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흔들림이 없다. 인생에서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잊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인생이란 어차피 추구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결과인 것 같다.
2017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 로비, 이른 아침이다. 홍보팀 직원이 뛰어온다.
“기자님, 오셨어요.”
“항상 일찍 와서 미안해요. 일정이 많아서요.”
“아닙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연구동으로 넘어가는데, 누가 나를 부른다.
“김 기자! 김 기자!”
이 병원 홍보실장인 C교수다. 대학병원은 홍보실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을 의대 교수들이 맡는다.
“김 기자님,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죠?”
“신경외과 A교수님한테 OO질환 취재가 있어서요.”
“OO질환인데 왜 A교수를 인터뷰하죠? B교수가 나을 텐데요.”
“B교수님도 훌륭하시죠. 근데 최신 치료법과 관련해서 A교수님이 더 잘 아시더라고요. 논문도 더 많이 냈고요.”
“…”
“논문을 많이 낸다는 건 그만큼 임상 경험이 많다는 거, 환자를 많이 본다는 거잖아요. 기준은 딱 그거예요. 교수님도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C교수는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렸다. 이건 월권이다. 짜증이 났지만, 그의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홍보실장으로서 기자에게 물어볼 수도 있는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그의 공격적인 태도는 누그러진 반면, 나의 전투력은 높아졌다.
“하긴 A교수가 논문도 제일 많이 내고 열심히 합니다.”
“A교수님만큼 기자들에게 최고인 경우는 없어요. 술 사주는 것보다 논문 한글로 만들어서 던져주면 이걸 더 좋아하는 기자들이 많아요. 세상이 바뀌었어요. 다음에 뵐게요.”
그가 사라지자, 홍보팀 직원이 신났다.
“기자님이 한 방 먹였어요. 홍보실장님을요. 표정 봤어요? 애가 엄마한테 혼나는 표정. 이거 우리 팀장님한테 보고해도 되죠? 팀장님이 김 기자님한테 고마워할 거 같아요.”
“네. 근데 홍보실장은 왜 이리 A교수님을 싫어해요?”
“A교수님이 여기 출신이 아니잖아요.”
“박사는 여기서 한 거로 아는데?”
“그건 맞는데요. 의대 학사는 다른 곳에서 하셨어요.”
“학연이 문제군요. 의대에 도제식 교육이 필요하고 이로 인한 문화라고 할까요. 선후배들끼리 뭉치는 거 어느 정도는 이해해요. 근데 이건 너무 심해요. 대놓고 따돌리네요. 그것도 훌륭하신 분을. 엄격히 따지면, 이 병원에서 훌륭한 교수님을 스카우트한 거잖아요. 그럼 더 잘해줘야 하지 않나요?”
얼마 전, 홍보팀 다른 직원과 통화했을 때다. A교수에게 전화로 인터뷰를 따야 해서 연결해 달라고 했을 때, 그 직원이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뗐다. B교수를 연결해 주면 안 되겠냐고 것. 나는 A교수 휴대전화 번호를 알고 있지만, 이 시간에는 응급실을 찾아 환자들을 파악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진료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홍보팀이 응급실에 가서 상황을 말해주는 게 낫지 않겠냐며 이걸 조율하기 위해 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말을 쏟아내자 직원은 당황했다. 나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A교수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니. 기자가 A교수를 콕 찍어 연결해 달라는데, B교수로 하면 안 되겠냐는 홍보팀 직원. 이건 말단 직원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뭔가 지시를 받았을 거라 생각했다.
A교수와 첫 만남은 몇 달 전이다. 만나기 몇 시간 전에 통화했다. 그는 열심히 설명해 주는데, 그날따라 내가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퇴근길에 잠시 볼 수 있냐고 했고 만남은 이렇게 성사됐다.
비 오는 저녁 광화문 카페, 그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1년 차 전공의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한글판으로 요약한 문서였다. 몇 군데 오타가 보였다. 급히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자님, 제가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이쪽 어렵죠? 이거 보시면 우리 과 외에도 취재하실 때 도움이 될 거예요. 언제든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얼마나 속 터졌을까. 그러다가 딱해 보였을 것이다.
“너… 므… 히이임… 들어요. 너… 므…”
고맙다는 말 대신 너무 힘들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흐느꼈다. 당황한 그는 티슈를 얻으러 뛰어갔다. 구해온 티슈를 내 앞에 두었다.
“원래 이쪽이 힘들어요. 잘하고 계세요. 울지 마세요.”
“아, 그게 아니라…”
“뇌랑 혈관은 제가 다 도와드릴게요. 이해하실 때까지요.”
“아, 그게 아니라요. 뇌랑 혈관이 힘들다는 게 아니라…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요.”
“아, 이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누군가 저를 위해 비 오는데 달려와 도와준다는 게 감동적인데요. 왜 이리 슬플까요. 주신 자료 많이 도움 될 거예요. 감사해요.”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A교수 연구실 앞이다. 노크했는데 반응이 없다. 문을 열자 저 멀리 그가 보였다. 햇빛을 등진 채 창가에 걸터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였고 어깨는 앞으로 말렸다. 둔탁해 보이는 무언가를 앞에 두고 조심조심 다룬다. 정교한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 듯.
