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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낮 꿈을 꿀 거야

by 린ㅡ


작은 아파트의 꼭대기층에 살고 있다. 화장실의 어느 틈으로 노랫소리가 들렸다. 몰래 엿듣는 일은 대놓고 감상하는 일보다 짜릿한 법. 그녀의 소리는 힘 있고, 우렁찼으므로 가까이 갈 필요야 없었지만, 얼굴을 모르는 뮤지션의 버스킹 음악을 감상하듯, 환풍기 아래로 가까이가 비밀히 눈을 감고 무릎을 모아 앉았다.

거리낌 없는 음색은 귀여웠고, 일탈하는 자유로움은 근사했다. 한참을 지나고서야 알았다. 첫째 아이가 속한 밴드부의 보컬을 맡은 아이가 아래층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멋진 이웃이 곁에 살고 있구나. 그리고 알았다. 화장실에선 소리가 이렇게나 투명하고 안전하게 누군가에게 배송될 수 있다는 것을.


언젠가 화장실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 무수했던 날들, 소리가 아닌 소리들이 배송지를 잃고 헤매다 그저 사라져 버렸기를, 감히 누구에게도 안전하게 배송되지 못했기를 바랐다.




자정이 넘고 가족들이 꿈세상으로 넘어가면, 비로소 홀로 현실세계에 남는다. 그 사이 한껏 눈물을 버려야 한다. 무음으로, 광란하게 버리고 비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이제 그런 것들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그저 종일 달려드는 우울의 습격에 마음이 폐허가 되어버린 탓이라며, 소슬하게 무의식의 세계로 도망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강인해야 하므로 우울에 결박된 이라 할지라도 가족의 앞에서 이유 없이 울어서는 안 된다. 하여 그들의 시선이 부재한 깊은 밤을 찾아,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찾아, 버려 내는, 비워내는 행위일 뿐.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런 다음 날이면 몸이나 마음을 일으켜 세울 기운이 없다. 미소가면을 장착하는 일조차 고단해진다. 꼿꼿이 일어서기 힘든 하루는 다시 시작되고, 여전히 낮의 틈과 사이엔 눈물을 버릴 겨를이 나지 않는다. 어느샌가 버리지 못한, 비우지 못한 슬픔이 소리 없이, 얼굴 없이 차오르다, 자정이 넘으면 어김없이 흘러넘치고 만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일뿐. 특별한 일은 아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오는 아이의 말간 아침인사에 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은 오랫동안 방치해 둔 고장 난 마음 때문이라고. 마음속 정중앙에 자리한 불량스러운 수도꼭지, 똑똑 쉴 사이도 없이 방울이 떨어지는 불온한 눈물꼭지, 그것을 수리하는 중이라고. 그래서 당분간은 기분을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쁠 것 같다고 전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꼬약거려 소리를 내지 못했다.


장마 때문에 마음수리는 늦어지고 불면하는 밤들에 시간마저 잃은 지 오래, 급하게 식사준비를 시작했다. 굴러가지 못하도록 야무지게 쥐었던 당근을 놓쳤고, 곱게 갈아둔 칼에 손을 베었다. 똑똑하다 금세 핏방울은 길을 내어 흘렀고, 남겨진 당근에 붉은빛이 배니 색이 고왔다. 고통이나 잔혹감 따위를 걷고 나면 그저 아름다운 색의 조합일 뿐. 한참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나동그라진 당근 덕분에, 비스듬히 달아난 칼 덕분에, 선연한 붉은빛 덕분에 잠시 멈출 수 있었다. 그제야 시간을 찾을 수 있었다.



자정이 되고, 마지막으로 첫째 아이가 자러 들어간다. 딸깍하는 경쾌한 문소리와 함께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른다. 사라지고 싶어. 사라질, 숨어들 나의 방이 있었으면. 어렸을 적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혼자만의 방은 어른이 된 후에도 가질 수 없었다.


아래층 아이의 화장실 사용법처럼 굳이 방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거리낌 없이, 함부로 무엇이든 쏟아내어도 되는 조그마한 공간, 그것이 간절했다.




9급으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 15년, 사직한 지 3년, 결혼식 축의금만으로 시작한 결혼생활과 아이 둘을 더한 서울살이. 충분했지만, 넉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감히 꿈을 꾼다. 어쩌면 사직 후 현실감각을 상실한 덕분으로 맹랑하게 꿈을 꾸는지도 모르지. 상상 어린 꿈으로 도망할 밖에.



우울에 허우적대며 무른 밤을 애써 흘려보내는, 하얀 두 눈을 뜨고 꿈꾸지 못하는 검은 밤을 버려 보내는 내가 한낮에 함부로 허무맹랑한 꿈을 꾼다. 나에게 간절했던, 누군가에게 간절할지도 모르는 공간을.


출입문이 없는 세 벽은 책장을 두고, 시절의 나와 비슷한 이들이 자유롭게 들러 고요히 책을 열어보고 가는 곳이면 좋겠다. 유난하게 답답한 날이라면 함부로, 제멋대로 마음을 편히 쉬어가는 곳이면 더없이 좋겠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테이블을 두고 두서없이, 거침없이 마음을 꺼내 그리거나 끄적거리는 곳. 힘들고 어려운 마음이라면 곱게 접어 단정하게 비워줄게. 그럴 마음조차 남아있지 않은 날엔 그저 기대어만 가도 좋고.


하릴없이 서성거리고 있는 나와 같은 이가 있다면, 내가 손을 잡고 문턱을 넘어올 수 있게 도와줘야지. 아름다운 그 시절이 감히 외롭지 않도록 다정하게, 유유하게 기다려주고 싶다. 조그맣고 소소한 공간을 부족하고 수고로운 것들, 온온하고 여여한 것들로만 채워보자.



오늘도 '임대문의'라는 문구가 적힌 유리문과 흰 벽으로 가득 찬 빈 공간 앞에 한참을 서있다. 밤결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이가 당돌하게 낮결에 꿈을 꾸고 있는 일, 그것이 마음에 든다. 가능성을 재지 않고, 터무니를 헤아리지 않고, 감히, 함부로 꾸는 꿈.


생게망게한 꿈이어야 용기 낼 수 있다. 그래야 스스로를 구해내지 못한 이가 누군가에게 손내밀 용기를 내어볼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마음꼭지를 수리하지 못해 똑똑 흘러넘치고 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현실을 망기한 나는 마음에 든다. '임대문의'라는 유리문에 반사된, 요망스레 맹랑해진 내가, 잠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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