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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Oct 22. 2024

<말러 교향곡>상처입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부활’을 노래하는 말러


다음 번 클래식 작곡가는 말러 입니다 .
예고편으로 두근거림.

“다음 주는 말러입니다. 신과 이별한 시대에 우리는 어디서 구원을 얻어야하는가를 말러를 통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내 관심사인 ‘구원’이라는 단어가 눈을 번쩍 뜨이게 하였다. 클래식 다음 번 수업을 기대하게 되었다. 종교와 이별한 시대의 음악이 구원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나처럼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메시지가 다가올 지는 모르지만, 기대했다.


스쳐지나간 말러

그런데 말러가 누구지? 말러, 생소했다. 불현듯 기억 속에서 한 텍스트가 떠올랐다. 처음 들어본 이름은 아니었다. 아래는 작년의 내 머릿속 그대로이다.

독일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연수 일정이 끝나고 저녁 때 음악회 두 번을 갈 수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하나는 바흐의 B단조 미사곡, 다른 하나는 베를린필 홀에서 뮌헨필이 연주하는 말러 공연이었는데,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고 했었다. 뮌헨필 콘서트를 갈 수 있었지만, 나랑 몇몇은 여행 피로에 모르는 음악이면 수면제일 테니 쉬자고 했다. 아마도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교향곡 중 내가 아는 곡이었으면 무조건 갔을 것이다. 살을 꼬집어서라도 들으려하지 않았을까. 처음 들어본 변방의 작곡가인 듯한 말러라는 분의 현대음악(?)을 듣기보다는 다음 날 일정을 위해서라도 일찍 쉬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클래식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분들이 많았는지 말러를 꼭 들어야 한다고 강하게 추천하는, 강추 같은 건 없었다. 숙소로 먼저 출발한 우리는 거기까지 가신 분들이 참 체력 좋다, 하며 말았다.


그 말러였다. 클래식 강의를 듣는 지금은 나와 시간적으로 맞지 않은 말러 공연이 아쉽고, 그걸 눈앞에서 놓친 것이 한탄스럽지만, 당시에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작년에 억지로 가서 들었더라도 모르는 음악이라서 잠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겪은 해외여행 경험 상 밤에 공연을 감상하는 것은 어렵다. 런던 프롬스 일정에 맞춰 스케줄을 짜고, 밤에는 내로라하는 뮤지컬도 내내 쫓아다니며 들었지만, 좌석에 앉자마자 여행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버렸다. 아무리 살을 꼬집어도 고개가 떨구어지고, 외국인들 틈에 앉아 있는 음악을 들으러 온 동양 여인이 잠들어있는 것을 더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도 하다, 끝까지 잘 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들 눈 의식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꾹 눌러가며 잠을 참으며 2시간을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작년엔 바흐의 B단조 미사곡을 듣고 왔다. 물론 바흐를 알고는 있어도, 잠이 쏟아졌고, 언제 끝나는 건지 시계를 봤던 것은 여독으로 인해 어쩔 수 없나보다 한다.

말러를 이제 알게 된 세대

알지 못하면 눈앞에 두고도 놓친다. 말러의 음악에서 ‘구원’을 알 수 있다고 하셔서 구원이라는 단어를 듣기 위해 열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서는 제법 메모해놓았다. 교향곡의 실험, 브람스 밑으로 들어가서 눈에 들어야 했던 것,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의 개종, 교향곡에 한꺼번에 모든 감정을 쏟아넣은 것 등이었다. 말러는 문제적 개인이라는 말을 들었고, 말러가 한 말 중에서 ‘인간은 사사로운 감정 속에서 해방되지 않는다.’라고 적힌 것을 다시 읽어 보았지만 구원의 길을 찾지 못했다. 현대 음악의 문을 열었다고 하는 말러의 음악을 수업 시간에 처음 들었는데, 잠깐 들은 말러를 알기는 어려웠다.

이번 말러 편은 1회의 강의라 부족했던 듯하다. 구원에 이르는 길을 완전하게 설명해주기는 빠듯한 시간이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더 파고들 수밖에. 현대인들을 위한 음악적 구원을 말러에게서 찾아보는 것을 주제로 하자고 마음먹고 나왔다. 말러 음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고, 말러와 구원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교수님의 안목과 해석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말러의 구원 이야기 단서를 갖고 귀가하면서 음악을 찾아 들어야겠다는 부푼 기대가 있었다.


