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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똑같은 자매의 슬픈 비밀

비밀을 품은 가정사(家庭事)는 공개되는 순간 비극을 부른다. 내밀한 사연은 겨누는 칼끝처럼 치명적이다. 고통과 상처는 불행하게도 진실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에게 돌아간다.


2011년 가을. 공황장애 환자를 처음으로 만났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데스크에게 사전 취재 허락을 받아 모처럼 마음 편히, 영상취재팀 없이 혼자 그녀를 기다렸다.


공황장애,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그때만 해도 생소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환자는 당시 전문직에 종사하는 30대 여성. 1년 전 호흡곤란과 마비 증상이 나타나 응급실로 이송됐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그녀는 한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뒤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그녀가 왔다. 반듯하고 깔끔하며 지적인 이미지로, 표정도 밝았다. 공황장애 환자를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밝게 다가오는 그녀가 고마웠다.


“선생님께서 취재에 협조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주치의 교수님이 워낙 좋은 분이라서요. 이렇게라도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공황장애에 관해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은 거죠.”

“큰 스트레스를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일인지 여쭤도 될까요?”

“많이 놀라실 거예요.”


예고한 대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언니와 함께 태어난 일란성쌍둥이다. 태어났을 때, 언니는 동생에 비해 체구가 작은 데다 약해 보였다. 부모는 이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대로 자란다면 언니는 동생에게 치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책을 세웠다. 둘을 쌍둥이로 키우지 않고 1년 차이를 두고 자매로 키우기로 한 것. 부모는 언니만 출생 신고를 했다. 일란성쌍둥이는 그렇게 자매가 됐다.


언니와 동생은 초‧중‧고를 같이 다녔다. 얼굴이 똑같지만 부모가 만들어준 연년생이라는 타이틀이 있기에, 사람들은 똑같이 빼닮은 자매로 생각했다. 이 둘은 얼굴만 똑같았다. 동생은 공부도 운동도 잘했고 친구 관계도 좋았던 반면, 언니는 내성적이고 매사 소극적이었다. 부모는 언니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았고 동생은 소외감을 느끼며 자랐다.


출생의 비밀과 성장과정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던 그녀가 발끈했다.


“저는 부모님의 차별 속에서 살았어요. 제 인생 가장 최악이었던 날이 언제인지 아세요? 축하받아야 할, 원래 제 생일! 그 당시엔 그날이 제 생일인지도 몰랐죠. 언니가 고등학교 진학하고 처음 맞는 생일이었어요. 부모님께서 생일 파티를 열어주셔서 언니 친구들이 집에 왔어요. 저는 언니 친구들한테 인사하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갑자기 막는 거예요. 방에 숨어있으라고요. 절대 나오지 말고 있으라고요.”

“왜요? 초‧중‧고 언니랑 같이 다녔다면서요. 사람들이 자매로 봤다면서요.”

“언니가 새로 사귄 친구들이라, 동생이 있는지 몰랐던 거죠. 부모님은 얼굴이 똑같이 생긴 동생이 있다는 걸 굳이 알리기 싫었던 거겠죠. 그때 저는 부모님이 왜 저러나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언니와 제가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일들이 풀렸어요. 수수께끼 같은 일들 말이죠.”

“…”


그녀의 화가 폭주했다.


“기자님, 제가 화가 나는 건 왜 차별하냐는 거예요. 속인 거까지는 그렇다고 쳐요. 왜 차별하냐고요. 차별해서 왜 이렇게 상처를 주냐고요. 차별만 하지 않았어도 부모님께서 그런 결정을 할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이해하려고 했을 거예요. 자매든 쌍둥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화가 나는 건 왜 차별했냐는 거예요. 차별할 거면 왜 낳았냐고요. 차별해서 상처 줄 거면, 저를 다른 곳에 입양시키든지요.”

“저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다 동의해요.”

그녀가 웃기 시작했다.


“제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됐을 거라 생각하세요?”

“모르겠어요.”


무서웠다. 그때 난 기자로서 훈련이 덜 됐고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였다. 그녀의 감정 기복이 커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마조마했다. 만약 공황장애가 심하게 나타나면 주치의에게 연락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몇 년 뒤 나도 공황장애를 앓고 회복했지만, 이때만 해도 관련 지식이 전무했다.)


대학생이 된 그녀는, 어머니께서 쓰셨던 산모 수첩을 발견하면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됐다.


“기자님, 아기집이라고 아시죠?”

“네. 태아 주머니.”

“수첩에 초음파 사진이 있더라고요. 거기에 동굴같이 생긴 게 두 개가 있는 거예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수첩을 뒤졌어요. 언니랑 저랑 맞은 백신들이 빠짐없이 적혀있었어요. 보건소 가는 날까지. 언니 이름, 제 이름이 나란히 쓰여있는데,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기록들은 우리가 쌍둥이라는 걸 가리키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봤어요. 믿기질 않았어요. 다시 초음파 사진을 보는데, 아기집이 나란히 있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모든 걸 속았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부모님이 진짜 나를 낳은 게 맞나 생각하다가.”

“…”


그녀가 손뼉 쳤다.


“부모님이 나를 낳은 건 맞죠. 언니랑 나랑 얼굴이 똑같은데.”

