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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때 기증한 조혈모세포, 백혈병 환아 살렸다

‘나는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의대생들이 졸업하며 외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맨 앞에 나오는 내용이다.

*선서 : 여럿 앞에서 성실할 것을 맹세함.


의료대란으로 모든 의료진이 도매금으로 비난받고 있지만, 현장에서 묵묵히 의술을 펼치는 의료진도 적지 않다. 환자를 살리는 일을 자신의 사명 이상으로 삼는 이들 중에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환자에게 내주기도 한다. 기꺼이… 이런 미담은 끊이질 않고 있다.

2016년 12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대학병원 의사가 백혈병 환아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했고, 환아는 완치했다는 것.

당시는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면서 의사들의 비윤리성이 비난받았던 때였다. 대리 처방, ‘비선 의사’ 등 의료계의 각종 폐단이 드러났다. 의사가 사회적 신망이 두터운 직업군이었기에, 국민들은 허탈해했다.


그런 시국에 전해 들은 인술을 실천한 의사의 사연은 매우 반가웠다. 당시 나는 의료계만 연일 때리는 뉴스만 제작해 오던 터, 미담을 취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데스크의 취재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와 영상취재기자, 오디오맨은 인천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선배, 오늘은 조지러 가는 거 아니네요. 오래간만에 마음이 편해요.”

“병원에서 몇 번이나 확인하던데. 왜 오냐고.”

국제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외래.


진료실 문을 열자 믿음직스러운 젊은 남자가 있었다. 의사라기보다 선량한 젊은이. 내 느낌은 그랬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그가 어떤 선행을 베풀었나 알고 있어서인지 그렇게 느껴졌다.


그는 이 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였다. 우리는 서로 반가워했다.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경계가 사라진다. 처음 만난 사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악수를 위해 내밀었던 손인데, 반가움에 두 손을 부여잡고 있다가 웃으며 놓았다. 우리는 이런 사연이 뉴스로 보도되면 조혈모세포 기증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자님이 제일 먼저 달려와 주셨고요.”

“어수선한 시국이지만 연말이잖아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뉴스로 만들어서 종일 방송되도록 힘써 볼게요.”


그는 사연을 설명해 줬다.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기증받은 백혈병 환아가 완치됐다는 것. 기증한 건 의대생 시절이었고, 12년이 지난 후 유전자형이 일치한 환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고 또 완치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신의 신체 조직 일부로, 누군가를 살렸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건 직접 겪지 않고 그 기쁨을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기증자가 사람의 몸을 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의사라면, 인체의 신비로움이란 과학적 원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조혈모세포와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타인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우리 중 하나가 백혈병에 걸렸을 때 서로의 조혈모세포로 살릴 수 있다는 것. 이런 극적인 인연이 또 있을까.

혈액을 만드는 세포인 조혈모세포는, 백혈병이나 암 환자에게 적절한 시기에 이식해 새 생명을 이어가게 해 준다. 조혈모세포의 유전자형 일치 확률은 부모 5%, 형제자매 25%이며, 가족 중 일치하는 사람이 없으면 비혈연 기증자를 찾아야 한다. 문제는 타인 간 일치할 확률은 수천에서 수만 명 중 1명에 불과할 정도로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기증해야 환자가 이식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기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기증할 땐 학생이었는데, 이 연락을 받았을 때 한 아이의 아빠가 돼 있었어요. 감회가 새로워요. 아빠가 되니 생명을 더 생각하게 돼요.”
“드라마틱하네요.”
“이런 사례가 널리 알려졌으면 해요.”
“조혈모세포 기증이 뭔지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그는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를 뽑는 방식이 예전처럼 큰 고통이 따르지 않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골수가 아닌 말초혈관에서 조혈모세포를 채취한다고 강조했다. 큰 고통 없이 헌혈하듯 피를 뽑되 헌혈량보다 많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골수에서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던 것으로만 알려져 큰 고통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요즘은 말초혈관에서 뽑기 때문에 큰 고통이 없어요.”


마침, 병원에 조혈모세포 기증자가 입원해 있어 기증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전날 입원한 기증자는 이날 아침 조혈모세포 수치가 높게 나와 채취하기로 했다. 채취실에서 만난 청년은 병상에 누운 채 채혈장비를 이용해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 중이었다. 말초혈은 전신을 순환하는 혈액으로, 기증에는 4~5시간 걸린다. 기증 과정은 헌혈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아프지 않고 다만 기증을 위해 2~3일 입원해야 한다.