말러를 모르는 세대

그런데 말러를 생각하며 귀가하는 중에 갑자기 사단이 났다.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한동안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말러의 음악, 구원의 음악, 핵심이 멜로디일지, 가사의 내용일지, 그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말러의 구원을 찾아볼 생각만 했는데, 아버지가 떠올랐다. 눈물의 원인,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이러한 구원의 길을 몰랐겠지. 나도 작년에 구원을 바로 눈앞에 두고 선택하지 않았는데, 옛날 사람인 아버지는 말러를 아예 몰랐겠지 하는 생각에 그의 고통스러웠던 삶에서 구원의 경험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꺼이꺼이 통곡하듯 눈물이 났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신과 이별한 우리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만을 남겨두고 어머니와 남동생을 데리고 가톨릭에서 돌아섰다. 아버지가 성당에 다니지 말라고 구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여동생은 가톨릭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엔 아버지의 종교 박해라고 명명하며 성당에서 고민상담도 해가면서 꿋꿋이 더 열심히 활동을 했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평생을 힘들어하면서 사셨다. 가장으로서, 인간으로서 아버지가 편안하거나 만족해보이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내가 사는 시대의 혜택을 받아 이렇게 클래식 이야기를 강의로 듣고 사사로운 고통 속에서도 매번 구원의 길을 찾아 집에 가서 유튜브를 보며 세상의 수많은 음악들을 뒤적뒤적거려볼 수 있다. 말러 음악을 들으며, 구원을 얻을 수 있겠지.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구원을 받았을까. 책장에 꽂혀있는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보였다. 아버지에게 많이 듣지는 못했지만, 아버진 6.25 전후시대를 겪은 세대, 부잣집 장자에게 유산 대부분을 상속하는 유교적 문화에 피해를 입은 나머지 형제들 중 하나였다. 우리 아버지의 경험이 개인에게만 있던 특별한 사건은 아니지만, 당시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이 구원의 길을 알았을까? 시대가 부과한 고통을 견뎌가며 자식들 건사하며 힘들게 살았던 우리 부모세대들 말이다.

돌아가신 지 꽤 된 아버지. 다음 주면 기일이다. 아버지를 미워한 시간이 더 많았기에 기일이 오더라도 덤덤했었는데, 이번 기일은 아닐 것 같다. 아버지는 구원을 받았을까, 걱정이 되면서 한편으론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지적인 욕구와 감성을 내가 닮은 듯 다르기도 한 아버지. 나와 같다면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집착했을 것이지만 그분의 삶을 떠올려보면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가끔 아버지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았다. 닐 다이아몬드의 ‘스윗 캐롤라인’,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클래식, 없는 살림에 오디오 옆의 빈약한 음반은 늘 반복되었다. 크게 틀어져 있는 음악을 듣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왜 저러고 계실까 가끔 주책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가시고 나니 아버지의 음악이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가 갖고 있는 몇장 안 되는 엘피판과 엄마랑 싸우면서 들인 인켈 오디오와 딸려온 클래식 음악 시디. 그것이 아버지의 구원의 길이었을까.


특정 계층의 말러

 아버지가 누리지 못했을 이 구원의 경험의 단서를 얻을까 싶어서 클래식을 배경음악으로 달고 사시는 내가 사랑하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 말러 들으세요?”

“응, 예전에 많이 들었지.”

“저 이제 말러를 알게 되었어요. 저는 음악사에서 딱 드뷔시, 스트라빈스키까지만 알았었는데 말이에요. 그 유명한 쇼스타코비치는 안다고 할 수 없지만요.”

“지금 말러는 웬만한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 되었지. 예전엔 클래식 좀 듣는다 하면 알았던 사람이야. 지금 그 사람들 또 다른 음악가로 넘어갔을 걸.”

“(씁쓸한 미소 지으며) 그래요?”