“…”

“다시 얘기하지만요. 용납할 수 없는 게 한 사람 인생을 속였으면 차별하지 말고 키웠어야죠. 언니를 위해서 제 출생 신고를 1년 늦춘 건데, 제 존재는 알려지면 안 되는 거였잖아요. 그러면 최소한 차별은 하지 말았어야죠. 제가 부모라면, 동생한테 미안해서 동생을 더 챙겼을 거 같아요. 언니 때문에, 태어났어도 숨죽여있었을 한 살짜리 갓난아기가 너무 불쌍해요. 저는 유령 인간이었잖아요. 부모님이 저한테 했던 걸 보면, 언니가 울 때 제가 울면 제 입을 틀어막았을 겁니다. 뻔해요. 어떤 믿음도 없어요.”


그녀가 운다. 서럽게 운다. 그녀가 하는 말이 다 맞다. 그녀의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상처가 돼 고통받았으면 공황장애가 올까. 과호흡이라 불리는 숨 가쁨 증상이 나타나면, 그 고통은 환자밖에 모른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고 심할 경우 온몸이 마비되는 것처럼 굳어 움직일 수가 없다. 말도 나오지 않고 이 세상에서 혼자 고립되는 것 같은 공포.

나는 용기 냈다.


“선생님, 진정제 가지고 계세요? 한 알 정도면 드셔도 된다고 교수님한테 들었어요.”

“아, 괜찮아요. 오기 전에 먹고 왔어요. 흥분할 거 같아서.”

“잘하셨어요. 진짜 잘하셨어요.”

“아무도 저를 안 챙기는데, 제가 챙겨야죠. 차별받으며 큰 것도 억울한데, 언니랑 부모님 때문에 이런 병까지 생겨 고통받는 거 생각하면 미칠 거 같아요. 왜 저만 늘 피해를 봐야 하죠? 억울해요. 그래서 더 악착같이 치료받으려고요. 제 삶이 너무 불쌍해요.”

“치료받으면 다스려지는 병이래요. 저 같아도 더 악착같이 치료받을 거 같아요. 앞으로는 피해 입으면 안 되니까요.”

“평생 언니로 인해 저는 피해자였어요. 근데 이런 병까지 얻게 된 거잖아요.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이것 또한 언니로 인한 피해로 남게 돼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한을 느낄 수 있었다. 형제가 없는 나로서는 차별받으며 자라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웠지만, 학교 선생님이 대놓고 차별했던 것을 떠올려봤다. 이게 집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비극이다.


“부모님께서는 선생님을 어떻게 대하세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게 10년이 넘은 거잖아요.”

“그 뒤로도 저를 챙기시진 않아요. 제가 모든 사실을 알고 따졌을 때, 두 분 모두 언니 걱정을 하더라고요. 심약한 언니가 충격받을 거라면서. 왜 차별했냐고 제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따졌을 때도 그분들은 제가 왜 불쌍하냐면서 불쌍한 건 언니라고 했어요. 직장을 구하고 바로 독립했어요. 마주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도 상처가 곪아 결국 공황장애로 이어졌어요.”

“교수님은 뭐라세요?”

“피하라고 하죠. 그렇게 상처 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인데, 차단하라고 하시죠. 저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요.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제가 이렇게 고통받는데, 그러면 고통을 주는 사람을 차단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언니랑 관계는 어떠세요?”

“언니는 늘 방관자였어요. 저를 챙기지 않았어요. 언니는 본인 삶만 중요한 사람이에요. 남보다 못한 사이죠.”


그녀는 고통의 본질이 부모의 태도라고 했다. 쌍둥이로 크건 자매로 크건 문제 되지 않는다며. 자매로 둔갑시켜 놓고 왜 차별했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됐을 때도 언니가 충격받는다며 언니만 걱정한 부모의 태도.

“본가랑 연락 안 한다는 거죠? 앞으로도?”

“네. 제가 고통받을 이유가 없죠.”


나는 안심했다. 그녀가 딱 부러지는 사람이어서 고마웠다.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 주변에 휘둘리는 성격보다 자아가 단단한 경우 치료 의지가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때가 상당했기에.


그녀는 똑똑했다. 영민함도 소외받으며 자란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무기였을 것이다. 지독한 쓸쓸함과 외로움, 슬픔이 만들어낸 영민함. 진실을 알게 된 후 분노가 폭발했듯, 삶의 의지는 불행과 싸울 투지가 됐을 것이다.


환자로서도 현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제대로 이해했다. 언제 심하게 나타나는지 알고 있었다. 전조증상을 알기에 복식호흡을 하고 물을 마시면서 마음을 편하게 다스리려고 의식적으로 애썼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도움이 되는 약을 먹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황장애가 나타날 때 드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을 기록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주치의는 그런 방법이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투병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글로 표현하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상황이 컨트롤된다.


병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삶은 불운한 기운에 잠식당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삶의 주인으로서 제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불운했던 가정사도 병도 오히려 그녀가 삶의 주인임을 인식시켜 주는 셈이었다.

“끝까지 치료받으셔야 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병원 가셔야 해요. 주치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마음의 병은.”

“네. 고마워요. 끝까지 치료받을게요.”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서로를 안아줬다. 나는 그녀가 잘 견뎌줘서 고마웠고, 그녀는 내가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해 줘서 고마웠던 것 같았다.


수년 후 그녀는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주치의에게 들었다. 그녀는 더 단단해지고 더 지혜로워졌다고 한다.


◆이번 환자 사례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개인사 부분의 세부 정보와 자세한 상황을 일부 변형했음을 알립니다.

-(끝)-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0SyOXzxrRffxMODa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

https://youtube.com/shorts/BwCTyBmnHX4?si=Od021xBFWiBbMgQ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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