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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상에 걸린, 내 스카프

그리움 앞에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사물을 택했다. 그리움을 투사해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나와 닮은 남자를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났다. 그는, 내 스카프를 풀게 했다.


2016년 봄, 호스피스 병동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취재원을 만나러 가는 길, 누군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색깔이 참 곱다. 고와. 우리 딸이 하면 예쁘겠어.”

“네?”


한눈에 봐도 간암 말기라는 걸 알 수 있는 노년의 남자다. 얼굴에 황달이 심했고 부은 손과 발까지 노랬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의 시선이 내 목을 향하고 있었다. 목을 감싼 보라색 스카프에.


“색깔이 고와서 그래. 아가씨 몇 살이야?”


나이를 말해줬다. 주저하지 않은 건 이곳이 일반 병동이 아닌 호스피스 병동, 말기 환자들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환자들을 향한 배려가 우선 돼야 하는 곳.


“우리 딸이랑 나이가 같아.”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생각하지도 않은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 스카프 드려도 될까요?”


상식에 어긋나는 발언이었다. 착용하던 스카프를 처음 본 타인에게 준다는 것,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기다렸다는 듯 그는 간병인을 불러 가방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가 5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자, 내 입에서 비상식적인 말이 또 나왔다. 5만 원짜리 한 장만 주시면 된다고.


“이 스카프 비싼 거 아니에요. 한 장만 받아야 제 마음이 편할 거 같아요.”

“알았어. 우리 딸이 보라색을 좋아해. 고마워.”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어떤 일이든 가볍게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환자들이 머무는 곳은, 어떻게든 이들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을 비워두면서 이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듯이.


그때 나는 아버지뻘 되는 환자에게 연민을 느꼈다. 최소 20년 이상은 더 살 수 있는데, 그는 이곳에서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여긴 퇴원이란 없으며, 죽음을 맞은 후에야 이곳을 떠난다. 그도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딸이 착용하면 예쁠 것 같은 스카프를 발견했다. 이곳을 찾은 딸 또래의 낯선 여자에게서.


이날 취재가 끝나갈 무렵, 수간호사가 나를 찾아왔다. 아까 환자와 무슨 얘기를 나눴냐며 말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호스피스 병동 특성상 의료진이 할 수 있는 환자 보호 차원의 질문이었다. 나는 환자와 있었던 일을 말해줬고, 그녀로부터 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딸을 비롯해 그의 직계가족은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누나와 남동생만 가끔 온다는 것.


‘이상하다. 딸이 면회 올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병원을 떠나기 전 그에게 인사하기 위해 병실로 갔다. 그는 잠들어 있었다. 시트와 이불이 너무 하얘서일까. 그의 얼굴이 더 노랗게 보였다. 그의 잠든 모습을 보며 세상을 떠날 때도 저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이 병동에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 이 모습은 내가 본 그의 마지막이 된다. 이 병상에는 다른 누군가가 누워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삶의 마지막이 이렇게나 쓸쓸하게 기억돼야 하는가. 호스피스가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해 선택한 최선임이 맞지만, 운명을 받아들인 자의 모습에서 보일 수밖에 없는 덧없음이 싫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기에, 인간은 운명에 굴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을 아는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임종이 임박했을 때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환자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쯤 되어 보였다. 천사들이 병상에 누워 신의 부름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고통도 회한도 슬픔도 미움도 초월한 경지. 존엄한 죽음을 목격한 자의 충격은 인간은 반드시 존엄하게 죽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바뀌었다. 죽음이 내 삶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배경 중 하나다.

병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저건 내 스카프!’


병상 발치 쪽 링거 걸이에 스카프가 묶인 듯 걸려있다. 목을 감쌌을 때만 스카프가 맞지, 쇠 막대에 걸려있으니 천 조각에 불과하다.


일반 병동에서 취재할 때 링거 걸이에 작은 동물 인형이 걸린 것을 봤다. 환자의 자녀들, 손주들이 걸어놓고 간 것들이다. 그 링거 걸이에 스카프가 걸린 것이다. 조금 전까지 내가 하고 있었던 스카프.


그는 스카프를 걸어 두고 딸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는 딸. 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딸을 생각하는 건 분명해 보였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그리운 분이 생전에 입었던 카디건과 비슷한 것을 입은 남성을 보거나 웃는 입매, 옆모습이 비슷한 사람을 보면 빤히 쳐다본다. 정말 흡사한 사람을 봤을 때 말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이 스카프 드려도 될까요?’ 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인지 모른다.


우리 딸이 하면 예쁘겠다는 말, 그는 그 말로 딸 또래의 여자를 멈춰 세웠다. 그 여자는 하고 있던 스카프를 줬고 남자는 값을 치렀다. 중고 물품 거래도 이렇게 순식간에 척척 이뤄지지 않는다.


그가 나를 통해 딸을 봤을 때, 나는 아버지를 봤던 것 같다. 그는 내 아버지였다.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줄 스카프를 원했던 것이다.

공부보다 연기에 빠져있고 연극제만 나가면 상을 타고 딴따라 기질이 넘쳐났던 내가 배우의 꿈을 접고 기자가 된 것. 보건의료 전문기자라는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자리를 오랜 시간 꿰차고 있었던 것도 결국 아버지 때문이었다. 세상에 아픈 ‘아버지’들을 기자로서 챙기라는 아버지의 뜻.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삶이 나를 그 길로 인도했다. 병원 트라우마까지 넘어서며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부녀간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환자가 딸을 만났을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뭐가 중요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깊이 딸이 존재하거늘. 스카프를 보며 딸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움이 투사된 스카프.


나 또한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들여다보는 게 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함께 말할 수도 없지만 괜찮다. 마음속에 깊이 자리해 오감을 동원하지 않아도 함께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이란 그런 것. 공간이란 개념은 필요하지 않다. 연결돼 있음을 항상 느끼기에.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건강하게 사시다가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끝)-

https://youtube.com/shorts/BwCTyBmnHX4?si=Od021xBFWiBbMgQ1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TTWVZzeeN-H5cL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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