선배는 늘 클래식 방송을 듣고 살았다. 클래식 연주회도 다니며  철학자였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선배에게 듣게 된 이야기에 나는 말러를 듣는 사람에 등급이 있었구나. 지금 들으면 뻔한 사람, 일찍 들었으면 뭘 좀 아는 사람. 말러를 멀리하고 싶었다. 지금 말러를 알고 듣는 사람은 남들 뒤만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 계층 이동의 욕구인가. 말러라는 이름을 언급하고 아는 척했던 것이, 나와 너를 구분하는 문화였구나, 상류계층은 말러를 통해 구원을 얻고 있었던 건가. 순간 거부감이 들어서, 남들 다 듣는 대중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구원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반항하고 싶었다. 상류계층이 점유한 문화인 말러에게서 찾을 필요 없이, 클래식은 내게 필요하지 않다, 나는 대중음악으로도 충분히 위로받고 있으니까. 아니 클래식이 없어도 내 삶은 가능하다고 귀결시킬 참이었다. 그런데 이럴 줄 알고 나를 걱정하신 ‘클래식 시대를 듣다’의 저자는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오늘날 클래식이 어떻게 소비(수용)되고 있는가를 나는 본다. (중략) 교양을 쌓기 위해 연주회장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세련된 교양’이나 ‘우아한 기품’이, 말의 순수성을 떠나서 어떤 맥락에서 소비되는가를 고려한다면 클래식을 듣는 일에 조금은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지닐 필요는 있다.

클래식이 지배의 문화가 되거나 문화적 지배의 한 수단이 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원치 않는 일이거니와, 무엇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당대의 작곡가들이 그리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당대에 몰입함으로써 당대를 초월했다. … 클래식이란 한가로운 소비가 되기에는 조금 무거운 것이다.” (정윤수, 클래식 시대를 듣다)

클래식을 작곡한 예술가들의 고뇌와 그들이 당대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으로 나를 다시 잡아 주셨다. 클래식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작곡가들의 꿈을 이뤄달라는 전도사님 같았다. 나는 리포트를 쓰면서 결론을 먼저 짓지 않고 말러를 다시 바라보기로 했다. 말러가 특정 계층을 위해 지은 곡이 아니니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또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찾아보기 위해 그의 음악을 듣고, 그와 관련된 책을 보고, 논문을 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클래식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며, 클래식은 이 헛헛한 대도시의 한가로운 예절 품목으로 전락하기 일보 직전에 놓여있다. 나는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이 책을 썼다.(정윤수, 클래식 시대를 듣다)”

충분히 설득당했다. 말러의 구원의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처음’ 부분의 사설인 긴 이유는,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인 내가  클래식의 오해를 풀고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걸어온 단계를 적고 싶어서이다. 아는 척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고, 솔직하되 무식해보이고 싶지는 않은 이유 때문이다. 클래식이 가슴을 울리고, 그 마음으로 인해 다른 길을 걷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갖고있는 단서들을 토대로 말러를 몰랐던 우리 아버지 때문에 흘리게 된 눈물과 말러의 교향곡 중 2번 ‘부활’이 아버지 세대들에게 바치는 구원의 소리가 될 수 있음을, 내 가슴을 울린 이야기를 전해보려고 한다. 가운데 부분은 조사했던 내용들의 짜깁기 수준일 수 있다. 이를 테면 사전 연구 탐색 정도가 될 것이다.


말러의 강인함

브루노 발터는 말러와 18세 때 처음 만나 제자로서, 친구로서 평생 우정어린 관계였다. 그는 말러에 대해 쓴 책 <구스타프 말러(2023)> 를 읽어보면 말러를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말러를 천재 지휘자로 마부들도 그가 지나가면 경외감을 갖고 쳐다보았던 빈의 위대한 음악가였다. 발터는 말러가 빈 오페라단에서 활동할 당시 그가 동료 예술가와 청중들을 위해 10년 간의 축제를 펼친 것처럼 당시 상황은 정치적으로도 평화로웠고, 그의 능력도 최고조에 달해서 예술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인기는 있었지만, 온전히 사랑받은 것은 아니어서 지지자와, 혹평한 세력들도 있었다. 말러는 편안하게 살려는 사람들 편에서 보면 불편한 존재로서 불복종적이고 비타협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도취시키는 위협적인 힘이 있었다. 말러를 혹평하려고 일부러 찾아간 언론인이 그의 음악을 듣고 그는 싫었지만, 음악은 매혹적이었다고 고백한 일도 있었다.

말러는 지휘자로서 단칼로 자르듯이 단언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단원들에게 자기 의도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납득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 중에 “말을 거침없이 하다보면 표현의 완벽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의도를 관철해 실질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말러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사람이어서 지휘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한 것 같다. 나는 성당의 성가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금 지휘자는 (아마추어) 합창단원들이 자신이 해석한 대로 곡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달래가면서 하는데, 상처는 덜 받지만, 뜻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오케스트라는 말해 무엇하리.

