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수능이 끝난 저녁
처음 보는 남학생이 혀가 꼬인 발음으로
"레종 담배하나 주세요."
"신분증 보여주세요?"
"저 오늘 수능 봤어요. 곧 한 달 뒤면 성인이에요."
"그럼 한 달 뒤에 성인 되면 그때 오세요."
"네!? 안 파신다는 얘기죠!?"
"네~ 못 팔아요. 미성년자에게는 술도 판매가 안되는데 술 마신 거 같네요.!?"
"네, 마셨어요, 내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좀 파시죠?"
"안 돼요. 술을 마신곳은 어디예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제가 그걸 말할 필요는 없죠, 알겠습니다. 내년에 당당하게 사러 올게요."
너무도 기가 찼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파시죠!? 없죠!!"라는 말투와 억양은 굉장한 불쾌감을 주었지만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담배를 판매하지 않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날 이후 간간이 음료수를 사러 왔지만 아무런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드디어 한 해가 지나 1월 2~3일쯤으로 기억되던 날 학생은 주민등록증을 들고 와 담배를 구매하며
"다음에는 민증 안 들고 올테닌 깐 담배 판매하세요?"
"알겠어요."
곱상하게 생긴 중년에 아주머니가 편의점으로
시킨 택배를 찾으러 왔다.
"이사 오셨나 봐요?"
"네"
아주머니는 가끔 편의점 택배만 찾으러 올뿐 별다른 건 사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 받은 음료수 기프트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딨는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담배를 사러 왔던 남학생이
"엄마?"
"담에 올게요."
"엄마??? 저희 엄마 뭐 사러 온 거예요?"
"기프티콘 사용하러 오셨어요, 엄마셨구나~"
학생은 소주와 담배를 사서 갔다.
두 사람이 모자 관계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들이 엄마에게 "엄마?"라고 불렀지만
아무런 댓 구도 하지 않고 나가버리는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그날 이후 그런 상황이 궁금해서
학생이 왔을 때
"엄마는 직장 다니시나 봐요?"
"네, 근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요."
"왜요? 엄만데 물어보면 되죠?"
"내가 물어봐도 대답을 잘 안 해요, 좀 이상해요, 그래서 나도 엄마랑 대화 거의 안 해요, 여기 저희 아빠도 오 실 텐데, 저희 아빠는 경찰이에요, 아마 경찰 복장하시고 담배 사러 오실 텐데 그분이 저희 아빠예요."
"아~경찰이세요? 그럼 미성년자 때 술 담배 피우면 혼냈을 텐데~?"
"하하하, 그땐 몰래 피고 집으로 들어갔죠,
하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피고 들어가요, 아무 말 못 하시던데요, "
"외아들이에요?"
"아뇨, 누나 둘 있는데 한 명은 일찍 시집갔고 둘째 누난 취직해서 서울에서 자취해요."
그렇게 학생 집안을 대충 파악하게 되었고 더 이상은 궁금하지 않았으나 대학에 입학했다고는 하는데 야간에 쿠팡 패킹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닌다고 했다.
물어보지 않아도 자신 납세하듯
오늘은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해서 얼마를 받았으며
내일은 또 어디 가서 어떠어떠한 일을 할 거라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렇게 많이 하면 공부는 언제 하냐닌깐 "어차피 공부 잘해서 다니는 대학이 아니라 졸업만 하면 돼요."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나 안타깝기도 하고
"닭이 먼전지 달걀이 먼전지?"
분명히 부모 자식관계가 평탄하지 못하게 되는 시작점이 있었을 텐데 부모가 먼저 잘못돼서 그런 건지 자식이 잘못돼서 그런 건지
물론 자식이 잘못됐다고 해도 고치고 가르쳐야 하는 게 부모겠지만 부모도 사람인지라 인계점에 한계를 넘어선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지 몰라 자포자기했던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부모라는 자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식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만 나 역시도
학생에 태도와 행실을 보면 좀처럼 다가가고 싶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