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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숫자가 새겨진 돌 그리고 립스틱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아요.”


재난‧재해를 비롯한 비극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말 중 하나다. 내 삶의 ‘하늘’이 무너진다면 어떨까. 그건 자신이 디디고 설 수 있는 곳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말한다.


마음의 병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주치의란 하늘과 같다. 환자들은 힘들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설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주치의이기에. 주치의가 갑자기 죽었을 때 환자들은 하늘이 무너짐을 경험한다.



“친엄마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어요.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요.” (우울증, 30대 여성)

“그분이 저를 살게끔 해주셨는데. 저는 어떻게 하나요.” (우울증, 30대 여성)

“편견 없이, 저희 같은 사람들을 상대해 준 분이에요. 절대적 지지자를 잃었어요.” (조현병, 40대 여성)



2022년 12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재직 중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학회의 도움으로 그 교수의 환자 몇 명을 만날 수 있었다. 환자들의 충격은 컸다. 주치의의 죽음 앞에, 앞으로 치료를 어떻게 받아야 하느냐가 아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이야기했다. 정신과 의사들과 환자들 간의 라포르(rapport)는 깊은 편이다.


*라포트 : 두 사람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또는 그 친밀도. 특히 치료자와 환자 사이 관계.


교수의 죽음 앞에서 한 정신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신과 의사들이 가장 슬플 때는 자신의 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예요. 내가 더 돌봤어야 하는데, 미안하고 가슴 아파요. 지금도 눈물이 나요. 그 아이만 생각하면.”

그때 그는 자신이 조금만 더 신경 써주고 챙겼으면 환자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살로 환자를 잃은 정신과 의사들의 고통은 1년 차 전공의든 수십 년간 환자를 돌보아온 권위자든 차이가 없어 보였다. 때론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시간이 흐르면 조금은 무뎌질 수도 있는데, 정신과 의사들의 경우 환자들 죽음에 예민하다.


이들의 유대 관계는 보이지 않는 실로 엮여 있는 것 같다. 실은 서로를 묶을 수 없지만, 누군가 끊지 않는 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한쪽에서 잡아당기면 팽팽함을 다른 한쪽에서 느낄 수 있다. 상대가 끈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본 환자들은 그랬다. 나 또한 한때 실을 쥐고 있었고, 팽팽하게 당겨질 때마다 주치의로부터 힘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버텼다.


여교수의 사망 소식을 접한 환자의 말이 두고두고 생각났다.

“우리 때문에 돌아가신 거 같아요. 우리가 죽인 거 같아요. 우리 이야기 들어주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너무 아프고 끔찍한 사연을 공감해서 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우리가 교수님을 그렇게 떠나보낸 것 같아서 괴로워요.” (불안장애, 40대 여성)

그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주면서 환자와 공감해야 하고 치료받도록 설득해 온 일, 정신과 의사로서 해야 하는 일인데, 이 일이 벼랑 끝으로 몰았다고 표현했다. 평소 그녀의 노고에 깊은 고마움을 느꼈기에, 주치의를 잃은 슬픔과 황망함은 자책감으로 나타났다.

정신과 의사들도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 상담을 비롯해 여러 치료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진료과목이든 힘들고 때론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지만, 정신과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을 실제로 봐 왔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교수는 당시 50대 여성으로, 우울증‧불안장애‧공황장애‧조현병을 다뤘으며 여성 환자들을 주로 진료했다. 세심하고 따뜻하면서도 강인했다. 환자 개인에게 한없이 너그러웠으나 치료에 있어서는 엄격하고 단호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교수가 있구나.’


2012년 여름, 그녀는 40대 중반쯤 돼 보였다. 단 몇 마디를 주고받았는데도 따뜻함과 우아함에 빠져들었다. 저분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목련을 꾸었을 거야. 우리가 만난 때는 여름이었지만 목련 같은 그녀 때문에 내 마음은 봄이었다.

그녀의 연구실, 유화들과 인문학 책들이 넘쳐났다. 커피를 내려주면서 다정하게 말을 건넬 때 나도 저런 40대로 늙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교수님, 근데 저게 뭐예요? 조약돌 같기도 하고요.”
“아, 저거요?”


그녀는 작은 어항처럼 생긴 유리병을 들고 왔다. 유리병 안에 앙증맞고 예쁜 돌이 열 개쯤 들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름과 숫자가 새겨졌다.

“돌이 아니네요. 도자기 같아요.”
“제가 도자기를 만드는데요. 이건 추모하는 마음으로 만든 거예요. 흙을 가지고 만지작거리다가 이름을 새기게 됐어요.”
“추모요? 혹시 환자들인가요?”
“네. 세상을 떠난 제 환자들 이름이랑 우리가 처음 만난 해예요.”