말러는 빈 오페라단의 훌륭한 자원을 활용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작품들의 공연을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공동 작업하는 사람들 중에는 둔감하고 재능이 빈약한 인물들은 그의 광적인 태도와 격렬한 발언을 혐오했다고 한다. 또한 보수쪽에서도 그의 예술적인 과감성을 적대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유지하려면 온갖 타협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했기에 그는 익숙하고 평탄한 위치에서 멀리 떨어져나왔다고 했다.

말러가 새로운 현대음악의 문을 열었던 문제적 개인이었다고 하였는데, 그 옆에서 말러를 바라본 평생의 친구 브루노의 말을 들으니 말러가 자신의 음악의 길을 걷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친절함과 다정함만으로는 새 시대를 여는 것은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말러에게는 보수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음악을 하기 위해서 굴하지 않을 강인함이 요구됐을 것이다.

말러는 지극히 친절하고 감수성이 예민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볼 때는 천성적으로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브루노 발터, p63)

내가 생각할 때 말러는 지휘자로서 필요한 감수성과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 앞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합창단원을 이끌고, 연주곡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캐릭터가 필요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단원을 위해 계약을 조용히 연장시켜주는 배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단원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음악 재능이 기본 이상은 되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말러는 연극에도 음악만큼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무대도 악보만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서 연주자들을 자기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악보에 연극 지문처럼 상세하게 연주 방법이 적혀 있다고 한다. 오페라 연출가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말러는 희곡 지문의 효과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희곡에서는 배우가 해야할 시선처리와 몸짓, 등퇴장 등, 배우의 자율에 맡기지 않는 부분,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있는 부분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희곡을 창작할 때 지문을 너무 상세하게 쓰면 배우의 창의적인 연기를 방해하여 해석의 자유로움은 떨어지지만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작가가 쓴 희곡과 연출자가 쓴 희곡에는 차이점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연출자가 쓰는 희곡은 무대를 염두에 두고 쓰기에 매우 세심하게 극본을 쓰는 편이라고 한다. 말러도 무대 연출자로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지휘자로서의 세심한 요청을 쓴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세심한 지문(!)이 말러의 후대 지휘자들도 말러처럼 연주할 수 있는 길이 되었을까?


교향곡 1번을 들으며

스티븐 존슨(2023)에 따르면 말러가 자신이 속한 시대의 문화적 정치적 기류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부유하던 ‘정신’이 아니었다. 자신의 시대가 남긴 흔적을 그대로 받아내 열린 상처처럼 떠안고 사는 창조적 유형의 전형이 바로 말러였다(p14). 말러는 작곡을 하면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드러냈다. 교향곡 1번의 제목을 ‘거인’으로 붙였는데, 장 파울의 소설 ‘거인'을 읽고 파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브람스 곁에서 당대의 음악적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다가 교향곡 1번에서 독립하듯이 자신이 생각하는 교향곡을 발표하는데, 자신의 1번 교향곡이 세상을 바꿀 ‘거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교향곡 1번을 연주했을 때 얼마나 떨렸을까, 브람스의 밑에서 자신의 색채를 내는 첫 시작이었으며, 타협하지 않은 첫 발걸음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마음은 종교에서 위안을 받지도 못하고, 익명의 존재, 바뀌는 사회 속에서 고전음악과 낭만음악을 들으며 안주하듯이 살아가는 것은 단지 음악을 교양으로서만 들을 뿐이다. 이러한 시대에 말러는 새 음악의 길을 열기 위해 위태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말러의 교향곡 1번이 1894년 6월 초연되었다. 당대 언론은 황폐하고, 통속적이고 끔찍하게 과장이 심한 작품이라고 했다. 브루노는 이 비평들을 탐독하면서 이 행진곡을 지은 무명 작곡가의 비상한 용기에 감탄하고, 굉장한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을 알고 싶어했는데, 우연히 그가 일하는 함부르크 시립 가극장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브루노가 쓴 책에서 말러의 음악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세상에 대해 ‘오늘은 또 어떤 말을 하시려나’ 하는 담담함으로 맞서며 자신의 음악을 탄생시키기 위해 저벅저벅 걸어갔다고 하니, 교향곡 1번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거인’의 첫 발걸음이 맞구나.

