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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Jul 05. 2024

너와의 데이트, 준비물 하나.

- 불편한 신발 한 켤레 -


날마다 우울을 겹으로 쌓아 마음의 벽을 두텁게 다지고 나면, 변질된 우울이 죄책감 자리에 지독하게 엉겨 붙어서는 두 발로 서는 일마저 버겁더라.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벌써 7월이라지. 올해의 반을 그렇게 보냈다. 그야말로 버려버렸다. 




어쩌다 아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 아이의 마음에 투영된 나를 마주할 때면, 우울이 미안함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러고 나서는 죄책감의 모양으로 마음속에 조구마한 오두막을 지어 그것을 숨겼다. 고약하게 못된 짓을 한 것처럼 오그라져선 그 속에 꽁꽁 숨고 말았다.


의미 없는 후회를 곱씹었던 적도 많다.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자가 주제넘게 아이와 결혼이라는 허무맹랑한 꿈을 꾼 대가라고. 혹독하게 대가를 치르는 중이므로 진득하게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미움을 더하고 스스로를 염오하는 모양새를 보며 우울을 덮어 칠했고. 마르기도 전에 칠해 버린 마음벽은 뭉게뭉게 곰팡이를 피웠다. 불투명한 색으로 덧칠해 쌓아 올린 마음벽 덕분으로 마음속은 더욱 사납게 어두워졌다.



마음속 오두막엔 문이 없었다. 

칠흑 같은 우울의 소용돌이 속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부러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고. 만들어  여유나 기력조차 없었던지도 모르지.


그런 날들 중의 어느 날, 아이오두막을 두드렸다.

"엄마, 둘이서 데이트하까?"



주말이면 중학생이 된 첫째 아이는 친구들과 약속으로 외출이 잦았고, 남편은 출근. 초등학생의 아이와 나, 둘이 남았다. 누구보다 내성적인 아이가 쭈뼛쭈뼛 눈짓을 하며 은밀히 말을 낼 때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했을까.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으려나. 


그럼 어서 두 발로 일어서야지. 나가야 하지.


아이와 함께 가면 좋을만한 곳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사랑하는 이와 데이트를 할 땐 어디든 좋았고 무엇이든 기쁨이었으니. 그리고 얼마 없는 기운을 나서기도 전에 모두 써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진 신발 중 가장 불편한 신발을 꺼내 다. 작은 너의 보폭과 너그러운 너의 보속에 맞춰가려고 버리지 않고 숨겨둔 나만의 준비물을 꺼내 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눈이 부셨고, 밝고 맑은 곳으로 눈과 마음을 열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엄마, 요즘 힘들어?"

쓰는 일만큼이나 말하는 일에 소질이 없으니, 그럴 때면 몹시 초초하게 대답해야 한다. 무심한 듯, 정성스럽게. 그래야 스스로의 눈물고비를 무사히 넘어서 무연히 흘려보낼 수 있으니.


"아니."

내뱉는 숨에 두 음절을 함께 흘려보냈다. 눈물병에 걸렸을 때엔 어떤 생각도 담아선 안 된다. 담는 순간 눈물방울이 되고 방울이 되어 맺히는 순간 쓰나미가 되고 마니. 타인과의 외출은 보통 고단한 일이 아니다. 피할 곳도 없고 숨을 곳이 없다.


그의 손을 그러쥐고선 말로 내지 못한 고운 문장들이 나도 모르게 그의 마음에 가닿길 바랐다.




오랜만에 고단했고 발이 불편했다. 덕분에 너눅한 네 걸음에 의식 없이 맞춰 걸을 수 있어 감사했고. 만에 꺼내 신은 낡은 신발굽이 떨어질 듯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나만큼이나 신발도 어지간히 불편했을 터. 가여워 접착제로 붙여서는 신발장에 넣어두었다. 다시 떠날 아이와의 데이트에 유일한 준비물이므로.



따뜻한 순두부찌개를 함께 불어 먹었고 버스를 타고 오가는 길에선 음악을 나누어 들었다. 날씨는 좋았고 덕분에 눈물은 금시에 말랐다. 말을 많이 나누지 못했고 꼭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내 모습이 비칠 너의 투명한 눈동자를 깊이 바라보진 못했고 미소 짓는 네 입꼬리만 겨우 보았다.


캄캄한 오두막에 다시 숨어들고 싶지 않을 만큼 좋았다. 



"엄마한테 데이트 신청해 줘서 고마워."

"응. 또 가자."


퉁퉁 부은 발 덕분에 조금 일찍 잠들었다. 우울을 덧칠할 사이도 없이 그야말로 일찍. 오늘처럼 흩어진 기운들을 모래알처럼 그러모으느라 그럴 사이도 없이 지내다 보면 남은 올해의 날들은 곤하게 평화로울지도 모르지.


퉁퉁 부은 나의 마음 대신 통통 부은 내 두 발이 좋았고, 퉁퉁 부은 눈가보다 통통 부은 듯한 네 손이 더없이 좋았다. 겨를 없이 사랑스러웠다. 


'퉁퉁'보다는 '통통'한 찰나들이. 나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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