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말고, 사람 -
모성애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성애가 없는 엄마도 있을 수 있구나. 자책했다.
결혼한 지 17년, 결혼은 어쩌면 나와 같은 공간에 오래도록 함께 생활가능한 이를 선택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는 이와 내가 사랑하는 이가 만나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한 공간에 살기로 약속하고선, 하루하루 우리가 완벽히 다른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럴 때마다 나와 다른 색과 다른 결을 가진 당신을 하릴없이 사랑하던 연애 시절을 떠올렸다.
결혼을 하고 변한 것은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모습으로 한결같았고, 나와는 빈틈없이 다른 당신의 조각들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나의 것들과 오밀조밀 다투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에도, 어쩌면 모든 순간이 그랬다.
그때의 우리는 달랐고, 여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다.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한다. 하나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가 여전히 함께일 수 있을까.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했던 것이 과연 사랑이 아니었을까.
상대를 위해, 어쩌면 스스로를 위해. 그런 줄도 모르고 서로를 살폈을 것이다. 당신과 다름으로부터 파생된, 보이지 않는, 오래된 나의 것들을 수정하는 일은 어려웠고, 시간과 노력과 같은 것들을 필요로 했다. 지금도, 여전히 기꺼운 마음으로 수정하는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공유하며 마주하는 다름이나 마주치는 일상에 최선을 다해 수정하며 살아가는 일, 결국 더욱 사랑하고야 마는 일. 그것이 결혼 후, 내가 살아가는 그리고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공간에 아이 둘이 피어났다. 당신과 나의 조각으로 빚어졌건만, 생김이나 성격이 우리와 온전히 달랐고, 그 둘은 격렬하게 달랐다. 당신에게 맞춰가듯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은 한사코 달아났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동안 당신과 오밀조밀 부딪히며 맞춰갔듯, 아이들과 십 년이 넘도록 마찰하며 다듬어보았지만, 장난하듯, 때로는 분노하듯 달아나는 아이들의 힘찬 달음에 우리의 틈은 점점 벌어졌고, 나는 닳고 낡고 지쳐간다.
지쳐 죽은 마음을 보며 자책하다, 어쩌면 나의 일방적인 사랑 때문일 거라고 다독거리다, 고꾸라진 나를 밟고 가는 아이들을 원망하다, 이제 그만 그들이 달아나지 않도록 가까이 다가서지 않기로 마음을 동여맨다.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한다. 어렴풋하게 짐작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도, 감히 보여줄 수도 없다. 그래서일까, '사랑'이라는 단어로부터 뻗어 나온 것들이 가장 어렵다. 거기에 내가 가장 자신이 없는 '엄마'라는 단어까지 더해지면 나는 한없이 움츠러들고 만다. 그저 사라지고만 싶다.
모성애가 부재한 엄마. 그것이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 나를 위한 것들에 정지버튼을 눌러둔 10년을 생각하다가, 이것이 사랑 없이 가능한 일인가 돌아보다, 나는 그저 뜻도 모르는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 아닐까 생각했다. 서툴고 완수해 내야 한다는 강박적인 의무감이나 압박감에 시달리다 보면, 감히 사랑과 같은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 네가 좋아하는 일이 과연 내가 싫어하는 일과 겹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은 네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일이고 말았다. 우리는 언제나 달랐고, 한결같이 다르다.
어쩌다, 우연히, 우리는 결코 만나지 않을 각자의 평행선 위를 걷게 된 것이라고. 그것이 네가 달음질치지 않아도 잡히지 않는 이유이고. 다행히 최선을 다해 손을 뻗는다면 겨우 닿을 정도의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 너무 멀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안도한다.
네가 나의 쪽으로 팔을 뻗지 않은 것은 아직은 덜 자란 너의 조구마한 팔 가지 때문일 거라고, 너의 마음조차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내 멋대로 나를 다독이며, 오늘도 네 쪽으로 스러지듯 손을 뻗어 내밀어본다.
짓눌리는 엄마로서의 임무들을 잠시 내려두고 온 힘을 다해 다정한 것들을 전해 보는 일. 아무 관심도 없는 네게 전해지지 못할 무용한 일이라 하더라도 부질없이 네게 팔을 뻗고 날아오르는 일.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으므로 확인해 볼 수가 없고 무게를 재어 나의 것과 비교해 볼 수도 없다. 그저 곁에 머무르고, 살피고, 기다리는 일. 그것이 사랑을 알지 못하는 내가 전하는 사랑이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지 않고 모성애조차 모르는, 그저 한 사람으로 전하는 사랑.
사랑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염없이 사랑한다. 서툴고 허술하여 더욱 절절하고 슬슬한 사랑을.
언젠가 네게 닿지 못한 사랑으로 너의 맘이 허기지거나 슬퍼지는 때가 온다면, 다른 모양과 온도, 밀도를 가진 너에게 무모하게 팔 가지를 뻗었던, 하나 차마 가닿지는 못했던 나의 용기 있던 시간들로 너의 맘을 위로해 주길. 허무맹랑하도록 무용해 보이는, 부질없이 아름다웠던 시간, 기억 저 편에 숨겨진 시간들 말이야.