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 우리 병원을 차별화하는 컨셉
(디자이너)어느 디자인이 마음에 드세요? 이 로고는 어떠세요?
(원장)저는 A가 좋습니다.
(디자이너) 아 그럼 A로 하겠습니다.
혹시 비주얼 시안을 결정하는데 이런 대화를 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물론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의견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디자인이 브랜드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적합할까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추구하는 디자인 경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켓컬리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비주얼 머천다이징 전략에 있었습니다. 보라색 로고와 앱으로 대표되는 마켓컬리는 판매하는 제품을 보여주는 방식이 남다릅니다. 구매할 수밖에 없는 특별함과 차별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켓컬리의 택배 상자는 디자인부터 남다릅니다. 일반적인 쇼핑몰의 투박했던 택배 박스와 완전히 구분됩니다. 상자의 각 면에는 다음과 같이 각각 다른 카피 문구가 씌여 있습니다.
‘가장 쉽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식탁이다’
‘좋은 음식 하나면 어디든 행복한 식탁이 된다’
‘가족의 추억은 음식으로 남는다’
‘사랑은 누구나 요리하게 한다’
이런 카피는 읽는 재미뿐 아니라 브랜드를 향한 정성과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식품으로 내 삶부터 바뀌는 기쁨을 주겠다는 마켓컬리의 각오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켓컬리는 초기에 모바일 웹을 만드는 비용보다 사진 촬영에 더 많은 비용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사진을 찍는 작가만 20명이 넘는다고 하니 디자인과 비주얼에 들이는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됩니다.
이렇듯 비주얼 요소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시각적 요소를 통해 이 브랜드가 표현하려는 아이덴티티와 가치를 직관적이고 빠르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심볼, 마크, 로고 타입(서체), 색상, 패턴(모티브)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로 사전에 반드시 정해야 합니다. 시각적 요소는 <베이직 디자인(Visual Identity Basic Design)>과 <응용 디자인(Visual Identity App Design>으로 구분됩니다. 전자는 언어로 규정된 브랜드 속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으로 로고 및 컬러, 패턴, 서체 등이 해당됩니다. 후자는 브랜드의 톤앤매너를 규정하며 실제 제작 가능한 가이드를 제공해서 브랜드에 대해 일관된 이미지를 표현하도록 합니다.
사실 브랜드 컨셉과 정체성은 언어적인 것입니다. 기업의 내부적인 속성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일반 소비자들은 이를 접할 때 감각적으로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지할 수 없습니다. 브랜드의 컨셉과 정체성은 사람들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브랜드를 잘 보이게 하는 디자인입니다.
비주얼 디자인을 할 때는 무엇보다 정체성에 근거한 컨셉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도외시하고 원장님 개인의 취향이나, 최신 유행에 따라서 시각 디자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전략이 없는 디자인은 예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중 로고만큼이나 대중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도 없을 것입니다. 로고를 발표하면 항상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곤 합니다. 그래서 좋은 로고, 안 좋은 로고가 아닌 ‘~병원다운’ 로고를 개발해야만 하죠.
제가 모 치과 로고 개발했을 때의 일입니다. 네트워크 병원이었고, 의사결정을 위한 위원회 멤버가 10명이나 되는 대규모 치과였습니다. 로고를 제작한지 오래되어 촌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지점마다 사용하는 기준이 달라 통일된 브랜드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 업체에서 로고를 제작하여 시안을 5개 받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으로 최종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로고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저를 만나러 온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리브랜딩을 위한 로고 제작의 목적을 물어보았습니다. 브랜드의 본질적 가치는 지키면서 미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브랜드 디자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목표를 지점마다 상이하게 활용되는 로고의 대표성을 규정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두었습니다. 또한 브랜드에 대한 비슷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었지만 합의된 명명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그 가치 체계를 규정하는데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디자인의 목적과 의도가 좋다 해도 디자인의 결과물은 개인의 디자인적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만족하는 디자인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의사결정권자가 여럿인 경우 시안 선택은 더더욱 어려워집니다. 결국 저는 왜 이 디자인일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브랜드 스토리를 기반으로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그 병원만의 고유한 자기다움을 비주얼로 표현한 단일 시안의 중요성을 피력했습니다. 여러 개 중 가장 좋은 디자인을 선택하기보다 우리병원다움을 받아들일 것을 설득했습니다. 이렇듯 가장 중요한 병원 디자인의 방향은 우리 병원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디자인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디자인은 브랜드를 발견하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