음악이 세상을 반영하고, 자기 시대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그들의 마음을 흔든다지만, 말러 교향곡 1번을 들을 때 나는 흔들림은 몰라도, 거인의 첫 발걸음을 인지하면서 감상하였다.

< 3악장 >

3악장에서 유명한 보헤미아 동요 ‘마르틴 형제’가 단조로 바뀌어서 연주된다. 사실 이 내용을 모르고 들었을 때, 3악장이 시작될 때는 처음인데 익숙한 듯한 음에, 두 번째 듣는건가 싶었다. 알고 보니 말러는 민요 등의 멜로디를 패러디하여 썼다고 한다. 동요 멜로디가 풍기는 단조 특유의 비장함에 놀랐다. 우리에게도 번안되어 알려진 동요, “오리는 꽥꽥, 오리는 꽥꽥, 염소 음매 염소 음매, 돼지는 꿀꿀 돼지는 꿀꿀, 소는 음무 소는 음무.” 이 노래라고 했을 때 말러의 의도를 ‘꽤’ 생각했다. ‘꽤’라며 며칠간 생각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이렇듯 시간을 덜 들인 것은 교향곡 1번보다는 교향곡 2번을 더 많이 듣고, 2번을 중심으로 쓰기 때문에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1번 교향곡이 음악이 연주되었을 때 청중들은 경악했다고 한다. 진지해야 할 교향시에 속된 민요와 동요가 들어있다며 비판했다고 하니, 알 것 같다. 하지만 나 같은 감상자에게는 3악장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단조로 시작되어 마음을 잡아끌었다. 단조가 연주되다 경쾌한 음악으로 바뀌는 것을 보니, 조가 바뀐 것 정도는 눈치챘다. 정윤수 교수님이 들려주셨던 독특한 연주기법 소리처럼 바이올린이 독특한 연주를 하며 음의 피치를 끌어올리고, 이내 다시 단조의 ‘마르틴 형제’ 동요가 흘러나올 때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오리는 꽥꽥~’ 가사를 따라하며 읊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또다시 찾아온 평화로운 분위기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동요가 나올 때마다 느껴지는 음악적 분위기는 쇼스타코비치의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의 왈츠 2번(1954년)’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유튜브 클래식 티비의 설명에 따르면 “소련 시기의 우수가 담긴 듯한 서정적 주제 선율을 왈츠라는 흥겨운 춤곡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그 서정이 오히려 감추어진 슬픔의 모습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곡은 우연히 영화음악 등으로 익숙해져있다가, 어디선가 소개를 받고서 즐겨 들었다. 말러의 교향곡 1번 3악장의 분위기는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동요를 떠올리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있으나,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내가 되기에는 어딘가 단조의 음습함이 느껴진다. 쓸쓸한 내 마음을 느끼고, 살짝 절망적인 느낌이 든다. 아마 말러는 거인이 마주한 당시의 분위기를 과거와는 다른, 거인 시대의 쓸쓸함을 그린 것 아닐까. 그리고 이제 새로운 시대를 위한 인물을 맞이해야한다고 말이다.


< 4악장 >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듯 웅장하게 시작한다. 폭발하는 듯한 첫 시작은, 내겐 주인공 거인이 등장한 듯했다. 어디선가 설명글을 읽을 때 마블의 ‘인피니티 워’ 장면에 토르의 등장에서 이런 영웅을 느끼게 하는 음악이 쓰였다. 토르와 같은 실의와 절망에 빠졌던 영웅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등장하는 장면에 어울릴 법한다. 그래, 영웅도 시련을 겪지, 그리고 다시 돌아온 영웅(거인)은 아슬아슬하게 힘을 쓰고, 다시 넘어지고, 마침내 이겨낸다.

어떤 사람들은(블로그의 감상) 불협화음 속에서 천국과 지옥, 방황과 갈등 후 승리 선언이라고 표현하는데, 현대음악을 제법 접했는지 불협화음이 귀에 거슬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감정의 소용돌이, 자연의 요동치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교향곡 2번 ‘부활’을 들으며

어린시절부터 홀로 신앙생활을 하며, 성당에서 자랐던 사람으로서(앞에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성당이 반은 날 키워줬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양 예술 작품 속에 깃들여있는 가톨릭 종교의 색채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 때로는 깊이 있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부활이라는 단어에서 뭔가 구원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듣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러를 선택하면서 말러의 작품 중에서 교향곡 2번 ‘부활’을 집중적으로 여러 차례 감상하였다.