청년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 기증하게 됐다며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증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교수의 모습에서 12년 전 의대생의 모습이 그려졌다. 교수는 기증자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으로 인해 한 사람이 살게 될 거라고. 내가 느끼는 기쁨을 당신도 느낄 거라고.

이 둘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 잊고 지냈던 한 소녀가 떠올랐다. 내가 만난 환자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일깨워준 소녀.


2010년 1월,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소아 백혈병 환자를 만났다. 소독 가운을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무균실로 들어갔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열 살 여자아이는 밝았다. 당시 나는 소아 백혈병 환자를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아이는 머리카락만 없을 뿐이지 하고 싶은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또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큰 고통이 따르는 치료 속에서 천진함을 잃지 않도록 돌본 부모님의 사랑이 위대하다고 느꼈다.

“제 기사 잘 써주세요. 친구들이랑 선생님한테 알려주고 싶어요.”


아이는 자신의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을 보여주며 이때는 머리가 이렇게 길었다고 했다. 아이의 검은 눈동자처럼 까만 머리카락이 길고 풍성했다.


아이와 이야기하면서 이곳이 무균실이고 아이가 백혈병 환자라는 사실을 잊곤 했다. 헤어질 때도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사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일주일쯤 지난 후, 기사가 보도됐다.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기자님, 기사 잘 봤습니다. 어떡하죠. 아이가 죽었어요. 저희도 조금 전에 알게 됐어요.”


아이는 기사를 읽어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호전되는 상태였기에 그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의료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의료 분야 취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충격이 매우 컸다.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에 슬픔과 함께 자괴감으로 괴로웠다. 아이는 죽고 없는데, 나는 암 병동 르포 기사를 통해서 소아암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희망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예시로 그 아이가 나왔다. 기사에는 치료 경과가 좋다는 주치의 소견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통계와 논문, 현장에서 느꼈던 기자로서의 감도 담겼다.

아이 아버지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아이가 좋은 추억 가지고 떠났어요. 우리 아이처럼 아픈 친구들에게 관심 가져주세요. 감사합니다.”

시간은 흘렀고,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교수의 사연을 취재하러 왔다가 아이가 떠올랐다. 살아있다면 중학생일 텐데.


남자 대학생이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때 그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으면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가라고 손 흔들던 모습.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이의 죽음을 계기로 소아암 단체, 관련 학회와 함께 소아암 완치자들을 기획 취재했다. 소아암 환자 인식 개선과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확대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러다 내가 다른 회사로 옮겨가면서 예전 회사에서 진행했던 캠페인, 취재와 보도는 중단됐다고 전해 들었다.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는데 집중하면서 소아암이라는 카테고리는 수많은 취재 아이템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잊혔다.


환자와 의사, 의사와 환자. 병을 매개로 누구는 치료하는 자, 다른 누구는 치료받는 자가 된다. 이 둘은 양쪽이 모두 실재해야만, 존재의 이유가 생긴다. 다만,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전문지식과 술기를 지닌 의사에게 무게 중심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때문에 의사에게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 인간애를 요구하는 것이며, 생명을 다루기에 사회적 신망이 두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고 완치한 아이를 제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씩씩하고 건강하고 밝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증을 결심한 데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며 의사의 꿈을 향한 첫걸음이었던 의대 시절 어떻게든 환자를 위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픈 이를 위한 마음의 표현, 실행은 비단 의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나를 비롯해 우리 사회 구성원이 함께 생각해 볼 대목이다.

사회가 고도화할수록 불안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난‧범죄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기후 위기 영향으로 언제든 신종 감염병이 창궐할 가능성도 크다. 이런 환경에서는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언제 어떻게 아픈 사람이 될지 모르며 그래서 누군가의 신체 일부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나에게도 올 수 있다.

-(끝)-

미담 주인공, 김영욱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사진 출처: 병원 홈페이지)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0SyOXzxrRffxMODa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

https://youtube.com/shorts/BwCTyBmnHX4?si=Od021xBFWiBbMgQ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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