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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순삭! 장거리 출근 길 벌써 도착했어?

비오는날, 자전거 못 타는 아쉬움을 글쓰기로 변형

by 글담연
출근길에
글을 쓰다보면

‘벌써 도착!?” 해 있는 경우를 본다.


글을 쓰다보면 내려야할 역을 지나쳐 환승하는 걸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초창기에 이미 겪었다. 전철에서 무려 두번이나 환승할 당시, 이젠 몸에 동선이 살짝 익었을 무렵, 나가는 계단과 환승하는 계단이 비슷하여 잘못 올라간 덕에 10분이 늦었다. 그것이 몇 차례 반복되자, 그때 내 자신에게 으이구, 이걸 헷갈리네. 하면서 혀를 끌끌 차던 일이 있었다. 그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또 다시 설정한 동선 회로, 그것마저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출근길에 맞춰진 몸은 동선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반자동으로 다음번 환승지점을 향해서 잘 가고있다. 물론 글을 쓰면서 걷지는 못한다. 환승하는 사람들의 걷기 속도, 알 것이다.


휴대폰으로 글을 쓰다가도 내려야 할 정거장이 되면 알아서 오감들이 나선다. 정류장에서 들리는 음악, 내리는 사람들의 방향 바뀜 등에 따라서 출퇴근 센서들이 작동하며 글쓰기에 정신을 집중한 나를 감각들이 깨워준다. 문이 열리면 사람들의 흐름을 타고 내린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내가 두 번의 환승을 마치고 직장의 정류장에 도착해 있다. 정말 “벌써” 라는 말이 딱이다.

쓰려는 글의 한 단락 정도 남았다면 역의 의자에 앉아서 마저 쓰고 나가고, 몇 단락 남았다면 저장해 놓고 그 날 시간이 나는 때에 쓴다.


요 며칠, 아침 저녁으로 기차역을 중심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고 있었다. 아침에는 기차역까지 내 자전거로 달려가고, 퇴근길엔 따릉이와 내 자전거로 달리면서 나를 가꾸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글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다. 한번 페달의 흐름을 타면 멈추지 않고, 목마를 때나 물 한잔 마시고 가는 것이 멈춤의 유일한 이유였다. (내가 설정한 기차의 정기권 막차를 타기 위해)


비가 온다.

예보를 보니 이번 주는 내내 비가 온다고 한다. 오후에는 그래도 그친다고 하던데 한강의 자전거 로드길은 괜찮을까? 저번처럼 미끄러운 곳에서 넘어지는 것은 아닐지 괜스레 걱정이 된다. 오늘은 집 대문 앞에 자전거를 놓고 마을버스를 타러 나왔다. 내 자전거를 보며 먼지 쌓일 걱정을 한다.


출근길 자전거를 탈 때는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과 바람의 냄새와 온도를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면 출근길 마을버스에 앉으면 이것저것 생각이 떠오른다.

“아, 입력과 출력인가! 자전거 탈 때는 입력, 대중교통에서는 출력.”

버스에서는 왠만해서 멀미 때문에 핸드폰에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계속 이어나간다.

‘자전거를 탔으면 여기에서 힘이 많이 들었겠지. 오늘은 비가 오는데 누가 타고 있으려나. 저 길을 따라서 오늘은 걸어가 봐야지….’

자전거를 타는 날은 출퇴근길을 가꾼다고 생각했기에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날에 대해 걱정을 했었다. 자전거를 타며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내 시간과 건강을 가꾸었다고 뿌듯했다. 반면 그렇지 못한 날은? 대중교통에 탑승해 그저 흔들리는 대로 피곤한 몸을 끌고갈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한번 자전거로 출퇴근을 가꾸다보니 그렇지 않은 날들에 대한 책임감 아니 자전거 탄 날들의 아까움 같은 게 느껴진다. 건강을 필수로 생각할 나이이기도 한지라 자전거를 탈 수 없는 날에도 이 출퇴근길을 가는 동안 내 시간과 자신을 가꿀 수 있는 방법들을 부지런히 떠올린다. 머릿속 브레인스토밍,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벌써 기차 기다리는 20분 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기차에 올라 17분을 서 있는다. 기차 속에서도 내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정말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된다. 글쓰기로 생각 출력만 하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를 읽으며 동시대 사람들과 동시간대에 글을 쓴, 브런치 나우와 피드를 읽으며 생각응 읽는다. 주간지나 월간지를 읽듯이 구독한 분들의 연재 글을 읽으면서 감탄하고, 그들의 문장에 취하다보면 입력의 시간이 또 순식간에 지나간다.

브런치를 옆에 두고 출퇴근 하는 일도 역시나 가꾸는 길이다. 뭔가를 가꾸다보면 그 시간이 얼마나 짧게 느껴지는지.

누군가가 나와 함께 있다가,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 하며 아쉬움을 내뱉는 경우, 우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는 것처럼.


건강을 가꾸는 일은 퇴근길에 집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비에 옷 끝부분이 젖을 것은 뻔하지만. 새로운 자전거 길을 개척하기 위해 또 다른 길로 들어설지도 모르니까. 낯선 냄새와 소리가 나를 어디로 끌고갈지.


코스모스에게 데려다주었다. 호숫가에 핀 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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