잠시 침묵했다. 저 환자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이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환자가 사망하면 대부분 보호자들을 통해 알게 돼요. 그중에는 불과 며칠 전에 진료를 왔다가 간 분도 있어요. 전혀 눈치챌 수가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많이 힘들어요. 의사가 된 지 꽤 됐기 때문에 마음을 컨트롤하는 게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았나 생각하다가도 막상 닥치면 힘들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만드는 것도 마음을 쉬게 하려는 거죠. 저희도 많이 지치니까요. 하고 싶은 걸 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러다 보면 떠난 환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되고 보내드릴 수 있어요.”

‘보내드린다.’


이 표현이 가슴에 들어왔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슬픔에 잠겼다가 애도 과정을 거치면서 보내드릴 수 있게 되는데, 그녀가 환자에게 그런 표현을 썼다.

나는 돌을 들여다봤다. 비석에는 고인의 이름과 태어난 날짜와 사망한 날짜가 새겨지는데, 이 돌에는 이름, 의사와 환자가 만난 해가 새겨졌다.


“이렇게 유리병에 두고 보면, 환자들이 천사가 되어 교수님을 보호해 줄 것 같아요.”
“그것들 보면서 지금 내 환자들 잘 챙기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저도 슬플 때는 그것들 보면서 울어요. 어떤 감정이든 억누르면 안 되거든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제가 환자들에게 자주 말하는 게 자신의 상황,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현재 겪고 있는 병을 받아들여야 결국 관리하고 극복할 수 있어요.”

반짝이는 투명한 유리병 안에 예쁜 돌들을 바라봤다. 돌들도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나름의 관전 포인트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지론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의사에게 지론은 많은 환자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치료를 대하는 기본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떤 환자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본 원칙.

그녀의 지론은 그녀가 한 말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유리병의 돌들을 보면서 힘들 때 운다고 했던 그녀의 말.

“어떤 감정이든 억누르면 안 되거든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그녀는 자신의 힘든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여야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힘든 감정이 일상을 파괴하려는 수준이라면,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무기력감이나 우울, 불안 등 특정한 감정에 휩싸여 회사에 갈 수 없거나 집안일이나 공부를 할 수 없는 등 일상을 이어갈 수 없는 경우다. 일상이 무너지려 할 때 개인은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이 비정상적 수준으로 치달은 것을 인정한다는 건 치료의 필요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자님, 병을 완전히 뿌리 뽑겠다고 하는 분들이 보면 안타까워요.”
“저는 의사는 아니지만, 많은 환자들과 의사분들을 봐왔잖아요.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완치라는 건 없다는 거예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어떤 교수님은 언짢아하셨어요. 저는 병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게 낫지 않아요? 고혈압, 당뇨처럼요.”
“완치라는 단어가 불편하죠. 병은 현재 증상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호전됐어도 재발되지 않게 평생 관리해야 한다고 봐야 합니다.”
“병이 도졌어도 내가 요즘 컨디션이 떨어졌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숙연하게 받아들이고 치료받으면 또 좋아지더라고요. 저는 병이 있는 게 어떤 측면에서는 계속 관리하게 되니까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그녀가 신체 질환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을 나중에 알게 돼 놀랐다. 그 시간에도 환자들을 따뜻하게 품어줬기에. 그녀는 나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해 줬고 우리는 서로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녀의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또 있다.

“교수님은 우리가 화장하면 좋아하셨어요. 립스틱을 바르고 갔더니 알아보시고 더 예뻐지셨다고 하셨어요. 항상 우리 얼굴을 살피셨어요.”

의학에서는 병을 겪는 여성들이 립스틱을 바르는 것을 두고 ‘립스틱 신호(Lipstick Sign)’라고 한다. 일시적으로 위축됐던 시기를 벗어나 희망을 가지는 신호라고 하는데.

그녀는 내 얼굴도 항상 유심히 살폈다.

“지수 씨, 립스틱 발랐죠?”
“그럼요.”
“코로나 끝나면 꼭 보여주셔야 해요.”
“네. 교수님도 바르셨죠?”
“네.”
“교수님, 우리 마스크에 굴하지 말고 립스틱 꼭 발라요.”

그녀가 떠나간 지 2년이 넘었다. 그녀의 환자들은 립스틱을 바를 것이고, 자신을 당기는 팽팽한 기운을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


교수님, 저 오늘 더 예쁘죠? 립스틱 발랐어요.


환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끝)-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63vve4ceP_p1AGOp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

https://youtube.com/shorts/BwCTyBmnHX4?si=Od021xBFWiBbMgQ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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