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많이 슬퍼 보여."
널 등지고 서 있다. 설거지를 하고 있었을 뿐. 나는 분명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미소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앞을 신경쓰느라 가면의 뒤가 비어있는 줄은 몰랐다. 가면이 없는 뒷모습, 그것에 살살한 설거지만 더해졌건만, 너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어떤 주말을 기억한다. 언제나 그랬던 주말도 기억난다. 종일을 기다려도 글자나 문장과 같은 것들은 집 안에 부유하지 않았고. 가냘픈 먼지 조각들만 눈앞을 가끔 맴돌다 맥없이 손등에 내려앉았다.
좁은 집 안, 홀로일 수 없는 주말. 소리 없이 문고리를 돌렸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할머니의 담배 연기로부터 잠시 달아나고 싶었다. 내 안의 답답하거나 암울한 것들이 그 고약한 연기 탓이라고, 꿈결처럼 부풀었다가 이내 사라지고 마는 그 당당하고 허무맹랑한 연기 때문이라고. 원망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고 꿈꿀 수 없었다. 눈을 뜰 수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기어코 열어낸 방문 앞 세상에는 언제고 고단함에 몸을 말아 잠든 아빠가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엔 행주나 걸레를 벅벅 비벼대며, 땀을 닦듯 눈물과 콧물을 훔쳐내는 엄마가 있었고.
마음속엔 언제나 같은 문장이 가뭇없이 떠다녔다.
'엄마는 슬퍼 보여.'
문을 열면 기어코 슬퍼졌다. 문을 여는 일이 어렵고 내키지 않았지만, 아찔한 연기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때면 가만히 문고리를 돌렸고. 금세 적막하게 슬퍼졌다. 얄궂은 것들이 흘러넘쳤고, 그것을 참아내느라 목구멍이 아팠다.
그럼에도 다음 주말이면 다시 고요히 문고리를 돌려 확인했다. 떠나지 않았다는 것,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감이 들었고, 그런 나를 더없이 이기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면 목구멍이 아파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슬픈 뒷모습이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뒷모습이면 충분했다. 비밀히 확인하는 일만으로도 나는 힘겹게 평온해질 수 있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주말. 오래 방치해 둔 맘속 수류탄, 그것의 안전핀이 아슬해진 탓에 매 순간 소마소마했다. 마음을 행주 빨듯 비틀어 축축한 것을 비워내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라, 나도 한참 설거지를 하고 온갖 것들을 빨아 널었다.
그렇게 나는 그 시절 즈음 당신의 시간에 와 있다. 홀로 숨 쉴만한 공간이나 시간 따위는 없고, 소리 내 아우성칠 수도 없으며, 그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내가 했던 선택의 결과들에 체하고 얹힌 기분. 역류하는 허무와 검질긴 회한 속에서 꿈결처럼 헤매지만, 도망하고 싶어도 꿈꿀 수 없다.
그때처럼. 여전히. 적막함에 갇혀 무망함을 꿈꾼다.
설거지를 하는 나의 뒷모습에 아이는 옳은 것과 짝짓는 문제를 풀어내듯 '슬퍼 보인다'는 문장을 붙여주었다. 맞았다고 손뼉을 쳐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따져 물을까,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볼까, 고민하다 겨우 말을 냈다.
"배고파서. 간식 먹을까?"
같은 구간을 반복 재생하듯 펼쳐지던 엄마의 슬픈 뒷모습은 내겐 서글픈 안도였다. 그것은 바래지도 무뎌지지도 않은 채 긴 두려움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부디 무심코 잘못 재생되고만 나의 뒷모습이 '슬프다'는 단어가 어떤 형태로든 붙지 않은 모습이길 바란다. 그저 우연한 찰나였기를, 여전한 뒷모습이나 불멸하는 장면이 아니기를, 언제고 아이의 기억 속에 부재하길 바라다, 가장 커다란 미소 가면으로 고쳐 쓰고 슬픈 마음속 기쁜 말들을 모두 모아 남은 주말을 보냈다.
단단히 매듭짓지 못한 뒷모습을 숨기려 너와 마주선다. 그리고 너의 두 눈을 오래도록 마주한다. 부디 슬픈 뒷모습 뒤에 가리어진 사랑하는 마음만 알아채어 주길. 당돌한 태연함마저 욕심내며, 간절하게, 열렬하게 너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