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받아들일 때 인간은 모든 걸 초월한다. 내면의 눈은 밖으로 향한다. 자신만 바라봐도 부족할 것 같은데, 시야는 확장된다. 더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무엇이 그리 만드는 것일까.
삶을 향한 예의 같았다. 어떻게든 마지막만큼은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생의 의지. 시한부 삶을 살다 간 이들에게서 발견된 공통점 중 하나였다. 그들은 못다 한 삶을 향한 회한과 아쉬움을 그렇게 승화시켰다.
적어도 내가 본 이들은 그러하였다.
2014년 가을,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 암병원으로 향하는 길. 환자복을 입은 젊은 남자들이 숨어서 담배를 핀다. 깁스를 한 사람은 없지만, 사고로 인해 골격이 손상된 정형외과 환자들로 보인다.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이들이 입원한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담배 피우는 장소 앞은 암병원이다. 암병원, 암 환자들이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찾는 곳.
나는 영상취재기자와 오디오맨에게 신신당부했다. 이곳 암병원은 주로 상태가 좋지 않은 암 환자들이 입원해 있어 말과 행동, 시선 처리까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일부 환자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갈 정도로 심각하다. 치료나 처치에 있어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침착해 줄 것도 당부했다. 후배들은 언제나 현명하게 행동했다.
홍보팀 직원이 음료를 들고 뛰어온다.
“기자님, 목마르시죠. 이거 드세요.”
“여기서 다 마시고 가요. 콧줄 끼고 있는 환자들이 우리 먹는 거 보면 먹고 싶을 거예요.”
우리는 한 번에 들이켰다. 나는 홍보팀 직원에게 환자에 관해 한 번 더 확인했다.
“교수님한테 이 환자 설명은 다 들었어요. 말씀을 거의 못 하신다면서요.”
“네. 어쩌면, 후두 전 절제술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아, 그게 후두 전체를 다 제거하는 수술이죠? 암이 주변에 퍼지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현재 그렇긴 한데, 예후(치료 경과)가 좋지 않아요.”
“그렇군요. 어쨌든 기사에서는 현재 상황으로만 갑시다.”
“네.”
- 후두암: 두경부(머리와 목)에서 중요 기관 중 하나인 후두에 발생하는 암. 전체 암 발생률의 약 2~5% 차지.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발병 가능성 높음. 습관적인 과음, 특히 흡연과 동반된 잦은 음주는 후두암의 위험성 높임.
* 후두: 목 중앙부 위치. 호흡과 발성에 관련된 기관.
후배가 물어본다.
“선배, 인터뷰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환자 얼굴은 빗겨서 촬영하자.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도록. 말씀을 거의 못 하신다는데, 오디오 따는 건 가봐야 판단이 설 것 같아. 오늘 촬영의 핵심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거야. 주변 스케치도 있는 그대로. 환자 기침이 심할 거야. 관련해서 찍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어. 병상 주변을 샅샅이 봐야 해. 베개 옆이랑 휴지통, 세면대까지 모조리 다.”
암병원으로 들어선 우리는, 시선을 떨군 채 입원실로 향했다. 그는 2인실에 혼자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 왔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병실로 들어갈 때 가장 긴장된다. 환자가 우리를 보며 인사하는 사이 그의 상태와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서다.
후두암 환자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4기였던 50대 남성은 많이 야위었다. 암이 다른 부위로 퍼지지 않았으나 전이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후두 일부를 잘라내는 후두 절제술을 받았고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었다.
목에 상처가 보였다. 후두 절제술을 받은 후 호흡이 힘들어 기관절개술을 받은 흔적이다. 기관절개술은, 목에 기관과 통하는 작은 구멍을 뚫어 그 구멍으로 관을 삽입한다. 기관 튜브라 불리는 관을 삽입해 코와 입으로 숨쉬기 힘든 환자들에게 숨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는 지금 코와 입으로 숨 쉬는 게 가능했다.