‘와, 이건 또 뭐야?’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걸 본 뒤로 나는, 사람을 흑백의 실루엣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됐다. 강렬했다. 실루엣이, 바느질하는 남자다.
A교수는 우리가 들어온 걸 알고 재빠르게 무언가를 치웠다.
“김 기자님, 이거 보시면 비위 상할 거예요.”
“뭔데요? 저 비위 강해요. 뭐예요?”
녹색 소독보로 덮는다.
“이거 돼지다리예요. 돼지 조직에 바느질하는 거예요. 수술 연습하는 거죠. 오늘 오후에 수술이 있거든요. 손가락 푸는 연습이에요. 돼지 조직이 인체 조직과 비슷하거든요.”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수술 연습을 하는 거라고? 이런 연습은 전공의들이 하는 거 아닌가.’
내 생각이 아마추어적 발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나이가 들면 손 움직임이 둔해지기 때문에, 혈관 같은 미세한 조직을 꿰맬 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이 들수록 더 열심히 바느질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였다.
“제가 어떻게 바느질하느냐, 어떻게 한 땀 한 땀 꿰매느냐에 따라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수도 있고요. 수술 후유증과 부작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편마비도 막을 수 있어요. 저는 손가락이 둔해질까 봐 겁나요.”
외과 의사의 손놀림, 바느질 한 땀만으로도 환자의 치료 경과에 큰 영향을 준다. 당연한 건데도 수술을 앞둔 의사가 자신이 바느질 연습을 한 돼지다리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니까 와닿는 느낌이 달랐다. 의학 드라마 주인공은 허구 속에서 탄생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을 겸손하게 바라보고, 이 겸손함을 지켜내는 모습에서 큰 감동받았다. 이 겸손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진 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한 분야의 권위자로서 자신의 실력을 지켜낸다는 것, 겸손한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더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 날카로움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 초심을 지키려 노력하는 게 실력을 유지하게 해 준다.
*권위자 - 한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한 전문가
권위자의 정의에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한 분야에 정통하고 탁월하며 겸손함을 지켜내는 전문가.
돼지다리를 보고 싶었다. 그는 손사래를 쳤다. 특수 처리한 데다 여기저기 상처에 꿰맨 자국에 징그럽다고 했다. 보면 후회할 거라고.
“제가 돼지를 평생 못 먹는다고요? 안 볼래요.”
다들 안 볼 거라고 했다. 인생에서 돼지를 포기할 순 없다며.
그는 가방에 이 ‘돼지 족발’을 넣고 다닌다. 그때 카페에서 만났을 때도 가방에 이게 들어 있었다.
그가 중요한 논문을 낼 때 나는 그를 도왔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돕는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기자들은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은 기사로 쓰지 않아요. 답답하시더라도 중 3이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서 보도자료를 만드세요. 논문도 한국어 버전으로 준비하시고 요약 페이퍼도 만드세요. 전문가들의 함정이, 본인 수준으로만 커뮤니케이션하려는 거예요. 1차로 기자들을 이해시켜야만, 기자들이 시청자들과 독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어요. 이게 포인트예요. 명심하셔야 해요.”
그는 몇 년 전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라인에 밀려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뛰어난 실력과 훌륭한 인품을 눈여겨본 이 병원 재단에서 그를 스카우트했던 것이다. 이 병원은 인원을 충원한 것으로, 그로 인해 병원을 떠나야 했던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굴러온 돌’이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그를 미워하는 이들이 상당했다.
“교수님, 여기 사람들이 낯설지 않나요?”
“다들 잘해주세요.”
“텃세 없어요? 상당할 거 같은데.”
“괜찮아요. 저만 열심히 하면 되죠. 죽을 때까지 수술하는 게 꿈이에요. 환자들이 수술받고 좋아지는 걸 보면 행복해요. 그래서 힘들지 않아요. 저한테는 환자들과 수술이 제일 중요해요.”
“아. 환자들과 수술이 제일 중요하다.”
“네.”
그에게 인생에서 본질은 환자와 수술이다. 그가 따돌림을 당하고 내가 모르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 내 인생의 본질이 뭔지 알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조직에서 잘못된 것은 문제 제기해야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적인 측면에서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여기에 집중하면 버틸 수 있다.
일상에 치이거나 특정 감정에 휩싸일 때 나를 나답게 존재하게 해주는 인생의 본질, 삶의 정체성이 있다는 것조차 잊을 수 있다. 어떻게든 상기해, 의식을 각성시켜야 한다.
어떻게 상기시켜야 할까?
만약 꿈을 이루는 게 인생의 본질이라면, 돼지다리를 가지고 다니는 그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꿈 앞에 바짝 엎드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꿈을 이뤘든, 달려 나가고 있든. 꿈을 이뤘다면 더 바짝 엎드려야 한다. 흐르는 시간 앞에 재능은 퇴보될 수밖에 없으니, 겸손한 마음으로 꿈을 지켜가야 한다.
나의 ‘돼지다리’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당신의 ‘돼지다리’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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