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것들에 무참하게 무력해진다. 나의 기억법은 분명 잘못되었다.
시간을 함께 통과해 온 지난 음악들을 듣지 않는다. 그것이 귀에 담기는 순간, 그것은 그것을 듣던 가장 끔찍했던 순간으로 나를 데려가므로 듣지 않으려, 돌아가지 않으려 애를 쓴다.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종착지가 불행역인 타임머신에 구태 탑승하지 않는다.
그리움과 과거, 청춘이나 시절, 음률과 리듬, 빛과 녘. 그런 것들이 함부로 섞이지 않도록 제자리를 지킨다. 울결에 슬픔이 다가가지 못하게, 울색에 잿빛 그림자가 더 이상 지지 않게. 난 경계를 더하고 더욱 예민해져만 간다.
나와 정반대의 기억법을 가진 이와 함께 산다. 나는 일 년에 두어 번 남편의 차를 탈 때가 있다. 타자마자 그의 플레이리스트는 우렁차게 소리를 낸다. 20대였던 어느 젊은 시절, 거리마다 들려오던 음악들. 그는 음표의 생김처럼 금시에 흥이 오르고 만다.
그는 음악을 몹시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합창동아리의 열정적인 일원이었기에 결혼식에도 동아리 친구들이 참석해 근사한 축가를 불러주었다. 그 모임은 지금도 여전하며, 수요일마다 모여 합창을 하고 공연을 한다.
그 시절 정말 원 없이 놀았다고, 그는 표현했다. 그 시절 음악을 들으면 그때로 돌아가 다른 차원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그런 당신의 기분을 그대로 두고 싶지만, 지난 음악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결국 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만다. 차 안에서 내 안의 것들이 넘어오면 곤란하니까.
나는 정적이 편했고 그는 그렇지 못했으므로, 그의 곁에 있는 나는 정적이 불편했다. 어떤 것의 선호에 환경은 절대적이었다. 언제나 좋은 것은 없었다.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은 시간으로 거슬러 가지만, 당신은 가장 행복했던 때로, 나는 가장 불행했던 순간에 닿고 말았다. 음악은 잘못이 없다. 나의 기억법은 분명 잘못되었다.
오랜 친구가 내게 지쳐 보인다고 걱정을 하다, 그래도 행복했었잖아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언제 행복했었지? 언제 내가 행복해 보였어?"
궁금했다. 기억이 나지 않아 간곡히 물었다. 나의 오랜 친구에게. 그녀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먼 곳에 공허한 눈을 두고, 마음속 필름을 빠른 속도로 되감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살아야 할 것들이 살아남지 못했다. 나의 기억법은 분명 잘못되었다.
기억하는 방법이나 추억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어찌 좋은 찰나가 없었을까. 하나 그런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울울한 내 안에서 함부로 살아남지 못했다. 그저 사랑하던 사람이나 사랑했던 것들의 부재나 소멸만이 남았다. 이별, 공허, 허망, 무의와 같은 것만이 처연하게, 묘연하게 살아남았다.
죽은 것이나 실체가 없는 것들만이 살아남은 탓에 기억이라는 공간에서 감각되지 못하는 건가. 기억의 부재 뒤로 추억할 것은 없었다. 무, 공, 허와 같은 외로운 단음절만이 무형으로 겨우 존재를 지키고 있었다. 결국 고스란히나 곱게 추억할만한 것들이 남아있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었다. 망각하는 고통만이 어렴풋한 자욱으로 남았을 뿐.
아이와 즐거웠던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네가 기쁨이라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내일은 오늘의 것과도 이별했을 것이므로 너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평온한 찰나는 감히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사라지고, 소멸되고 말 것이다.
제대로 익히지 못한 잘못된 기억법 때문인지, 우울에 짓밟혀 망그러지고 고장 난 기억법 탓인지는 알 수 없다. 좋은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가진 것 없는 내가 많은 것을 내어줄 용의가 있다.
내일도 내 앞에 네가, 사랑스러운 네가 그저 기쁨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기억하지 못하므로 기록할 것이다. 기억되지 못한 것들이 되살아나길 바라며, 순간을 글로 봉인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사라지는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