“1895년 12월 13일에 이 작품은 처음으로 전곡(첫 세악장은 그해 초반에 이미 연주된 적이 있습니다.)이 연주되었습니다. 교향곡 2번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 땅에 쓰러졌다가 천사의 날개에 태워져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진다.”(p39,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 부활의 메시지 >


작년에 들었을 뻔한 교향곡이라 현장의 경험을 못했지만, 교수님이 추천하시는 영상 속 아바도의 지휘로 들었다. 처음으로 들을 때는 좋다고 느낄 수 없기에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들어야 그 의미를 떠올리고 좋다고 느끼므로 여러 차례 들었다. 귀에 익은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콥스키 등의 음악은 레퍼토리를 거의 외우고 있어서 악기와 떼창을 하듯 흥얼거리며 같이 마음속으로 손을 휘저으며 지휘하는 듯한 마음으로 들어야 음악적 감흥이 들어온다. 익숙해지기 위해 <교향곡 제2번> ‘부활’을 출퇴근길에 듣고, 자전거를 탈 때도 들었다. 좋은 스피커가 중요하다는 말씀처럼 귀에 꽂고 있어도 좋은 스피커여서 잘 들을 수 있었다. 2번은 웅장함과 고요함 사이의 간극이 커서 볼륨의 적정선을 찾아야 할 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스피커 음질이 좋아지면서 말러 음악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웅장함이 느껴지는 악기 편성이었고, 마지막 합창 부분에서도 그러함이 느껴졌다. 집에 좋은 스피커를 들인 어떤 분들은 말러를 듣는 일이 뿌듯하다고 한다. 여러 대의 팀파니가 웅장하게 들리는 소리가 아주 잘 들린다고도 했다. 다행히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스피커가 있다. 말러를 듣고 뿌듯했다.


감상자들은 여전히 <교향곡 2번>의 ‘부활’ 메시지를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말러가 사후 세계를 향한 믿음의 표현이었다고 말이다. 말러는 복잡한 내면의 소유자로서 기독교적 관점에 입각해 이야기하다가도 윤회에 대해 논하고, 호전적인 무신론자였던 니체의 지지자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1901년 <교향곡 2번> 드레스덴 공연에 제공된 프로그램 노트에서 말러는. “이 곡은 심판에 관한 음악이 아니다…. 여기에는 형벌도 보상도 없다. 압도적인 사랑이 우리의 존재에 빛을 던진다. 우리는 ‘그 사랑’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바로 ‘그 사랑’이다.” 특히 의미심장한 건 마지막 두 문장이다. 말러는 자애롭고 전능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확신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사랑 그 자체의 초월적인 힘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우리는 ‘그 사랑’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바로 ‘그 사랑’이다”라는 문장은 말러가 ‘부활’이라는 화두를 바라보는 진정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죽은 자가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 온전한 삶을 다시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그렇게 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 난관은 죽음의 공포를 딛고 일어서 이 세상에서 영혼의 재탄생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스티븐 존슨, P92-93)

‘부활’을 들으면서 점점 멜로디가 좋아졌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과도 같은 웅장함과 합창 소리의 압도적인 느낌이 동시에 느껴지니 아주 단순한 클래식 초보자의 감상이 될까. 신과 이별한 시대에 부활을 그린 말러는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스티븐에 따르면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 개념적 정신은 갖고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 그것이 무엇일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참고도서를 찾아보다가 이채훈의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에서 말러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우리나라에서 2010년 광주 5.18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말러교향곡 제2번 부활이 연주되었다는 것을 읽고 영상을 감상했다. 지휘자와 합창에 참여한 시민합창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김상봉 교수가 ‘부활’의 가사를 번역하여 쓴 한국어 가사 속에 담겨 있는 단어에서 더욱 그러했다.


