”

“소독하셔야죠. 피나잖아요.”     


다들 모여들었다. 아무도 나의 ‘돌발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무언가 일이 있었고 내가 빡쳐서 불쾌감을 표현했다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먼저 가보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더 있다가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때 나는 내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음을,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있던 시기였다.

    

여의도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 새끼가 얼마 전 우리 사무실에 왔을 때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전에 무슨 사고를 쳐서 지역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고. 감이 왔다. 성추행이겠지.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부서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눈에 보였다. 고민 끝에 노동조합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판단 내렸다. 노조원이 아니어도 가서 상의하면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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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부서장이 불렀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길래 술에 취해 실수로 옆에 있는 기자의 손등을 포크로 찍었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부서장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그 마음은 진심이라고 느꼈으나 ‘정치적 헤게모니’가 강한 그곳에서 내가 이용당하기 싫었다. 보도국 생활 몇 달 동안 나는 너무 빨리 세상을 알아버렸다.  

    

노조 사무실로 갔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긴 했지만, 내가 노조원이 아니라 본인들이 개입하기 힘들다고 했다. 여기자회나 여사우회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씨발, 내가 비정규직이라 이거지.’     


알고 지낸 여기자를 불러내 사정을 말했다. 그녀는 그 새끼를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녀를 통해 여기자회 사람들을 만났으나 소득이 없었다. 그땐 내가 기자가 아니라서 도와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자회 안에서도 일부 세력은 그 새끼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걸 꺼렸을 테니.     


‘내가 기자였으면 도와줬겠지.’

‘내가 기자였으면 그 새끼는 내 다리를 만지지 않았을 거야.’     


여사우회에서는 내가 정규직 직원이 아니라서 도와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 씨발, 이렇게 큰 회사에서 나 하나 도와줄 인간이 없구나.’    

 

그 새끼 손등에 소주를 부은 남자 기자는 그날 눈치챘다. 악명이 높은 새끼가 내 옆에 앉길래 불길했다고 했다. 그 기자는 신문 기자를 소개해 주겠다며 기사로 터뜨리자며 자신과 동료 기자들이 돕겠다고 했다. 1년 차 기자였던 그가 무척 ‘크게’ 느껴졌다. 고마웠지만 내키지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거절당하는 과정에서 지쳐있었다. 시큰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는 것도 지겨웠다.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노조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진행 상황을 물었다. 도와주지는 않고 상황 체크만 한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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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로 응징당한 새끼는 나를 피했다. 그날 나의 행동만 보더라도 내가 본인의 기자 생명을 끊어놓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걸 직감했을 터. 우리 부서 누군가가 말해줬겠지. 쟤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그날 그 정도였으니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나를 믿어주고 챙겨주는 부서장에게 다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난처해질 거라는 걸 다 알기에 참았다. 그 일이 있기 전, 그 새끼가 우리 부서에 와서 부서장을 갈궜다. 지가 회사 안에 든든한 줄이 있다는 이유로 부서장을 함부로 대했다. 당시 나로서는 내가 그런 새끼한테 성추행 당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자괴감이 깊어졌다.     


원했던 건 노조나 여사우회, 여기자회를 통해 문제 제기해 그에게 경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과받고 그는 징계받는 것. 사내 조직의 도움을 받고 싶었으나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면서 상처만 덧났다. 무력감도 느꼈다. 


‘자신이 무력하다는 걸 느낀다는 것만큼 슬프고 더러운 기분이 있을까.’

     

엿같은 무력감.     


성추행 건으로 이렇게 힘든데 나보다 더 깊은 상처를 가진 이들은 이런 과정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 것일까, 처음으로 생각이 ‘확장’됐다. 나의 시야는 오직 나한테만 머물렀었는데, 사회 구성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피해자 경찰 조사 과정에서 스스로 삶을 등진 이들을 다룬 뉴스가 떠올랐다. 가슴이 저렸다.


내가 ‘약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약자, 약한 자, 사회적 약자. 내가 그런 거구나.’     


그러면서 ‘불똥’은 다른 곳으로 튀었다.     


‘그래, 기자 그거 나도 한번 해보자. 그까짓 거 ‘쓰레기’들도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해? 기자! 내가 해보자.’

    

기자가 된 결정적 계기는 엿 같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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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일하면서 성비위(性非違)에 민감했다. 언론사에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큰 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비정규직 여자 후배들이 그런 일을 당하지는 않는지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을 겪고 2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미투 운동이 일었고 직장에서도 성비위는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직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사회 전반적으로 성희롱‧성추행‧성폭행과 관련해 ‘예민’해지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이 문제로 인해 스스로 옷을 벗거나 옷 벗김을 당하면서 법의 처벌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각 분야에서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오르려면 성비위 문제가 없는지 ‘심사’ 받아야 하고 그 과정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한때 나의 무력함과 비겁함에 힘들었다. 왜 포크로 그 새끼 손등만 내리찍고 어떤 말도 하지 못했을까. 피해자라고 말하는 게 눈치 보였고 소란을 일으키는 것 같아 싫었다. 당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묵직한’ 두려움이, 내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게끔 날 누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현실 속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듯 삶을 이어가야 했던 20대의 나는, 무력했고 비굴했도다! 


몇 달 전 오징어 게임 시즌 2를 보다가 기함했다.


‘아 씨발, 포크! 똑같이 생겼어.’


포크로 사람 목을 찔러 죽이는 장면에서 기억 저 밖으로 던져버렸던 그 ‘사건’이 소환됐다. 


이렇게라도 ‘살풀이’를 한다. 22년 전 상처받은 내 영혼을 위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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