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밀한 여행자 -
무작정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모두 팽개치고 싶은 날. 절절히 달아나고 싶은 날이면 하릴없이 달려 나간다. 근처 카페, 사람이 붐벼 유난하게, 지독하게 고독할 수 있는 곳으로. 이왕이면 잿빛 그림자에 깊숙하게 가리어 어둡고, 고요한 자리로. 화려한 여행지에 어색하게, 어설프게, 덩그마니 던져진 사람처럼.
언제고 나와 동행할 채비가 되어있는 손가방을 들고 나선다. 가방 안에는 가벼운 책과 노트 한 권, 흑색의 펜 한 자루가 들어있고, 손잡이엔 반려인형과 이어폰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다. 대롱대롱하는 인형에 시선을 두고, 이어폰으로 두 귀를 막으면 금시에 지금의 세상과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어쩌다 이른 아침 도착한 카페엔 나와 같은 모습으로 책 한 권만 서둘러 들고 나온, 혼자만의 여행자들이 많았다.
원목색 카페로 골라 숲으로 삼고 들어간다. 커피 향을 흙내음으로 들이켠 후 노트를 내어 하얀 여백을 펼치면, 비로소 가장 작고 드넓은 나의 세상에 안착한 기분이 든다. 씁쓸하고 묵직한 커피 향으로 두텁게 방화벽을 세운다. 비밀한 나의 숲은 커피 향만이 침입가능하다.
원두로 빚은 향을 피워놓은 듯, 분분한 향기에 취해 하얀빛의 노트를 펼쳐 암흑빛의 마음을 꺼내놓는다. 반짝하게 빛나는 노트를 열어 빛을 잃은 마음을 내어놓는다. 잠시 현실이 아닌 순간을 멈추어, 여행하듯 붙들어본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세상에서 망그러진 마음도 꺼내고, 혼란스레 역류하는 감정들도 꺼내둔 채, 반짝이는 것들만 그러모아 정성스레 어루만진다.
고작 나의 것들로 감히 나를 위로하는 일, 하찮고 보잘것없던 나의 지난 것으로 성대하게 나의 현재를 위로하는 일. 그것이 나만의 비밀한 여행이다.
기대는 일과 기대하는 일은 위험하다는 것,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결코 기대어서는 안 된다는 것, 결국 그토록 원망했던 나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후로는 그렇게 여행을 떠나곤 했다. 언젠가 그런 나에게조차 기대지 않아도 되는 단정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하필 오늘, 그저 오늘. 언제고 나와 동행해 주었던 손가방 속 노트를 잃어버렸다. 언제부터 써온 건지도 알 수 없는, 마지막까지 네 페이지 정도 남았으니 새것으로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오늘,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닳고 닳아 귀퉁이마다 해지고 휘갈겨놓은 글씨와는 달리 순박한 글감과 문장들을 가지런하게 모아둔 귀한 노트였다. 평소에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검은 마음속에 두면 물들까 비밀히 꺼내 놓았던 고운 말들이나 겨우 남겨두었던 농롱한 것들이 한순간 모두 사라졌다. 더듬고 곱씹고 절망하다, 기다리던 지하철을 몇 번이고 놓쳤다.
돌아오는 길엔 지칠 때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자책감이나 허탈감과 같은 것들이 끼어들 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격렬하고 고달프게. 마침 사람길과 자전거길 사이에 작은 토끼풀밭이 보였다. 손이 닿지 않은 것 같은 무성함이 손길을 바라는 듯 쭉 뻗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내겐 토끼풀이 커다란 위로가 되어주었다. 작다란 토끼풀밭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기분이 좋았다. 듬성듬성 핀 하얀 꽃은 향이 짙고 깊었다. 어쩌다 그것으로 꽃반지를 만들기도 했지만, 내 손가락 위에 얹힐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아름다웠으므로 그저 두었다. 느루 바라보며 시간을 놓으면 절로 네 잎을 가진, 다섯 잎을 가진 클로버가 도두보였다.
그렇게 나는 보물찾기 하듯 그곳을 살피다 무심코 네잎클로버 사냥꾼이 되었다. 아껴둔 책에 하나씩 숨겨둘 정도면 충분했다. 열개를 발견하면 그중 하나는 가져와 책 사이에 끼워두었다. 그것을 다시 꺼내 읽을 때 만나는 네잎클로버는 묘한 즐거움이었으니까.
허망하게 돌아오던 오늘, 마침 한 구석에 네잎클로버가 가득했다. 오늘은 한 개만 골아오지 못했다. 탐욕스레 열개를 골라와 새로 산 노트에 끼워두었다. 속상했던 마음에 대한 위로라는 핑계로 행패를 부린 것. 덕분에 절망에 가깝던 그무러진 마음은 소멸했으나, 탐욕스러웠던 마음에 후회가 남았다. 당분간은 꺾지 않고 마음으로만 담아 오자 약속하며 오늘의 고비를 넘겼다.
울다 지쳐, 걷다 지쳐 우연히 앉은 자리, 무릎 위로 볕뉘가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태양이 눈부신 날이었고. 조도가 적당했고, 무성한 나뭇잎은 요란하게 틈을 벌렸으며, 하필 나는 그것들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닿았던 것.
볕내를 음미하다 보니 햇발에 무릎이 따뜻해졌고, 찬란하는 볕의 그림자는 내 시선을 앗았다. 더 이상 울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볕뉘가 달래주었으니까. 그것으로 오늘의 고비를 넘긴 것이다.
나비들이 휘황스레 날아다니다, 결국 내 심장 근처에 앉았다. 숨결 하듯 날갯짓이 느려졌다. 가만한 그 작은 생명체의 숨을 방해할까 잠시 호흡을 멈췄다. 소멸하듯 느려지는 내 심장 위에 숨을 불어넣듯, 소생하듯 너울 치는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 나지막이 숨을 쉬었다. 아름답고 미약한 생명체가 내어준 강렬한 심폐소생술이 고약한 생명체를 살린 것이다.
나를 살리는 것은 매번 달랐다. 어떤 날은 한껏 울기만 해도 살 것 같았고, 다른 날은 아무리 울고 토해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어느 날엔 아이 방에 붙은 아이들의 사진에 마음을 잡았고, 여느 날엔 불면하는 밤들에 지쳐 마음을 버려버렸다.
오늘은 곱고 고운 찰나들이 곰비임비 일었다. 매 순간 나를 살리는 것은 달랐지만, 우연한 사소함은 같았다. 사소한 것, 보통의 것, 미미하고 연약한 것, 순간적이고 우연한 것들은 힘이 셌다.
볕뉘, 나비, 토끼풀, 날갯짓. 오늘의 조구마한 것들에 마음을 주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고, 살아내어야 하는 이유마저 충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