< 광주 ‘부활’이 울리다>

“나 높이 날아오르리라, 사랑 날개 타고. 나 높이 날아오르리라. 사랑 날개 타고. 나 높이 날아오르리라. 날아 오르리라. 살기 위해 죽으리라. 살기 위해 죽으리라. 일어나, 자 일어나, 내 사랑아, 너 일어나. 어둠을 뚫고, 어둠을 뚫고, 한 빛, 한 빛, 한 빛 되어 살아나라! “  -전남대 철학과 교수 김상봉 역

광주에서 울려퍼진 힘찬 함성과 무참히 짓밟은 권력, 그곳에서 희생당하신 분들을 위한 30주년 기념식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시민 합창단을 모집하고, 그들은 사랑을 표현했다. 성가대에서 짧지만 합창을 약간 해본 주제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합창단이 노래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서 익히고, 단원들과 함께 연습해야하는지 안다. 지휘자와 함께 가사의 의미, 지금 우리가 왜 이 노래를 부르는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청중도 함께 우리가 느끼는 이 울림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지 될 때까지 연습을 한다. 수백 번, “살기 위해 죽으리라, 일어나.”라고 부르며 영상 속에는 최은아(당산초 교사) 시민 합창단원이 한 말이 정신을 깨웠다.

 “맨 처음 가사 ‘일어나’라고 할 때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그런 것들을 깨우는 듯한 느낌. 그런 걸 다 넘어서 광주에서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을 깨우는 것뿐만 아니고 그런 것을 잊어가는 시대를 깨우고, 거기서 자기 안에 안주해가는 우리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안의 모든 세포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요(‘광주, 부활하다’ 영상, 최은아).”

그분들이 느낀 것처럼 영상을 본 나도 느꼈다. 현장의 생생한 감동이 압축되어 있음에도 전해졌다. 악기의 연주 소리도 아름답고, 표현을 하기에 좋지만, 군중의 합창 소리가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 구자범(광주시향) 지휘자가 한 노트가 마음에 남는다. 30주년 음악회 팜플렛에 쓰인 글이다.

‘삼십 년이 지난 오월에 광주에서 우리가 노래하는 부활 교향곡’의 처음 시작이 장례식이라니. 앞으로 남은 네 개의 악장에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벌써 무덤을 보여주는 것일까. 우리의 우려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러는 1악장 끝에 반드시 5분 이상을 쉬고 2악장을 연주하라고 써놓았다. 다시 말하면 교향곡 2번 구성은 시간적 순서가 바뀌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1악장은 마지막에 무덤에 흙을 뿌리는 듯한 허무한 음향으로 끝난다. 수많은 시신들이 놓여 있는 오월의 장례식.

2악장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 장면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이다. ….(중략) 곡 중간에는 갑자기 내일의 결전을 떠올리게 하는 어마어마한 큰소리도 들려오기도 한다. … (중략) 4악장의 제목은 ‘한 빛’이다. 성악가가 ‘오 붉고 작은 장미꽃이여’로 부른 후 아무런 가사 없이 간주가 이어지는데, ‘붉다’란 단어가 가장 강조되어 있다. 이는 ‘이토록 아름다운 하나의 작은 핏방울이여’라 하는 것 같다.

함께 노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함의 확인 작업인지도 모른다. 삼십 년 전 오월 광주의 시내 한복판, 모든 시민들이 모여서 아무런 악기 반주 없이 함께 소리 높여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나는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 빛을 향한 군중의 함성은 그냥 단순한 목소리의 집합체가 아니다. 나는 말러의 교향곡 ‘부활’을 매개로 모든 시민이 함께 노래하는 순간, 오월 정신의 부활을 경험하고 그 나라의 아름다움을 맛볼 것을 기대한다.”

작곡가들이 시대를 끌어안고, 시대를 통과하면서 창작한 음악을 민중들에게 들려주면서 메시지를 전했다고 하셨는데, 이것이었음을 느꼈다. 5악장에서 말러가 한 말, “너 내 사랑아, 어둠을 뚫고 한 빛 되어 살아나라.”에서 전율을 느꼈다. 음악이 익숙해지려고 들었던 독일어 가사로 들을 땐 전혀 몰랐다. 그저 웅장함만 있었는데, 광주에서 울려퍼진 한국어 가사의 ‘부활’에서 말러의 메시지를 깨달은 것이다.

