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분 걸리는데 계속 해, 말아?
한강이 정말 아름다운 줄 몰랐다.
퇴근길에 따릉이로 기차역까지 이동하면서 만나는 한강 자전거길은 신나는 운동이었다. 페달을 밟으며 맞는 바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했다. 초록빛 풀들은 길가로 넘실거리며 풀향기를 풍겼다. 내 눈앞 풍경은 저녁이 되어 어둑사니했지만, 바람과 향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귀뚜라미 소리와 자전거 페달 소리, 도로를 굴러가는 따다다닥 소리가 흥겨웠다. 자전거는 오감이 살아나는 경험인가? 낮이었으면 수채화나 유화의 풍경을 볼 수 있으려나.
한강 라이딩 좋은 날을 택한 것이 그날.
9월 백로가 다가오면서 가을을 준비하는 시기가 되면서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들이닥쳐 우리를 초긴장하게 했고, 잠수교가 잠기고 올림픽대로 일부 구간이 통제되었다. 힌남노가 오전 10시 이후 빠져나가고 나서 바람은 몹시 불었지만 해가 떴다. 그 다음 날, 한강 수위가 정상 회복되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날 따릉이 퇴근을 결심했다.
첫 주행에서 피를 보다
저녁에 조명을 켜놓고 달리는데 딱 한 군데 진흙이 가득한 구간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길이 꽤 깨끗했다. 한강물이 넘쳐 올라왔던 흔적이 없었지만 탄천 지역은 달랐다. 흙맴새에서 강물의 냄새가 훅 끼쳐올라왔다. 그 즈음부터는 자전거 숫자도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나마 자전거 바퀴 자국에 의지해서 길을 골라 들어섰다.
잘 가는 줄 알았는데 따릉이 덜컹덜컹 거리더니 바람이 빠진것처럼 갑자기 바퀴가 주우우욱, 휘청휘청 하더니 옆으로 누웠다. 잡고 있던 핸들을 놓치고 이내 두 무릎이 땅에 닿았다. 손에 따끔한 느낌이 났다. 앗, 상처가 났다. 피가 고여있는 듯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조명에 비춰보니 꽤 깊어보였다. 그 순간 30-40분 정도 남은 구간이 걱정되었다. 가방에 아무것도 없지만, 지난 번에 정리하지 않은 덕분에 손수건 하나가 꼬깃꼬깃하게 있었다. 우선 상처를 입으로 가져다가 흙과 피를 뱉어내고 손수건으로 지혈을 했다. 손수건을 둘둘 말아놓으니 상처가 둔해져서 핸들을 잡을 수는 있겠다 싶었다.
‘자, 다시 주행을 시작하자.’
조심스런 마음으로 안장에 앉았다. 그런데 조금 주행하다가 또 다시 아까와 같은 덜컹덜컹하는 느낌이 있었다. 또 진흙에 미끄러지는 중이었다. 아까처럼 넘어지기 전에 먼저 자전거에서 내렸다. 자전거는 옆으로 넘어졌다. 나는 땅에 무릎이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진흙이 언제 끝날지 몰라 두려웠다. 두번째 넘어진 이후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첫 기억이 악몽이 되어 다시 안 타게 되면 곤란하니, 나름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다행히 진흙밭은 거기서 끝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천천히 주행을 시작했다. 흔들거리는 핸들을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맞추며 출발했다.
첫날, 내가 너무 날을 잘못 잡고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일까. 그런데 이 날이 아니면 추석 이후가 될 거라 오늘을 잡았다. 나의 추진력(!)에 나도 놀란다.
이제 운동을 해야했다.
장거리 퇴근길 피로와 드문드문 오는 대중교통을 기다리며 넋놓고 기다리는 시간들, 그 시간이 그렇게 지긋지긋했다. 거기다 코로나로 움직이지 않고 쉬었던 초반에 찐 살은 마치 내 원래의 것인듯 아주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운동을 해야지, 해야만 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퇴근 후 겨우 도착한 집에서 운동 차림으로 갈아입고, 다시 집밖으로 나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운동복을 입고 나가서 걷기 운동을 실천한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운동과 장거리 출퇴근만 생각하면 마음이 쑤시는 그 길을 좀더 견딜 수 있도록, 내게 문득 떠오른 방법이었다. 자전거를 구간별로 이용한 출퇴근길.
한강은, 동네. 어린시절 나의 동네.
그렇게 따릉이로 처음 도전한 19km 한강 자전거길에서 한참을 달렸다. 시원한 공기와 달리 후끈한 공기가 와 닿는 곳이 있었다. 버드나무와 아프리카산 강아지풀이 남실거리는 자전거 도로를 지날 때는 시원하고 때로는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는데…
잠실을 지나칠 때,
‘앗, 여기는… 어린시절 자전거를 타거나 이웃사랑 게임을 하면서 놀던 곳이었는데…’
그랬다. 내게 한강은, 동네였다. 어린 시절 잠실역과 신천역(지금의 잠실새내역) 사이에 살고 있던 내게 한강은 동네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야 우리 오늘부터 운동하자!”
친구랑 결심하고
“이따 한강으로 나와.” 라고 하면 쉽게 가는 곳이었으니까. 아파트 후문으로 나와서 버즘나무 가로수가 심어져있는 인도를 따라 한강쪽으로 걷다보면 한강 홍수 방지용 굴다리를 만났다. 그 곳에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들었다. 그리고 계단이나 자전거용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면 한강둔치가 나왔다. 그것에 자전거를 끌고 가서 반포까지 달리거나, 그 반대로 잠실철교 근처까지만 달리던 그 곳이었다.
지금은 자전거길 풍경이 더 세련되었고, 부분부분 바뀌었지만, 어린시절을 보냈던 장소를 페달을 밟으며 영사기를 돌리는 듯 그 시절의 기억들이 훅 떠올랐다.
마지막 구간에서 다리와 팔의 힘이 필요해!
탄천에서 수서역까지 가는 길이 처음 가는 길이라 몇차례 헤매고, 다치고, 따릉이 대여시간 2시간 초과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받으며 초조했다. 그러나 오늘이 초행길이라 그럴 거야, 하면서 입으로 나오려는 한탄을 혼자만 들리게 내뱉었다.
수서역으로 나가는 나들목으로 힘겹게 급경사 오르막으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며 두 팔에 힘이 불끈 쥐어졌다. 팔에 힘이 필요하겠구나 싶다. 내리막에선 자전거가 나를 잡아당겼지만, 적정속도로 가기 위해 자전거를 붙잡으며 내려갔다.
기차역까지 135분, 결론은!
수서역에 따릉이를 반납하면서 주행기록을 저장했다. 와 2시간 15분. 이렇게 퇴근할 수 있을까? 효율이 정말 떨어지고, 장거리 출퇴근 시간보다 더 걸릴 듯한데.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다음에 또 도전해”
머리에 땀이 맺히고, 다리가 살짝 후들거리는데, 뿌듯한 이 기분. 내 힘으로 움직이는 매력이 다음을 또 이야기하는 것일까. 한강의 추억이 마음을 끄는 것일까, 길의 아름다움을 또 보고 싶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