그가 기침한다. 온몸이 흔들렸다. 후배들에게 병실 밖에서 대기해 달라고 했다. 이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항상 고민했던 지점이다. 환자는 병으로 힘들어하는데, 이것을 증상이라며 찍을 수 없었다. 나는 솔직히 어디까지가 국민의 알 권리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환자의 고통이 극명하게 드러나기에 영상을 찍지 않거나 기사를 쓰지 않은 적도 있었다. 기자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국민과 환자, 의료진 이 세 개의 중심추에서 무게 중심이 환자로 쏠릴 때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기침을 멈춘 환자의 눈은 충혈됐고 눈물이 맺혔다. 이 눈물은 감정이 만들어낸 게 아닌 생리적 현상으로 발생한 체액이다.
후배들은 병상 주변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마이크를 채웠다. 말을 거의 못 하더라도 채우고 봐야 한다. 어떻게든 그를 말하게 만들든지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던지게 유도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선생님, 말씀하시기 힘들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마이크 채울게요.”
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투병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참 대단하세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시청자들이 느끼는 바가 있을 겁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 가장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텐데, 그게 뭘까요?”
“마아를… 하고… 싶어요…”
말하고 싶다는 환자의 대답은 질문을 궁색하게 만들었다.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환자한테,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했으니.
“아, 말씀하고 싶다는 건데요. 무슨 말씀을 가장 하고 싶으시나요?”
“다암배… 피지 마라요…”
“네? 천천히.”
“다암… 배… 피… 지… 마라요…”
“아. 담배 피우지 말라고요?”
그는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말씀하세요.”
“빠알리… 벼엉언…”
“빨리 병원에 가라고요?”
“…”
기침이 도졌다. 나는 티슈 몇 장을 손에 쥐어 줬다. 가래가 기도 하부에 걸려서 나는 소리. 그르렁그르렁. 저것만 제거해도 기침이 멈출 텐데. 기침이 심해질수록 가래 끓는 소리가 동물의 울부짖음처럼 느껴졌다. 병든 그의 몸 안에 살고 있는 동물.
그의 등을 두드렸다. 빳빳한 환자복 안의 척추 돌기들이 느껴졌다. 피하지방이 거의 없는 얇은 피부가 뼈와 얼마 남지 않은 근육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티슈를 쥔 손, 기침으로 들썩일 때마다 보이는 쇄골은 앙상한 나뭇가지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냥 호흡하듯 말할 수 있는 문장을 그는 발작적인 기침과 함께 한 글자 한 글자 뱉는다.
‘그르렁그르렁’
티슈에 가래를 뱉어냈다. 뿜어내는 수준이다. 가래는 누워 지내는 환자에게 어김없이 찾아와 호흡과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악마 같은 놈이다. 건강할 때는 몸속에 숨어 지내다가도 병색이 짙어지면 나타나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간사한 놈. 가래가 심하게 계속 끓으면 인위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목에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구멍을 뚫어야 한다. 앞서 말한 기관절개술이다. 기계를 이용해 몇십 분에 한 번씩 그 구멍에서 가래를 인위적으로 빼야 한다.
후배들이 휴지통을 그에게 대주자 가래를 쏟아냈다. 보기 불편한 것보다 속이 후련했다. 저 굵고 묵직한 덩어리가 목에 걸려있어 기침이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잠시라도 편히 있을 수 있다.
가래를 쏟아냈을 뿐인데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아픈 이의 고통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엄숙하게 만들 때가 있다. 삶의 무게를 잠시라도 잊게 한다. 병이 몸을 망가뜨려도 내면까지 침범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해탈한 환자들의 모습은 삶을 돌아보게 한다. 죽음 앞에서 취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삶을 옥죄인 고통도 의미를 잃게 한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잊히지만, 느끼고 깨닫는 순간만큼은 진실이다. 내가 개인적 어려움을 무릅쓰고 호스피스 병동과 완화의료, 웰다잉과 관련한 취재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시청자들에게 인식시켜 주고 싶었다. 죽음이라는 존재를…
말하고 싶다.