말러의 ‘부활’이 기독교적인 해석에서 벗어난 것임을 안다. 부활이라는 숭고한 그 사건이 신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있음을 들려준 것이다. ‘빛을 향한 군중의 함성’을 들으며 함께 부른다는 것은 그분들에 대한 감사이자, 우리도 오월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결심이고, 그것이 우리들의 ‘부활’임을 느꼈다. <광주, 부활하다> 영상에서 지휘자가 땀흘리며 지휘하는 모습, 영혼을 울리는 합창단원들의 노랫소리에서 잠들어 있는 영혼들이 찬란한 빛이 되어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광주에서 울려퍼진 군중들의 함성소리에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 우리 앞에 부활하고 있는 장면이 가슴을 울린다. 또 한번 구자범의 인터뷰를 언급한다.

“음악은 한 개인의 가슴만 울릴 수 있는 거죠. 그 개인이 가슴의 울림을 통한 변화를 일으킨다면 개인이 모여서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죠. 음악 자체가 사회 전체를 바꾼다거나 하지 않죠. 사회 반영을 하려고 음악이 된 것이 아니라, 음악은 사회의 반영입니다. 음악은 살짝 보여주는 거죠. 너희 이러고 있어. 보여주면 그게 다입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죠. 사회의 반영이고, 반영을 해주는 것이 하나의 꿈이 되는 거죠(‘광주, 부활하다’ 영상, 구자범).”


구원의 광장으로 나오며

나는 굉장히 둔감한 사람 편에 속한다. 행동하기 전에 마음의 설득이 필요하다. 개인의 구원에만 매달렸던 내게, 개인의 구원이 집단의 구원과도 연결되어 있고, 함성과도 같은 이 아름다운 노랫 소리에 들어있음에 놀랐다. 음악가가 시대를 벗어날 수 없듯이, 시대에 발디디고 있는 집단인 노동자, 시민, 청소년들은 시대에서 집단은 시대가 던져준 고통을 함께 받는다. 내 할아버지, 아버지가 속한 세대의 불우한 사건들, 식민시대의 삶, 전쟁의 상처, 가난한 나라에서 겪은 고통, 자유를 억압받던 시대의 집단적 고통이 개인들에게 그대로 투과되어 아프게 했듯이, 집단의 구원이 개인의 구원에 중요한 일이 된다.

내가 소시민적인 삶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겠다고 문을 연 계기는 이 역시 사사로운 고통스런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말러처럼 순응하지 않는 누군가가 ‘네 고통은 이곳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라고 하여 전체의 구조 속의 너를 보라고 했다. 그 때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겠다며 광장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그 이후 치열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약간 맛만 보다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내가 광장에서 있을 동력은 생겼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고, 실천도 필요하다. 개인 차원의 구원이 필요했던 내게 이번 말러 글은  ‘구원’은 개인의 성취(성취라고 표현하기 거북하지만, 적합한 용어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뿐만 아니라, 모든 집단이 함께 해야할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도 내 아버지의 고통스러웠던 삶에 대한 질문 ‘그분은 구원을 얻었을까, 아니 찾았을까’에서 시작하여, 아버지 세대로 시선이 향하게 되었다가, 그것이 <광주, 부활하다>까지 온 것이다. 너무 비약일까. 그래도 괜찮다. 나는 나름 개인적 고통을 집단의 고통으로 바라보게 된 내가 한편으로는 장하다. 나의 탈개인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남은 일, 시간을 내어 해야할 것

브루노 발터에 따르면 말러의 음악 중 사적인 것이 많이 들어간 음악이 <대지의 노래>라고 한다. 그의 자아와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읽은 한시(중국 번역본)에서 운명적 음색에 대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인 알마 말러는 ‘그 시구들의 끝없는 우울함이 그이 자신의 우울함에 화답했다’라고 했다. 다음 번 말러 감상 리스트는  <대지의 노래>, 말러 교향곡 중 책 한 권이 있을 정도인 <천인 교향곡>이라 불리는 8번 교향곡을 제대로 들어야하므로, 다음 주를 바쳐야할 것 같다. 출퇴근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좋은 스피커를 켜고 <대지의 노래>와 <천인 교향곡>, 그리고 말러를 생각하며 출퇴근길에 오를 것이다.



<참고도서>

정윤수(2010), 너머북스, 클래식 시대를 듣다

이채훈(2020), 혜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브루노 발터(2023), phono, 구스타프 말러 - 온세상을 담은 음악

스티븐 존슨(2023), phono, 말러와 1910년의 세계 - 교향곡 8번의 탄생

<참고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GjiUtq96e8

: 광주 부활하다 part 5



퇴근 후 교양을 쌓기 위해 들은 수업에서 감동을 받아 조사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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