담배 피우지 마라.
빨리 병원에 가라.
그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중, 말을 하고 싶다는 게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 발성 기관의 마비, 암으로 인한 기관 절제 등으로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을 때 환자들은 절망 속에서 혼란을 겪는다. 정체성이 흔들리고 자신의 역사가 부정당하는 심정이라고 했다.
입술과 혀, 치아, 구강, 후두를 비롯한 발성‧호흡 기관은 숨을 쉬고 음식물을 씹고 삼키며 체액을 뱉어내는 생물학적 기능만 할 뿐이다.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환자들이 절망하는 주된 이유다.
이런 환자를 지켜보는 사람의 입도 닫힌다. 말을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된다.
그는 노트에 무언가를 썼다.
“담배 피우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간병인과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노트에 적은 말이다. 볼펜을 쥔 손에는 체액이 말라붙어 생선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2002년, 당시 폐암 말기였던 고 이주일 씨가 출연했던 금연 공익 광고가 떠올랐다. “1년 전에만 (담배를) 끊었어도”라고 말하면서 기침을 내뱉었던 모습이 충격을 줬다. 국내 첫 증언형 공익 광고였다.
지금 내 앞에 목소리를 잃어 가는 후두암 말기 환자가 증언하고 있다. 담배 피우지 말라고.
환자의 가족은 우리가 방문하기 전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처음에 인터뷰를 막았다고 했다.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자신의 아버지가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가족은 속상한 마음에 환자에게 아픈 말을 쏟아냈을 수도 있다. 남들이 담배를 피우든 안 피우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본인이나 담배를 끊었어야 했다며 탓했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환자의 뜻을 존중해줬다.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인터뷰를 허락해 준 가족에게 감사하다.
이 환자는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병이 깊은 사람은 때론 의사보다 상태를 정확하게 안다. 지식도 이론도 필요 없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몸이 말해준다. 죽음이 임박할수록 정확하게 알려준다.
병색이 짙은 환자가 자신처럼 늦게 병을 발견해선 안 된다고 카메라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것. 이건 초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모습이다. 중병에 걸린 이들은 처음에는 충격에서 시작해 분노, 절망, 체념을 거쳐 나중에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오래전, 후배가 물었다.
“선배, 환자가 인터뷰해 주면 병원에서 치료비를 할인해 주나요?”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인터뷰해 준다고 치료비를 할인받는 것은 없다. 다만, 환자가 공익을 위해 취재에 협조해 줘 병원이나 의료진 차원에서 조금 더 세심하게 챙기거나 배려해 줄 수 있다. 뉴스 보도에 있어 언론사가 제공하는 출연료도 없다.
그들이 인터뷰해 주는 이유는, 그들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병에 걸리지 않길 바랐고 병에 걸리더라도 빨리 발견되길 바랐다. 잘못된 습관이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음을 자신을 사례로 들어 말하고 싶어 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자신에게만 집중해도 부족한데.
이유를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들의 시선이 타인들에게 향하는 건 삶의 마지막만큼은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의지의 표현, 간절함 때문이었다. 삶을 향한 회한과 미련을 고결한 마음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인간에 대한 사랑. 적어도 내가 만났던 시한부의 그들은 그러했다.
이 환자는 1년 후쯤 세상을 떠났다. 암이 주변 조직으로 퍼져 후두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수술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돼 인공 후두기라는 기구를 사용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홍보팀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위중한 환자들을 인터뷰한 후에는 환자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알려달라고 부탁해 놓는다. 이유는 두 가지. 환자가 찍힌 영상을 사용하지 않기 위함이며, 또 하나는 소식이 궁금했기에.
한 후배가 물었다.
“선배가 취재하는 환자들은 왜 계속 죽어요?”
“글쎄다. 왜 그럴까.”
“…”
“아! 그건 말이야.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내가 찾아가서 그런 거야.”
내가 만난 환자 대부분은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 얼굴은 희미해도 눈동자는 선명하다. 무언가 말하려는 눈동자.
기록을 이어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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